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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스타 Dec 28. 2022

[신혼일기] 30여 년 인생, 이사는 처음이야

나의 동네 친구는 어디에 있나요

초등학교 6학년, 열세 살 나는 앞집에서 앞집으로 이사를 갔다. 몇 걸음이면 새로운 우리 집이었기 때문에 자잘 자잘한 나의 책들은 내가 직접 양손에 들고 짐을 옮기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나의 첫 이사였다. 집만 옮겼을 뿐, 같은 골목에 살던 친구들도 그대로였고 나의 학교도 동네 어르신들도 모두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지금까지도 가장 친한 나의 오랜 친구들은 이때부터 함께였다. 같은 학교, 같은 학원, 같은 독서실, 같은 미용실… 그렇게 19살이 되도록 같은 동네에서 같은 친구들과 함께 했다.


대학교 1학년, 스물한 살 나는 버스로 30분 거리의 동네로 이사를 갔다. 동네에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엄마와 아빠가 있었고 우리 집 강아지가 있었다. 학교를 다니든, 친구를 만나러 가든, 어디를 가든 서울에서는 1시간 정도 이동 시간을 기본으로 잡으니 외로울 틈이 없었다. 나의 오랜 친구들과 물리적인 거리는 조금 멀어졌지만 연락해서 마음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었다. 대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느라 외로울 틈 없이 지냈다. 교회 친구들과도 열심히 노느랴 참 바빴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은 서울 하늘 아래 있으니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가면 금방이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는 데에 거리를 제일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서른한 살, 2년 전의 나는 서울에서 대전으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어차피 나는 프리랜 서니까 어디서든 일할 수 있어서 편해’, ‘기차 타면 45분이면 서울에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니까 예전처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쉽게 만날 수 있어’, ‘시기마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왔으니 이곳에서도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될 거야’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이곳에 왔다. 첫 해에는 서울로 왔다 갔다 일해야 했고, 또 집에서 비대면으로 하는 일이 있어서 외로운 줄 모르고 지냈다. 올해는 조금 달랐다. 서울에서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대전에서 정착을 해보고자 새로운 사람들과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나씩 삐그덕 삐그덕 내 일상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첫 째,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며 적응하는 기간 동안 나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었고, 누구와 트러블을 일으켜 본 적도 없었다. 사회생활에 큰 어려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사회생활 능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어려움을 마주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휴.. 그러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고 스트레스가 높아져갔다. 문제는, 나의 스트레스로 인한 불똥을 온몸으로 맞을 사람은 바로바로! 남편이었다. 당첨… 이전과 다를 것 없이 남편은 똑같이 “맛있는 밥 해줘서 고마워. 잘 먹을게!” 하고 밥을 먹는 것인데도, 나는 ‘뭐야.. 진심으로 말하는 것 같지 않아’ 싶어서 감정 조절 능력이 완전히 고장이 나버리는 것이다. 불쌍한 내 남편… 내가 주는 눈칫밥 먹다가 체했다.


남편이 퇴근하고 나면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한다. 산책을 하면서 남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시작한다. 나의 남편으로 산다는 게 정말 어려운 점이, 너무 내 편을 들으면 객관성이 떨어지고 너무 남 편을 들으면 삐쳐버린다! 휴… 남편도 회사 생활 하면서 힘들었을 텐데 쉴 틈을 주지 않고 내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다 풀어버리는 것이다. 한 번은 나도 남편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 수다도 떨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나가고 싶은데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이었다. 일단, 대전에서 서울을 한 번 갈 때면 뽕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에 적어도 약속 2개는 만들고 가는 것이다. 점심에 올라가서 엄마랑 밥 먹고, 저녁에 아빠 퇴근하시면 가족들끼리 밥 한 끼 먹다 보면 하루가 금방이다.


내가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나랑 똑 맞는 사람을 만나면 잘해줄 수 있는데… 부담스럽지만 않다면, 우리 집에 초대해서 맛있는 것도 만들어주고 싶은데… 그러다가 막상 올해 사람에게 받은 상처들이 생각나서 마음을 접기도 한다. 이럴 땐, 친구들이 이렇게 말한다. “지영아, 얼른 아기 낳아. 아기 낳으면 친구 금방 만들 수 있어.”


가끔은 일로부터 분리해서 동네 친구와 소소한 일상 이야기도 나누고, 실컷 수다를 떨고 싶다. 멀리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이 동네에도 내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마음도 지금보다는 훨씬 넓어질 것 같다. 남편에게 ‘내가 결혼해서 여기까지 와서 살고 있는데’라고 토 다는 못된 마음도 사라질 것 같다. 힝… 한 해를 돌아보니 남편에게 미안함만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들어주고 이끌어주는 남편에게 고맙기도 하고, 내년에는 좀 더 상냥하고 다정한 아내가 되어야겠다고 (작심삼일 일지라도) 스스로에게 약속해 본다. 그리고, 내년에는 좋은 친구도 생기기를! 육아 친구들도 생겨나기를!


“내 하나뿐인 단짝 친구 남편아, 내가 내년에는 넓은 마음으로 다정하고 상냥하게 대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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