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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바다 Apr 13. 2022

이란   이야기

테헤란  / 페르세폴리스  / 부셰르  /  하르그 섬 & 의리의 한국인

   

   이란은 한국 드라마인 ‘대장금’의 이란 현지 시청률이 90%에 이를 정도로 한국에 대한 친밀도가 높다. '의리의 한국인들' 영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초 약 2년여 생활(약 30년 전)하면서, 여러 가지 일이 많았었지만, 여러 현지인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인간적인 따뜻한 교류를 하였기에 수십 년이 지났지만, 좋은 감정을 지녔고,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첫 해외 여행지이자, 처음으로 근무하는 해외국이었다.   

   

   여행 자유화 이전 옛날에는 해외여행 전, 여권 발급 시 관계 기관에서 해외여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교육을 받았다. 주요 국가별 현황, 금기사항, 비상시 대책, 매너 등인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현재의 이란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첫 비행은 1991년 7월 김포 출발 도쿄 나리타 공항에 착륙했다. 당황하고 조바심 많은 어리바리한 단독 초보 여행자로서 그때 분위기는 상상에 맡겨 드린다. 기존 근무자가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긴급 부임하게 되었다. 준비 기간이고 뭐고 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그 당시 중동 해외 근무는 단신 부임이 많았다. 나도 그러하였다. 해외 근무자들끼리 우스게 소리로 해외 근무를 "몸 판다"라고 했다.  그렇게 외화를 벌어 국가에 보탬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일은, 좀 멋쩍은 일이다.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이란 에어'로 환승해서, 베이징 공항에서 연료를 공급받고, 기내 청소를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베이징 공항은 그 당시에는 그렇게 번잡하지 않았다. 활주로가 시멘트 색깔로 되어 있어 수더분한 분위기였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기내에 들어와 즐겁게 하는 모습과 처음 들어 보는 중국어 고저 악센트가 기억에 남는다. 기내 대기했다가 다시 출발했다. 비행기 옆 좌석 중국인 젊은 친구'만리쟝숴'라며 멀리 보이는 만리장성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은 먼 거리 비행 끝에 테헤란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화장실에 큰일 보고 나서 휴지가 안 보여 크게 당황했다. 수도 호스 꼭지를 틀어 물로 씻어 내었다. 나중에 옆지기에게 물어보니, 그것이 비데같은 것이며 위생적이란 말을 들었다.

      

<<테헤란 : Teheran>>

   이란의 수도로 인구 1,105만 명이 살고 있다. 해발 1,200m의 고원(高原)에 위치해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도로변으로 흘러, 거대한 메타스퀘아에 수분을 공급하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1796년 카자르 왕조의 수도가 되면서 발전하였다. 이란-이라크 전쟁 중에는 스커드 미사일에 의해 많은 피해가 났다. 1월부터 12월까지 모두  연평균 영상 기온이고, 7월과 8월은 평균기온이 30도에 육박한다. 무엇보다 강수량이 적고, 건조하다. 시내 각 지역의 전통시장 ‘바자르’를 방문하면 진귀한 물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카펫 상점 입구에는 이란 특산물 수공예 카펫를 펼쳐 높이 걸어 놓았다. 명품으로 비싸다. 장인들이 동판에 망치로 각종 요철 작품을 새겨 넣은 것이 있었다. 전성기 시대 다리우스 왕에게 주변 각 나라 사절들이 알현하는 장면을 표현한 작품이 많았다. 페르세폴리스의 벽 조각상에서도 볼 수 있다. 휘황 찬란한 색깔을 버무린  유리 제품을 구경할 수 있었다. 특히 양고기 케밥이 별미였다.      


   팔레비 왕(1925~1979) 궁전으로도 불리는 백색 궁전 (팔레비 왕조를 세운 레자 샤의 개인 주거지이자 집무실로 사용)이 볼만하다. 과거 한국 박정희 대통령의 선물이라는 자게상등이 전시된 것도 볼 수 있었다. 서울 테헤란로의 이름은 테헤란 시에서 유래된 것으로, 1977년 6월 테헤란 시장이 내한, 수교의 의미로 지명을 하나씩 바꿔 명칭 하기로 하여 삼릉로를 테헤란로로 바꾸게 되었다. 테헤란시에도 서울로(Seoul Street)가 있다.     


   카스피해 여행 시 엘부르즈 산맥(이란 최북단 전체를 동서방향으로 900km에 걸쳐 아치형으로 뻗어 있다)을 반팔차림으로 넘게 되었는데 한여름 정상에서 폭풍과 진눈깨비 만난 기억이 있다. 발아래 수목이 없는 흙과 바위만 있는 황량한 풍경이었다. 카스피해 연안에 위치한 평화롭게 보이는 별장들이 이채로웠다. 카스피해의 첩갑상어 알이 유명하다. 이란 에어 타면, 식사 때 통조림 메뉴로 나왔다.  항공기 마크는 신화에서 행운의 새 또는 천국의 새로 일컬어지는 동물인 호마(Homa, 또는 Huma)로서, 이란인들이 사랑한다.      


   다마반드산(Mount Demavend) 유명하다. 테헤란에서 북동쪽으로 약 68k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그 높이는 5,609m로 눈으로 덮여 있고, 이란뿐 아니라 중동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잠재적 활화산이자 성층 화산이기도 하다. 이란도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거주 한국인들이 자주 가는 스키장들이 많이 모여 있다. 한민족의 백두산처럼, 거의 모든 이란 신화에 등장하는 이란 역사에서 영적으로 신성시하는 곳이다.     


<<페르세폴리스 : Persepolis>>

   페르시아 연안에 위치한 항구도시 부셰르에서 시라즈방향에 있는 페르세폴리스 여행할 때 광활한 산악 초원 지대의 몇 천마리나 되는 거대한 양 떼와 양치기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마침 양 떼가 도로를 가로질러는 중이라 한참 기다렸다가 할아버지와 기념촬영을 했다. 할아버지의 소년 같은 해맑은 웃음과 깊이 파인 주름, 그리고 모자 등 햇빛 가리개도 안 한 구릿빛 얼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할아버지 수중에는 막대만 하나 있었는데, 어떻게 그 많은 양들을 몰고다니며 유도할 수 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이란 남서부 시라즈에서 북동쪽으로 51㎞ 정도 떨어져 있다. 다리우스 대왕(BC 522~486 재위) 시절에 이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였으며, 기원전 330년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페르시아 원정 때 부분 파괴되었다. 천정과 내부 시설이 없어 지고, 석주와 일부 벽면만이 남아 있다. BC 330경의 그 웅장한 규모에 압도당한다. 보물창고는 전체 유적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의 보물을 약탈하여 옮기느라 2만 마리의 노새와 5천 마리의 낙타를 동원하였다고 한다.     

   지명이 그리스어로 '페르시아의 도시'를 의미한다. 산을 배후에 두고 사면(斜面)을 이용하여 석조 기단(基壇)을 만들고 그 위에 궁전·후궁(後宮)·보고(寶庫)·기록보존소·아파다나(謁見殿)·백주 궁전(百柱宮殿) 등을 줄지어 지은 장대한 것이었다. 페르세폴리스 유적 입구에는 거대한 인면 유익(人面有翊:사람의 얼굴에 날개를 가진) 황소상이 2쌍 조각되어 있는데, 하나는 동쪽을, 다른 하나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아파다나는 72개의 대원주(大圓柱:높이 20m)로 받쳐져 있고, 주두(柱頭)는 황소와 뿔이 난 사자머리로 장식되어 있으며, 아파다나에 오르는 계단 측벽에는 전 세계에서 조공(朝貢)하는 민족들을 돋을새김(浮彫) 조각을 하였다.


   당시의 오리엔트 건축 미술을 집대성한 것이다. 왕의 집무실인 다차나에는 옥좌에 앉은 다리우스 1세와 왕세자 크세르크세스 아래로 신하들이 줄을 맞추어 서 있다. 또한 기록보존소에서 출토한 점토판(粘土板) 문서 약 2만 장을 통하여 당시의 사회·경제가 밝혀졌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두산백과  참조)        


    돌산 중턱에 동굴을 파고 왕들의 무덤을 몇 곳에 만들어 놓았다.


<<부셰르 : Bushehr>>

   부셰르(페르시아어: بوشهر‎)는 이란 남서부와 페르시아만 연안에 위치한 도시로, 부셰르주의 주도이며 인구는 165,377명(2005년 기준)이다. 이란의 대표적인 항구 도시 가운데 하나이며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1,281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덥고 습한 기후다.


   1991년 7월 테헤란 공항 출발, 부셰르 공항에 도착했다. 테헤란은 한국 날씨와 비슷하다면, 부셰르는 열대지방 날씨였다. 발아엘부르즈 자그로스 산맥위를 통과 했다. 일기 불순으로 요동치는 중 비행기였다. 출입문이 열리자, 더운 공기가 훅 기내로 바로 들어왔다. 처음 겪어 보는 상황이라 몹시 당황스러웠고, 한국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어린아이 마음'같이 갑자기 들었다.      

   

   현지인 직원 무사비 씨가 마중 나와 주어 안심을 했다. 그는 훤칠한 키에 미소를 띠고 있어, 미남 영화배우를 연상하게 하였다. 그와 함께 있으면, 마음의 평화를 주는 그런 고마운 존재였다. 이란-이락 전쟁 직후라, 마을 거리 집 담벼락에 커다란 전사자 초상화들이 그려져 있었다. 지역 누군가의 아들들이었다. 골목을 누볐던 생전 젊은 얼굴들이었다.


   부셰르 교통시스템은 4거리 중앙이 로터리인 곳이 많았다. 로터리 중앙의 화단에는 낯설지만, 각종 화사한 화려한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묘하게도 그 꽃들이 전사자들 초상화와 연결되어 상여 꽃 같은 슬픈 인상으로 남아 있다.      


   이란도 페르시아 제국으로서 전성기 세계를 호령하던 승승장구 시절도 있었다. BC 587년 바빌로니아 제국의 침략으로 이스라엘 유다 왕국이 멸망하고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건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이때부터 기원전 538년에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에 의해 풀려날 때까지 약 50년 동안 바빌론에서 포로 생활을 했다.


   페르시아 키루스 2세 덕분에 이스라엘 유대인 포로들이 바빌론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가수 'Boney M'이 노래한 유대인들의 슬픈 노래 ‘Rivers of Babylon’가 증명한다.  슬픈 역사도 있다. 그리스와 전쟁 시 마라톤에서 패한 역사로, 마라톤 종목을 인정하지 않는다. 칭기즈칸 군대가 정복 전쟁할 때, 부셰르까지 쳐들어왔다고 한다. 부셰르가 바다 항구이기에, 땅의 끝인 줄 알고 회군하였다고 한다.      


<<부셰르 원자력 발전소>>

   부셰르 원자력 발전소는 이란 핵개발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 이란과 러시아의 합작으로 건설된 원자력 발전소이다. 1975년 당시 이란 정부와 서독 정부가 60억 달러 상당을 투입하여, 서독의 지멘스가 원자로 2기를 건설하기로 하였다. 1979년 1월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원자로 1기는 50% 정도, 나머지 원자로 1기는 85% 정도 완성된 채로 중단됐다. 이란-이라크 전쟁 중이던 1985년 2월부터 1988년까지 이라크 공군 부대의 공습을 받으면서 원자로 시설이 크게 파괴되었다.     


   1995년 이란과 러시아가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위한 경수로 공급 계약을 체결했는데 계약 금액은 12억 달러 상당으로 추산된다. 이 조약에 따라 이란 측은 사용이 끝난 핵연료봉을 넘겨주는 대신 러시아 측은 핵연료봉을 재처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 이스라엘을 비롯 세계는 원자력 발전소가 핵무기 프로그램의 시초로 보고 매우 우려하고 있다.


<<시라즈 : Shiraz>>

   시라즈는 시인들의 도시 (하페즈의 도시), 장미의 도시, 와인의 도시 등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전역에서 술을 소비하는 것이 불법이지만, 과거에는 와인이 유명했다.

   시인 하페즈(14 세기 인물)의 영묘가 있다. 괴테가 이 시인의 독일어 번역판의 시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서동시집〉(西東詩集)을 읊은 일로 유명하다. 신비주의자였던 그는 술·미녀·연인에 대하여 도취적(陶醉的)인 시를 지었다고 하나 표면상의 의미 이외에 내면에도 신비주의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시라즈의 미녀가 내 마음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뺨에 있는 점을 바꾸어 주리니 사마르칸트부하라도"로 시작하는 시는 특히 사람의 입에 회자(膾炙)되며, 티무르와의 조우(遭遇)를 둘러싼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하페즈 시집〉은 유럽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었다.(위키백과)


   부셰르에서 시라즈 방향으로 가다가 보면 군데군데 천연 노천 온천이 있다. 무사비 씨와 동료들과 야유회 겸 같이 갔다. 작은 하천 옆 잡초 우거진 곳에 노천탕이 있었다. 물론 무료 공짜다.  취약점은 지하에서 자연 발생 온천수로 온도 조절 및 분출물 량 조절이 안되어,  피부로 갑자기 뜨겁다고 느껴지면, 지체 없이 튀어나와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가끔씩 온천수가 류되어 지하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온천 바닥에 그러한 사고로 인한 인골이 많이 있다고 한다. 주의할 점은 호기심이 많아 물속에서 인골 확인하려고 의욕을 앞세우다가는 온천수 온도가 예상보다 훨씬 높아 피부가 익어, 고통이 한 달 이상 지속될 수 있다. 온천수가 솟아 오르는 지점에서 조금 떨어진 실개천에서 온천 즐기기를 추천한다. 온도가 많이 내려 간다. 참고로, 현지 의사의 전언에 의하면 실재 인골 확인 시도해본 사람들, 여러 종류의 환자(피부과, 안과등)들있다고 한다.


<<하르그 Khàrg Island >>

   하르그 섬은 이란 최대의 원유 적출항이며, 원유 저장탱크가 십 여기 있다. 1980~1988년이란-이라크 전쟁의 미사일 공격 격전지였다. 페르시아만 북동부의 섬으로 부셰르에서 배로 서북방향 10시, 배로 2시간의 거리에 있다. 운 좋으면 배를 따라오는 돌고래 떼들의 환영을 받으며 오갈 수 있다. NIOC(이란 국영 석유회사)가 있는 시라즈 등 육지로 작은 소형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짧은 활주로를 가지고 있다. 북서쪽에 해수욕이 가능하고, 산호 구경과 채취가 가능했다. 회교 사원, 병원, 약 200m 길이의 상가가 있다. 인구는 약 오천 명정도로 추정된다.   

  

   1991~1993년 한국 쌍용, 대우 등이 이라크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저유 탱크 복구공사를 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발생된 걸프전(미국 주도 34개국 vs 이라크전  1990~1991) 발발 시, 콘크리트 구조물 설치 및 참호를 파기도 하고 철수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해상에서 발사된 미국 항공모함 미사일이 인근에서 이라크로 발사되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공사 중, 미사일 폭격으로 녹아내린 직경 100m 정도의 저유 탱크 내부 휘발성 강한 잔유물 퍼터에 화재가 났다. 현지인의 오랜 전쟁 경험 노하우 및 목숨을 건 헌신적인 숙달된 대처, 자발적 진압 동참으로 화재를 천신만고 끝에 진압했다. 탱크 내부 산소가 불에 타서 산소가 극히 희박했다. 탱크 외부 길바닥에는 가쁜 숨을 몰아 쉬는 진압 참여 현지인들이 널부러져 있었다.가마솥 같은 열기를 견디어 냈다. 불발탄 폭발 위험도 있었다.     

   

   그 당시 인터넷 시스템이 없던 시절이라, 팩스가 최신의 통신 수단이었다. 한국 본사로 부터  팩스로 1줄 타이틀, 전체 1~2 페이지 방금 구운 '따끈 따끈한'최신 뉴스를 고맙게 받아 보았다. 약 2주 후  한국으로 부터 인쇄 신문이 항공,배,인편 등을 거쳐 긴 여정 끝에 도착했다. 3김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동료들끼리 내기 걸기도 했다. 1992. 12. 18일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었다.  


   선박 출입용 돌출 시설물인 제티(Jetty)가 작은 항구역할을 하였다. 하루 1번 부셰르로 나가는 정기 선박(약 30~50인승, 오전 출발, 오후 귀도) 이 있었다. 귀신나무라는 별칭을 가진 나무가 특이하다. 뿌리가 어른 키 높이 나무줄기에서 내려와 뻗혀 다시 땅속으로 들어간다. 이란 여성 및 남성은 아리안족으로서 얼굴 체형이 서구 유럽과 유사 미남 미녀가 많다. 차도르를 쓰고 있어도 미인들로 추정된다. 여성들 보고 미인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가 현지 기관에 불려 가 혼난 사람이 있었다.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마다, 당찬 현지 여직원 세이니 양이 적극 도와줘서 여러 어려운 일들을 무사히 수습할 수 있었다.

     

   이란인들은 축구를 즐기고 잘한다. 대체로 체격이 크다. 최근 한국이 월드컵 예선에서 이겼지만(3월 20일, 2:0승), 국가 대표팀 역대 전적은 한국이 열세다.(피파 랭킹 이란 21위, 한국 29위) 현지 기관의 제의로 축구 시합을 가졌다. 급조팀 구성, 열혈남아들의 한-이란전이 있었는데, 아쉽지만 실력 차이로 졌다. 머리를 붕대로 싸매는 투혼으로 맞섰지만, 그 팀원들의 실력워낙 뛰어났다. 그 팀에 '젊은 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쇠못 징이 박힌 스파이크가 달린 축구화를 신고 나타났었다.


   미국 유학파 출신 영어 선생과 자주 모임을 가졌었는데, 거구에 유머도 있었다. 부모님 묘지에 따라갔었는데, 석회 바른 평장에 비석이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방문이라서 그런지, 그는 작은 돌 하나를 묘지에 올려놓고, 무릎 꿇고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기타 : 칸간, 카란즈 지역 등>>

   건설수주는 1975년 3월 삼성이 코람샤르 항만 확장공사를 수주하면서부터였다. 대림, 포스코, 대우, GS, 현대, 쌍용 등이 이란에서 건설사업을 펼쳤다. 특히 대림은 칸간 가스 정제공장 건설공사, 이스파한 정유시설 증설 프로젝트, 카룬 제4 수력댐 건설공사 등 굵직한 사업을 수주하며 이란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대림이 1988년 12월에 완공한 칸간지역의 일산 3,400만 배럴 공사는 특기할 만하다. 이란-이라크 전쟁 중임에도 목숨을 건 시공을 계속하였고, 이라크의 계속된 폭격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책임감.불굴.불퇴전의 의지로 마침내 완공하였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추가 공사를 계속 수주하였다. 이란에서 '의리'하면 대림, 대림명성이 높았다. 덕분에 '의리'하면 '한국인'이 되었다. 아마 '대장금' 열기도 현지 한국인들이 보여준 '의리'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쌍용은 하르그 원유 저장탱크와 카란즈 가스 주입시설 등을 시공했다. 대우 높은 기술력과 끈기로  해상에 시설물 설치공사, 하르그 정유 공사를 하였다.     


<<개황>>

   정식 명칭은 이란 이슬람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으로, 페르시아만 연안에 위치하며, 해안선의 길이는 820㎞이다. 면적은 164만 8195㎢(한반도의 7.463배, 세계 17위)이며, 인구는 8,602만 명(2017년 현재, 세계 17위), GDP 약 6,828억 5,900만 달러 세계 22위, 수도는 테헤란(Teheran)이다. 한국과 –4.5시간 차다. 국가번호 코드는 98다. 화폐단위는 리알(Rial)이다     


   주민은 페르시아인 61%, 아제르바이잔인 16%, 쿠르드인 10%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는 페르시아어와 터키어·쿠르드어·아랍어가 사용되고, 이슬람교(시아파 94% 수니파 4%) 등을 믿는다. 산유국으로 석유산업이 발달되었으며 사회문화적으로는 왕정 당시의 서구적인 모습이 사라지고 이슬람교 문화가 강조되고 있다.     


   지역을 나누어 살펴보면, 카스피해 연안은 지중해성 기후, 내륙 고원은 대륙성 또는 사막기후, 페르시아만 연안은 아열대 기후 등으로, 이란의 기후는 지역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카스피해 연안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드물고, 연간 1,000m 이상의 강수량을 보여 연중 습한 상태를 유지하며, 여름철 기온은 30℃를 넘지 않는 온화한 기후를 보인다. 반면 연안에서 멀리 떨어진 이란고원 일대는 엘부르즈·자그로스 두 산맥으로 인해 강수량이 극히 적어 소금 성분이 많은 카비르 사막과 루트 사막과 같은 사막이 나타나며, 건조한 내륙성 기후로 인해 연교차가 심하다.


   이란의 남부 페르시아만 연안과 오만만 연안의 여름은 특히 무더워 기온이 45℃를 넘고 매우 습하며 겨울은 온화하다. 연간 강수량은 135mm~355m 사이다. 이란의 북서부인 자그로스 산맥의 산간지 지대나 아제르바이잔 고원은 눈이 자주 오고, 겨울 최저 기온이 영하 20℃에 가까운 혹한을 경험한다.     


<<약사>>

   이란 고원에 처음으로 국가가 건설된 것은 기원전 559년으로,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 건국이 바로 그 시작이다.  당시 다리우스 1세는 흑해· 나일강·인더스강까지 영토를 확장하는 등 제국을 건설하였으나, 기원전 490년 그리스와 마라톤 전투에서 패한 뒤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셀레우코스 왕조·파르티아 제국을 거쳐, 3세기 초 사산왕조 페르시아 건국으로 다시 페르시아의 부흥시대를 맞아 400여 년간 영화를 유지하다 651년 아랍인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     


   1906년 근대 헌법이 공포된 뒤 1925년 팔레비 왕조가 세워졌으나, 1980년 9월 호메이니(Khomeini)에 의하여 이슬람교 공화국으로 되었다. 정치체제는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정이나 최고 통치권은 국가지도협의회와 헌법수호위원회에 있다. 아랍국가인 이라크와는 국경문제와 종교문제를 명분으로 한 전쟁을 1980∼1988년까지 치러렀다. 군사력은 정규군과 혁명수비군을 합하여 60만 명에 이른다. 노루즈(페르시아어: نوروز, nouˈɾuːz)는 이란의 양력설이며 전통적인 축제이다.


<주요 위치 지도 & >

  이란 : https://goo.gl/maps/xCdYstJGkvXZmyUcA

     페르세폴리스 : https://goo.gl/maps/M3VBSLjwWC5kfvHB8

     테헤란 : https://goo.gl/maps/5fMJEvkVczSCCRkh7

     부셰르 : https://goo.gl/maps/UARVovYtyiGUEm8g8

     시라즈 : https://goo.gl/maps/dYzzHmX2sf21qVb29

      Rivers of Babylon (바빌론 강가에서/Boney M) : https://youtu.be/UB4OKEYqC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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