나고 자란 곳은 대구지만 밥벌이를 한답시고 서울에서의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 집은 그곳이다. 엄마와 아빠가 살고 있는 곳. 내 집이 있고 익숙함이 있는 곳.
지난 대구행의 결과물이다. 바로 엄마의 김치들. 예전에 나와 살 적에는 반찬 싸준다고 해도 집에서 밥 먹을 일이 잘 없다며 괜찮다고 했는데, 여전히 집에서 밥 먹을 일이 많지는 않지만 싸가겠다고 했다. 지내다 보니 김치가 꼭 필요할 때가 있고 엄마의 손맛이 꼭 필요할 때는 많았다.
김치는 열심히 포장을 해도 은은한 액젓 향이 난다는 것을 잠시 깜박했다. 혹여나 냄새가 날까, 터지기라도 할까 걱정하는 엄마에게 "엄마 나 이제 이런 거 쪽팔려할 나이는 지났거든?" 말했다.
아무리 맛에 진심, 요리에 진심인 나라고 해도 집밥만큼 차려 먹을 수는 없었다. 사실 밖에서 요리를 하는 일이기도 하니 집에 와서는 모든 게 귀찮아지기도 했다. 언젠가는 집에 오면 아예 요리를 해먹지 않기도 했다. 나의 끼니를 자주 해결해 주던 것은 빵이다. 이것은 내가 빵순이기도 하지만 냄새가 크게 나지 않고 가장 간단했다. 빵을 구워 과일이나 채소, 달걀을 곁들이면 나름 완벽한 식단이 되었다. 그럼에도 한국인인지라 쌀이 땡기면 김밥을 사 먹었다. 그러니 집에 반찬통이 많을 리가. 엄마의 김치를 맛있게 먹기 위해 한 번쯤 따뜻한 밥을 지을까 싶어 애지중지 김치를 모시고 왔다. 있는 통 없는 통을 다 끌어 썼다. 냉장고가 그득 찼다. 마음이 든든해졌다.
몸과 마음이 지치던 날에는 엄마의 밥과 국, 나물이 생각나더라는 말에 엄마는 생일상 마냥 한상 가득 차려주었다. 꼭꼭 씹어 몸과 마음을 채웠다.
이번에 서울 가면 또 언제 보냐는 아빠의 말에 금방 보지 뭐.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이번에는 꼭 한밤만 더 있다 오고 싶었다. 예전에는 내가 가고 싶어 집으로 꼬박 갔는데 이제는 엄마 아빠가 나를 기다리는 것을 알아 집으로 간다. 쉬는 날이면 혹시나 잠이라도 깨울까 전화를 걸었다가도 금방 끊어버리고, 통화하다 뭐 하고 있었냐는 물음에 밥 먹고 있다고 하면 얼른 맛있게 먹으라며 끊어버리는 어느새 환갑이 넘어버린 경희 씨 원철 씨. 나 언제 서른둘 먹고 우리 엄마 아빠 언제 환갑 넘었지.
자주 보고 싶지만 자주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마음이 약해진다. 엄마 아빠 생각이 나기 시작하면 손 쓸 수가 없다. 내가 잘 살아야 하고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더 분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