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이지만 사실 환경의학에 더 집중하고 있고, 직업의학은 다른 직업환경의학과 선생님들께서 훨씬 집중하고 계신다. 직업의학의 논의들이 어쩌면 경영자나 자본가들의 눈에는 눈엣가시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고도의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현재의 베트남과 같은 개발도상국의 지도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하지만 말이다, 무조건 노동자란 말에 두드러기 일으키고 알레르기 일으키기 전에 딱 한 번만 제대로 생각해보자. 정치적 논의는 배제하고, 건조하게 생각해보자는 이야기이다.
자본주의의 생산 요소는 토지, 자본, 노동인데 (이과도 중학교 사회시간에 배웠을 것이다.), 전형적인 노동자 계급은 유일하게 가진 것이 '노동' 뿐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가진 자원을 투입해서 돈을 벌고 있는데, 이 유일하게 가진 자원이 병들거나, 다치거나, 죽는다?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무작정 노조 우선주의를 외치는 건 아니다. 다른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과 다르게 필자는 석사에서 경영학을 공부해서 그런지 (상당히 애착이 있었다.) 그런지 오히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더 자본의 입장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말이다, 한쪽 (노동자) 에서는 유일하게 가진 자원을 투입하는데, 다른 한쪽 (자본가, 토지주) 에서는 가진 자본 (혹은 토지)의 일부만 투입하면서, 노동자의 유일한 자원이 병들거나, 다치거나, 죽는 것을 방조한다고? 이건 좀 공정성 측면에서 아니다 싶지 않은가.
물론 자본가 (사업주)도 다 같지 않다는 걸 이해한다. 한계상황에 몰린 자본가도 있고, 빚 까지 내가면서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주도 있다. 까딱 잘못하면 대표이사 연대보증까지 서서 대출을 일으켰는데, 자기가 평생 빚쟁이가 되서 쫓겨다니면서 살 수 있다. 그거 이해한다. 또 불안한 마음을 안고 스타트업에 뛰어든 젊은 스타트업 대표도 이해한다. 전환상환 우선주라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으로 투자를 받아놓고, 잘못되면 대표 연대보증까지 선 상태에서 까딱 망하면 매우 힘들어질 수 있는 스타트업들도 이해한다. 너무 잘 이해해서 정말 안타깝다. 그런데,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도 이런 대표의 사정을 이해한다. 그래서 스톡옵션으로 돌려놓고 박봉 받아가며 대표랑 밤새서 일하는 것이다.
하여튼 노동자 측과 자본가 (사업주) 측은 서로를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그래서 '서로의 가장 핵심적인 자원, 마지막 남은 자원만은 건드리지 말자. 이것까지 건드리면 서로 죽기살기로 싸운다.' 이런 합의조차 서로 이해하고 있다고 본다. 그럼 문제는 무얼까. (1) 순수한 토지주 (토지만 투입하는 플레이어)와 (2) 거대 자본 세력이다. (1)의 순수한 토지주는 리스크가 거의 없고 (땅만 빌려주고 임대수익을 올린다.) (2)의 거대 자본 세력은 가진 자본의 일부만을 베팅할 뿐이다. 그거 없어져도 전체 자본의 생존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 마치 유럽 15-16세기 대항해 시대에 선원들은 목숨을 걸고 배를 탔는데, 귀족이나 왕실들은 가진 재산의 일부만 베팅했던 것과 비슷하다. 배가 침몰하면 선원들은 목숨을 잃지만, 왕이나 귀족들은 태운 돈만 잃어버릴 뿐이다. 큰 타격이 없다.
위의 두 가지 세력이 노동자 측의 유일한 자원인 신체를 병들게 하거나 (직업병), 다치게 하거나 (직업성 손상), 죽게 하는 것은 (산재 사망), 분명히 문제가 있다. 공정한 게임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른 회사보다 월급 100만원 더주면 되잖아. 정말 그걸로 보상이 된다고 생각하나? 리스크에 대한 개념이 없는 노동자한테는 그 제안이 먹힐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할 줄 아는 노동자라면 이런 리스크가 담긴 일자리는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의 화이트칼라 사무직 지식 노동자들에게는 일하다 병들고, 다치고, 죽는 리스크가 없을까?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직종일 수록 교묘한 형태의 직장 괴롭힘이나 정신적 괴롭힘은 더 심하다. 워낙 형태가 교묘하게 진화해 가해자들이 발뺌을 하면 증거를 찾기도 쉽지 않고 처벌하기도 쉽지 않을 뿐이다. 요새는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이슈가 되고 있어 다행이지만, 직장 괴롭힘으로 자살하거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를 앓는 경우도 많이 있었고, 현재도 많이 있다. 경미한 우울증이나 불면증까지 포함하면 대상자는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케이스들이 오히려 사회가 고도화되면 더욱 심화될 것이다.
최소한 위의 두 세력 (1) 순수한 토지주와 (2) 거대자본세력은 이것만은 명심하자. 농부는 굶어죽어도 절대 종자 씨앗은 먹지 않는다. 종자까지 징수해 가겠다고 오는 양반에게 대항해서 조선 중기에 임꺽정 같은 무리가 일어난 것이다. 마지막 남은 자원까지 앗아가는 상대에게, 궁지에 몰린 쥐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블로그 글: 일하다 병들고, 다치고, 죽는 것만 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