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강렬하게 욕망하면서도 무엇을 욕망하는지 정확하게 모른다. 왜냐하면 그가 욕망하는 것은 존재, 정확히 말해 자신에게는 결핍되어 있는데 타인은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르네 지라르, <폭력과 성스러움> 중에서)
르네 지라르는 프랑스 출신의 인류학자이자 문학 비평가로, 인간 행동의 근간에 자리 잡은 모방의 영향력을 깊이 있게 연구한 철학자입니다. 그의 연구는 현대 사회에서 소셜 미디어와 소비 문화가 우리의 욕망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그의 핵심 주장은 인간의 욕망이 독자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르네 지라르는 인간의 욕망을 개별 인간의 내부에서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의 욕망이 타인을 통해 매개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위의 인용문은 인간 욕망의 구조와 동력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진술입니다.
지라르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 독립적으로 욕망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욕망하는지를 관찰하고, 그들의 욕망을 모방합니다. 이를 '모방적 욕망(mimetic desire)'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을 보완하려는 욕망을 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 명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의 행동과 욕망을 관찰하며 그들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받아들입니다.
지라르는 단순한 물질적 소유를 넘어, 타인이 가진 존재감을 욕망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감과 사회적 성공으로 빛나 보일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자신도 원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욕망하는 것은 물건이나 위치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것처럼 보이는 존재의 충만함입니다. 이러한 욕망의 구조를 지라르는 '욕망의 삼각형'으로 설명했습니다. 이 삼각형은 주체(욕망하는 사람), 모델(욕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 또는 역할 모델), 그리고 그 대상(욕망의 객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체는 모델을 통해 대상을 욕망하게 되며, 이 구조는 욕망이 결코 독립적으로 형성되지 않고 항상 타인을 매개로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가까운 친구가 중요한 회사에서 승진하여 사회적으로 성공한 모습을 볼 때, 우리는 단순히 그가 얻은 높은 직위나 급여만을 욕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깊이 우리는 그 친구가 사회에서 인정받는 모습, 그가 가진 자신감, 안정감과 같은 '존재의 충만함'을 욕망하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친구는 욕망의 삼각형에서 '모델' 역할을 합니다. 즉, 우리는 친구가 가진 것처럼 보이는 자신감과 안정감을 목표로 삼으며, 그의 욕망을 따라 우리도 동일한 성공을 원하게 됩니다. 친구가 사회적으로 성공하면서 얻는 모든 긍정적인 감정과 충만한 존재감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이것이 우리의 욕망을 이끄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친구의 성공을 모방하여 자신의 욕망으로 삼고, 그를 모델로 삼아 동일한 대상을 욕망하게 됩니다. 이때의 욕망은 단순히 물질적인 보상(높은 월급, 직위 등)이 아니라, 그 친구가 가진 '존재의 풍요로움'인 것입니다. 이는 지라르가 말한 욕망의 삼각형과 존재의 결핍에 대한 중요한 예시로, 우리가 가진 욕망이 결코 독립적으로 형성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욕망이 자율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존재에 대한 결핍을 느끼며 이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모방적 욕망은 필연적으로 경쟁과 갈등을 유발합니다. 같은 대상을 욕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그 대상을 둘러싼 경쟁이 심화됩니다. 두 사람이 같은 것을 욕망하면, 그 대상 자체보다 경쟁 상대에 대한 적대감이 커집니다. 이는 단순히 물건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확인받으려는 투쟁으로 이어집니다. 직장에서 동일한 승진 자리를 두고 두 사람이 경쟁하게 될 경우, 승진 자체보다 "내가 상대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욕구가 갈등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실력을 평가받는 문제를 넘어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불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라르의 이론은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종종 자신의 욕망이 독립적이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욕망을 반사적으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인을 통해 매개된 욕망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스스로 욕망의 근원을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비싼 차를 사고 싶다고 느낄 때, 그것이 정말로 내 필요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욕망을 모방한 것인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르네 지라르의 통찰은 인간 욕망의 본질을 드러내면서도, 우리가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욕망의 뿌리를 성찰하고, 타인의 욕망에 무의식적으로 휘둘리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율성과 주체성을 얻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반성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더 깊고 풍요롭게 만드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욕망을 얼마나 의식하고 현명하게 다루느냐 하는 자세와 태도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단순한 모방을 넘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더 의미 있는 삶의 방식을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