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서관

책장 앞에서 작아지는 나.

by 챠챠


도서관 바닥에 깔 매트가 도착했다. 매트 깔기 전, 청소기로 먼지를 제거하고 물걸레질을 했다.

유선 청소기. 몇 번이나 코드를 빼고 꼈는지 모르겠다. 집 청소도 안 하는데 도서관에서는 위원들이 함께 하니까 나도 청소기를 들고 구석구석 살폈다. 청소기 지나간 자리가 별로 티가 나질 않았다. 소리도 시원찮고 성능이 별로 좋지 않아 청소기가 지나간 자리를 몇 번인고 반복해서 움직였다.


책 대여 공간, 세미나 실, 중앙 홀까지 청소기가 지나간 자리는 물걸레질이 시작되었고 소독제가 뿌려졌다. 아직 개관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봉사자들이 다음 주부터 봉사를 한다. 먼저 우리끼리 해보고 주민들을 받아 운영하겠다는 취지다. 아무도 도서관일을 해보지 않아서 그렇다. 아이를 키우면서 봉사활동을 하려니 틈나면 도서관에 들러서 정리하고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올 시간이면 부리나케 뛰어간다.


하얀 책장 곳곳이 비어있었다. 꽉 찬 책장에 익숙해져서 휑뎅그렁한 모습이 어쩐지 어색하다. 책을 더 채워 넣으려면 도서관 이용자들이 많아야 하는데 이 정도 책으로 사람들 발길을 끌기엔 부족하지 않나. 초등학교5학년 때 처음 정독도서관을 갔을 때처럼 책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 책등을 읽었다. 수많은 책에 압도되어 꺼내볼 생각도 못하고 책등에 적힌 제목만 하염없이 읽었던 기억이 났다. 어린이실만 가다가 일반실에 갔을 때 <산적의 딸 로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두꺼운 사진집을 봤던 게 머릿속에 잊히지 않는다. 요정 사진집이었다. 얼핏 보면 숲을 찍은 사진인데 자그마한 날개가 달린 요정이 있었다. 요정은 장소불문하고 어디에나 있었다. 나는 그게 실제라고 믿었다. 내 주변에서 나를 지켜보는 요정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귀신을 믿는 편보다 여러모로 나았다. 내 생활환경이 그리 넉넉지 않았으니까 아마 환상을 가지고 싶었던 것 같다.

책장 앞에 서서 한참을 보던 책도 있다. 유럽 성을 소개한 책이다. 공주가 살 것만 같은 성. 우리 집은 아주 좁아서 공간 구분이 잘 되지 않는데 성은 넓고 높이 솟아 있었다. 성 앞에 서서 올려다보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다. 누가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성에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사람이 말했다. 성은 가까운 일본에도 있다고. 아니요, 내가 말하는 성은 그런 성이 아니에요. 기다란 세모 지붕이 몇 개 솟아있어야 해요. 네모난 건물 말고, 둥글게 벽돌이 쌓여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람이 잘 찾아오지 않게 깊은 숲 속에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성에 가면 뭐 특별한 게 있을까? 특별한 건, 내가 거대한 성 앞에 서 있다는 것이겠죠. 꿈이 이루어진 사실만으로도 좋지 않을까요. 정말 꿈이었다. 지금은 희미해진 꿈이다. 어른이 되니 꿈이 현실에 찌들어 버려서 입 밖에 잘 내질 않는다.

지루한 청소가 끝났다. 이곳을 찾은 아이들이 책장 앞에 앉아 꿈을 가지고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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