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겋게 달군 쇠꼬챙이는 필요 없다. 지옥은 바로 - 타인이다!"(There's no need for red-hot pokers. HELL IS - OTHER PEOPLE!)(장 폴 사르트르, <출구 없는 방>중에서)
이 문장은 장 폴 사르트르의 희곡 《출구 없는 방》의 가장 유명한 대사 중 하나입니다. 사르트르가 그린 지옥은 우리가 아는 그런 지옥이 아닙니다. 불길도, 악마도 없습니다. 그저 평범한 방 하나, 그리고 그 안에 갇힌 세 사람뿐입니다. 창문도, 시계도, 탈출구도 없는 이 방에서 그들은 영원히 함께 있어야만 합니다. 처음에는 서로를 무시하려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서로를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판단하고, 비난하고, 결국 서로를 공격합니다. 각자의 숨겨진 모습이 드러날수록 그들의 관계는 더욱 끔찍해집니다. 이때 나온 말이 바로 '지옥은 바로 타인이다'입니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지옥”은 고통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물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출구 없는 방》에서 지옥은 벌이나 고문 도구로 구성된 전통적인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의 시선과 판단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존재의 불안을 의미합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타인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끊임없이 신경 쓰고, 그들의 평가와 판단에 따라 자신을 정의하려는 순간, 우리는 자유를 잃고 타인의 기준에 종속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타인의 반응을 예상하며 행동을 조정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직장에서의 한마디 발언이 동료의 평가를 바꾸진 않을까 고민합니다. 소셜 미디어에 사진을 올릴 때, ‘좋아요’ 수와 댓글에 민감해지기도 하죠. 동창 모임에서 한 실수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자신을 괴롭힙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스스로를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선은 칭찬과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억압하기도 합니다.
사르트르의 통찰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강렬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타인의 시선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좋아요’와 ‘댓글’로 인해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심지어 자신의 가치를 그 숫자들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타인의 인정은 잠시 위안을 줄 수 있지만, 그것에 의존하면 우리의 삶은 타인의 판단에 휘둘리는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우리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오해'란 제목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법정 스님이 불교 종단의 한 잡지사에 글을 투고 했습니다. 그 글을 본 잡지사 스님이 크게 칭찬하는 걸 보고 법정 스님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자네는 날 오해하고 있군. 자네가 날 어떻게 안단 말인가. 만약 자네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라도 있게 되면, 지금 칭찬하던 바로 그 입으로 나를 또 헐뜯을텐데.그만두게 그만 둬.’ 과연 그 스님은 다음 호에 쓴 법정 스님의 글을 보고 죽일 놈, 살릴 놈 했다고 합니다. 이에 스님은 글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합니다. "누가 나를 추켜 세운다고 해서 우쭐댈 것도 없고 헐뜯는다고 해서 화를 낼 일도 못 된다. 그건 모두가 한 쪽만을 보고 성급하게 판단한 오해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지옥이다”라는 말은 단순히 타인이 우리를 괴롭힌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그들의 판단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순간, 우리 삶이 지옥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시선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나요? 그 시선이 당신을 옭아매고 있지는 않나요? 사르트르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가라. 당신의 존재와 가치는 타인이 아닌, 바로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