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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Jul 29. 2020

Vmc

“성장통”

처음에는 캐년과의 호흡이 좋았다. K가 가르쳐준 체어 플라이트를 반복해 연습해서인지 첫 시뮬레이터 수업에서 에게 칭찬까지 들었다.


“너 왜 이렇게 잘해?”

“연습 좀 했어.”

“좋아. 그럼 다음 거 미리 가르쳐줄게.”


기분이 좋았다. 와의 수업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청난 각이었다. 내가 한번 기동 절차를 잊어버리고 실수했을 때 그는 지킬 앤 하이드 마냥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5분 전에 가르쳐 준걸 까먹었다고?”


한 번이라도 자신이 가르쳐준 것을 잊어버리거나 실수했을 땐 그는 가차 없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학생의 인격을 무시하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Vmc 훈련을 할 때였다.


Vmc (Minimum controlable airpeed with one engine inoperative)
: 한쪽 엔진이 꺼졌을 경우 조종 가능한 최저 속도. 러더를 최대한 밟아 직선 비행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 속도.   


"이제 내가 한쪽 엔진 끌 거야. 엔진이 멈출 때는 러더를 밟아서 방향을 유지하고 속도를 유지하고 믹스처 올려. 그다음엔 프로펠러 올린 다음 파워 올리고 바퀴 올려."


멀티 엔진 비행 교육의 핵심은 한쪽 엔진이 꺼졌을 때 당황하지 않고 얼마나 안정된 비행을 이어가느냐였다. 캐년이 컴퓨터를 조작해 시뮬레이터 안에서 엔진 하나를 꺼버리자 비행기는 왼쪽 바닥을 향해서 휘청거리며 기울었다. 나는 즉시 오른발로 러더를 있는 힘껏 밟았다. 하지만 좀처럼 직선 비행이 되지 않았다. 


“너 바보야? 왜 이걸 못해. 몇 번이나 알려줘야 돼?”   

 

옆에서 수업하던 다른 교관과 학생이 무안해할 정도로 학생의 자존심을 뭉갰다. 늦겨울 비 내리는 날이 이어지면서 그는 비행 훈련 모두 취소고 나와 시뮬레이터 수업 계속 진행했다. 그가 소리 지르고 꾸짖는 날이 늘면서 나는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기자 생활하면서 생긴 깡다구에 웬만해서 놀라거나 주눅 들지 않는데 캐년이 내 비행교육을 책임지는 교관이다 보니 그의 비위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오케이 하기 전까지 연방항공청 시험마저 볼 수 없었다. 교관과 학생은 갑을 관계가 명확했다. 렵사리 시뮬레이터 평가를 통과하고 실제 비행 훈련을 시작하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시뮬레이터에서 이미 배우고 잘했던 걸 왜 못하는 거야? 당장 공항으로 복귀해!”


그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비행 중 기동 절차나 ATC를 하나라도 놓치면 즉시 수업을 중단하고 공항으로 복귀해야 했다. 멀티 엔진 비행기는 시간당 비행 교육비가 단발 엔진 비행기에 비해 100달러 정도 더 비쌌기 때문에 내심 부담스러웠다. 지속적으로 수업해야 내 비행실력이 늘 텐데 계속 중간중간 수업이 중단되면서 배우다가 만 느낌이라 속상했다.


‘학교를 옮겨야 하나?’


매일 고민하던 난 한국으로 일찍 돌아간 G에게 전화했다. 그는 캐년과의 불화로 학교를 떠났고 한국에서 사업용 조종사 자격을 취득한 상태였다.


멀티 엔진 비행기 BE-76 N57RT 앞에서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네. 형도 잘 계셨죠?”

“아니요. 저 요즘 캐년 때문에 힘들어요.”

“아니 형? 교관으로 캐년을 배정받은 거예요?”

“네. 저 여기서 못 마칠 거 같아서 다른 학교 좀 알아보고 있어요.”

“형. 캐년이 정말 나쁜 놈인데 그래도 한 곳에서 마치는 게 나을 거예요.”


그의 말이 옳았다. 학교를 옮기게 되면 그만큼 소요되는 비용과 기간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캐년과 비행하면 할수록 스트레스가 더해갔다. 나는 결국 치프 교관인 랜든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교관을 바꿔달라고 부탁한 뒤 랜든이 거절하면 학교를 옮길 생각이었다. 날씨 좋은 캘리포니아의 학교 몇 곳에 미리 연락까지 취해 둔 상태였다. 랜든은 캐년을 불러 내 얘기를 같이 듣도록 했다.


“교관의 역할은 학생의 부족한 부분을 가르쳐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으로 만들어 주는 거 아니야? 그런데 캐년은 그걸 조금도 못 기다리고 계속 수업을 중단시켜. 그러면 어떻게 내 비행 실력이 늘겠어?”


그러자 캐년이 내 문제점을 지적했다.


“넌 기동 절차도 정확히 알고 비행도 잘하는데 내가 지적한 사소한 걸 안 고쳐.”


옆에서 이야기를 귀담아듣던 랜든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네가 알다시피 여기 있는 교관들은 항공사 근무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야. 우리가 이렇게 혹독하게 가르치는 건 너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항공사에서 겪을 힘든 상황들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야.”


부정할 수 없었다. 다른 학교보다 유독 엄격한 교육 탓에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옮기거나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교장인 유리와 랜든, 교관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모여 논의한 끝에 내린 결론은 다시 시뮬레이터 연습을 완벽하게 한 뒤 랜든이 직접 내 실력을 평가하기로 했다. 캐년과의 냉랭한 기운 속에서 두 차례 시뮬레이터 수업을 가졌다. 캐년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너 이제 준비가 된 거 같아.


그는 랜든에게 찾아가 내가 평가받을 준비가 됐다고 전했다. 랜든은 학교에서 가장 혹독한 평가관이었다. 기본적인 지식 하나라도 놓치면 그걸 꼬투리 잡아 학생을 새롭게 ‘개조’하기로 유명했다. 주변 학생들은 걱정했다. 그들의 우려와 달리 캐년에게 이미 호되게 당한 뒤라 나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그간 10여 차례의 멀티 엔진 시뮬레이터 비행에서 가장 완벽한 비행을 선보였다. 이어진 실제 비행에서도 별다른 실수가 없었. 캐년도 더 이상 내게 지적하지 않았다. 그와 보낸 석 달을 돌이켜봤다. 교관들이 퇴근하고 학생들이 떠난 저녁시간에 S와 단둘이 시뮬레이터에 앉아 모의 실습비행을 두 세 시간씩 연습하고 귀가했다. 그 덕분에 다른 학생들보다 일찌감치 기동 절차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수업이라기보다 하루하루가 평가에 가까웠다. 그의 평가 기준이 남들보다 엄격한 데다 자신의 학생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더 완벽해지기 위해 나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 달 뒤 미국 연방항공청에서 나온 평가관의 체크 비행  시동을 걸고 착륙할 때까지 편안하게 비행을 마다. 나의 합격 사실을 알고 캐년은 기뻐했다. 나는 심드렁했다. 자격증을 취득한 사실보다 그로부터 해방됐다는 사실 행복했다. 학교를 떠나기 전 모든 교관들과 기념 사진을 촬영했는데 캐년과는 찍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그에 대한 소심한 반항과 증오의 표현이었다. 


조종사는 자신은 물론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이 때문에 비행에 완벽하고 능숙해야 하며 그래서 늘 공부하고 연습해야 한다. 캐년은 나를 괴롭혔고 그로 인해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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