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 10월, 남편 A와 결혼식을 치르기 전 그리고 서로 맞춰가며 신혼생활을 보내고 있는 지금도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처음 그 질문을 들었을 땐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냥 뭐, 성실하고, 술 담배 안 하고, 허세 부리는 거 없어서?" 라며 어색한 대답을 이어 나가곤 했다. 나만 아는 A의 고유한 모습을 상세하게 늘어놓는 것은 듣는 이들에게 지루함을 유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명확하게 한 문장으로 표현해내기가 어려웠기에 상대방이 납득할 만한, 흔하디 흔한 대답을 주로 했던 것 같다.
A를 처음 만난 건 2017년도 봄쯤이었다.
당시 내가 재직 중이던 회사 내에서 타 부서에 새로운 직원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독일에서 오래 살았고, 영국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으며, 해외에서 오래 살았으나 예상 밖으로 군필이라는 점 등. 새로운 입사자에겐 항상 다양한 소문이 필요 이상으로 돌곤 했는데, 그에 대한 소문을 요약해보았을 땐 이러했다.
그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어려 보였고,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느낌의 세련된 헤어와 패션 스타일보단, 다소 독특한 그만의 고유한 스타일이 있었다. 머리숱이 엄청나게 풍성했음에도 5:5 가르마를 항시 유지했고, 브랜드 로고가 선명한 카디건을 즐겨 입고 다녔다. 안 부리던 멋을 잔뜩 부린, 앳된 범생이 같은 엉성한 느낌을 주었다. 다행히도 현재의 헤어스타일은 많은 변화를 겪은 뒤 안정기를 찾아 깔끔해졌다.
20대 후반이었던 당시 나의 이상형은 '듬직한 남자'였다. 덩치 있고 과묵한 편이지만 나에게만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반전 매력 있는 사람. 동갑이나 연하보다는 내가 기댈 수 있고, 나의 모든 걸 포용해줄 '오빠' 같은 남자를 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이가 많다고 다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것도 아니고, 나보다 나이가 같거나 어리다고 해서 어리숙한 것도 아닌데, 좁은 시야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반면, A는 나와 생일이 겨우 13일 차이 나는 동갑이었고, 듬직함 보다는 장난기 가득, 까불까불 한 모습의 동생 같이 귀여운 면이 더 많았다. 그와 한번 대화를 하고 나면 엄청난 수다스러움에 혼이 다 빨려나가곤 했다. 지금은 A의 엄청난 수다스러움이 그가 마음을 연 이들에게만 적용된다는 것을 알지만, 초반엔 아무에게나 말이 많은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침마다 사무실에 나타나 아침 인사와 더불어 수위 조절을 적당히 한 장난을 던지는 그 덕분에 인상을 찌푸리는 것보다 웃게 되는 순간이 많아졌고, 우리는 업무적으로 겹치는 일 이야기와 더불어 사적인 이야기도 주고받으며 친해져 갔다.
'과묵함' 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와 있으면 나도 자연스럽게 말이 많아지곤 했다. 보통 말이 많은 사람들 중 선을 지키지 못하거나, 웃기려고 무리하다 보니 실언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던지라 말이 많은 편인 이들을 경계하곤 했는데, A는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유쾌한 말들을 다량으로 쏟아내곤 했다.
그렇게 우리 사이는 더 가까워져 갔고 여느 때와 같이 각종 대화를 주고받으며 길을 걷다가 A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초창기 우리의 연애는 '사내연애' 였기에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불편한 점이 참 많았다. 다행히도 내가 이직을 하게 되면서 사내연애의 부담감에서 금방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둘 다 이전 만났던 직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수입활동을 하고 있다.
A는 연애 초반 결혼을 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꺼냈다.
당시의 나는 결혼이란 제도에 대해 회의적인 편이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내 자유는 속박당할 것만 같았고, 가부장적 제도 속에서 새로운 이들과 연을 맺고 맞춰나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우리는 현실적으로 가정을 꾸리기에 미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나는 직장생활을 약 4~5년 정도한 상태로 어느 정도 금전적인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였으나, A는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안정기에 접어들기 위해선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A가 결혼을 언급할 때마다 "결혼은 현실이야, 동화 같은 환상을 가지고 결혼할 생각을 하면 안 돼."라며 다소 매몰차게 대답하곤 했다. 30대를 맞이하고 있던 당시의 나는 '현실'을 점점 더 자각해가며, 미래를 꿈꾸는 것보단 숫자로 구체화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A의 결혼 이야기는 허황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 또한 부모님이 해외에 계셨기에 한국에서 주로 혼자 지내던 그가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제안한 것이라 예상하며 전격 방어 태세를 갖추며 반응하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 이야기는 잠시 덮어 둔 채 연애를 지속했다. 매일이 핑크빛 같진 않았다. 회색빛이 자주 드리우기도 했으나 그럴 때마다 A는 특유의 화술을 선보이며, 어이없어 웃음이 나올 법한 1인 상황극이 펼쳐냈고, 찌푸려졌던 내 미간은 풀리고 콧구멍은 벌렁댔으며 화나서 축 쳐졌던 입술은 웃음을 참기 위해 연신 씰룩대곤 했다. 그런 내 표정을 보며 A는 깔깔댔고 나 또한 인상 쓰는 것을 포기하고 웃기 시작했으며, 신기하게도 실컷 웃고 나면 다툼의 원인이 기억나지 않기도 했다.
자칫 엄청나게 심각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나를 웃기기 위해 노력하는 A를 보면서 '아, 이런 사람이라면 인생을 함께 살아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며 점점 더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했다.
연애 초반 결혼하고 싶다고 자주 말하던 A는 2년 차에 접어들자 어느 순간 '결혼' 이야기를 전혀 꺼내지 않기 시작했다. 결혼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며 도끼눈을 뜨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A의 변화에 섭섭한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오만가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결혼하자고 매일 노래를 부르더니, 이젠 말도 안 꺼내네? 식었네 식었어.' , '세상 물 좀 맛보더니 결혼은 진짜 현실이란 생각이 든 건가?' 상상은 꼬리를 물고 또 물었고, '사귈 만큼 사귀었겠다, 나와의 만남이 그만큼 진지하지 않다는 거지!'라는 엉뚱한 결론을 스스로 내려버리기 까지 했다.
사소한 말다툼을 주고받던 어느 날, 나는 "어차피 넌 나를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잖아!"라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사를 내뱉었고 A는 황당하단 표정을 지으며 잠시 숨을 고르더니 "현실을 무시할 수 없기에 어느 정도 준비를 갖춘 뒤 다시 진지하게 제안하고 싶었어, 그렇기에 한동안 말을 아끼고 있었던 것뿐이야, 단 한 번도 장난으로 결혼을 얘기한 적 없어."라며 대답했다. 늘 장난기 가득하던 얼굴이었지만 그 날은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했다.
A는 나의 부모님을 뵙고 싶어 했고, 아빠와 A는 서로 떨리는 손으로 악수를 하며 첫인사를 나눴으며, 엄마는 A 특유의 넉살과 해맑음에 반했다. 두 분은 우리의 미래를 아낌없이 응원해주셨다.
이후로도 우리는 몇 날 며칠을 싸워도 해결되지 않는 일들로 밤잠을 설치기도 했고, 숨기고 싶은 온갖 감정이나 못난 모습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만의 타협점을 찾아냈고, 인내와 이해를 바탕으로 3년의 연애를 한 뒤 결혼이라는 의식을 행하게 되었다.
A는 특유의 재치로 상황을 유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으며, 해외에서 오랜 기간 거주하여 영어를 구사하는 것에 능숙했음에도 내가 먼저 요청하기 전까진 나의 부족한 영어실력을 먼저 지적하거나 고치려 하지 않았다. 답답할 수 있음에도 내 기분이 상하지 않는 것을 우선시하는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카페나 식당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서비스를 받을 때도 늘 감사함을 표현할 줄 알았으며, 눈치가 빠른 편이라 우리 사이에 부정적인 기운이 조금이라도 흐르면 바로 파악하고, 긍정적인 기운으로 바꾸려는 노력에 게으르지 않았다.
결혼은 현실이고, 각자 집안 분위기, 재정적 능력, 자라온 환경이 비슷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무수히 들어왔고, 일부는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늘 '현실'을 외치던 나는 사실 가끔씩 뜬구름을 잡고 싶기도 하고, 현실이란 궤도에서 이탈해 충동적인 여행을 꿈꾸기도 하던, 현실을 따르면서도 조심스레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A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앞서 나열한 그의 소소한 장점들과 더불어, 귀여운 아가들의 재잘거림이나, 지나가는 강아지의 오동통한 뒷모습 등을 보며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소소한 행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중심이 잡혀있되 지나치게 엄격하지 않은 성향을 가진 그와 온기가 충분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다툰 뒤 감정이 격해지거나 혹은 A의 폭주기관차와 흡사한 엄청난 코골이 소리를 듣는 순간 두피 속부터 발가락 끝까지 한껏 꼬집어 주고 싶을 충동이 들 만큼 미울 때도 있다. 하지만 꼭 특별한 날이 아님에도 종종 꽃 한 다발을 건네며 각종 1인 상황극을 선보이는 A를 보고 있자면 어느새 미운 감정은 사그라들고, 나의 콧구멍들은 웃음을 참기 위해 부지런히 벌렁대며 입 꼬리는 씰룩 씰룩 파도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