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깎는 아내, 사과즙 따르는 남편

맞벌이 신혼부부의 상쾌한 아침 준비 프로젝트

by 안나

맞벌이 신혼부부인 남편 A와 나는 둘 다 아침 식사를 차려 먹는 것을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아침에 입맛이 없어서, 가볍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어서 등의 이유가 아닌, '너무나도 소중하기에 포기할 수 없는 아침잠' 때문이었다.


결혼 전 오랜 자취 생활을 한 A는 간혹 계란, 주스, 토스트 등으로 간단하게 아침 공복을 채우기도 했으나, 보통은 빈속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셨고, 그러다 보니 복통을 자주 호소하곤 했다.


결혼 전 30여 년을 부모님, 동생들과 북적북적하게 살아온 나는, 학교에 가거나, 출근할 때 엄마가 항시 준비해둔 먹기 좋게 잘라놓은 과일들, 간단히 집어먹을 만한 떡, 유부초밥, 김밥, 미니 토스트 등을 입안에 한가득 넣어 오물거리며 공복을 채우곤 했다.




결혼식을 올린 직후,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우리의 아침은 항상 혼돈 속 티격태격 말다툼으로 시작되었다. 둘 다 출근시간은 동일하였으나, A의 직장이 더 멀어 출근 시간이 더소요되기 때문에 항상 A가 먼저 욕실을 이용하곤 했다. 그러나 샤워 시간을 즐기는 그는 생각보다 늦게 나왔고, 나는 퉁퉁 부은 얼굴로 욕실 문을 연신 두드려 대며 빨리 나오라며 재촉하곤 했다.


요즘엔 재촉보단 멍 때리며 졸고 있는 편을 택했다. 오히려 욕실에서 나온 A가 다시 잠들어 버린 나를 흔들어 깨우며 "회사 가야지!"라는 잔소리를 하곤 한다.


아침을 완벽하게 공복으로 방치한 채 집 밖을 나서기엔 불안했던 우리는 간단한 아침식사들을 시도해보곤 했다. 둘 다 기상하자마자 식욕이 마구 돋는 편은 아니었기에, 식빵을 사서 토스트기에 굽고 잼을 발라 먹기도 했고, 전날 삶아놓은 고구마나 계란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마저도 유지되지 못했으며 우리는 빈속에 물만 꿀꺽꿀꺽 마신채 허겁지겁 신발을 신고 나가기에 바빴다.




어느 날, 아빠가 새빨갛고 큼직하니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한 박스 가져다주셨다. 엄청 난 양의 사과를 언제 다 먹어 치우지 고민하다가 앞으로 아침마다 사과를 먹기로 했다. 아침 사과는 금사과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결혼 전엔 항상 엄마가 깎아둔 사과를 입안에 쏙 넣으며 아침마다 상쾌한 기분을 느꼈는데 결혼 이후론 그 상쾌함을 잊고 산 듯했다.


하지만 아침잠이 많았기에 사과를 닦아내고 과도를 이용하여 깎아내는 행위를 할 시간은 늘 모자랐고, 자연스레 포기했다. 백설 공주처럼 동그란 사과를 한 손에 들고 '아삭' 하며 베어 먹는 게 가장 빠른 섭취 방법이겠으나 나의 치아는 워낙 약하다 보니 시도하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밤에 잠들기 전 사과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놓기 시작했다. 사과가 색상이 변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맛은 크게 차이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 수건을 둘둘 만 다음 (간혹 생략되기도 하는 아침에 머리 감기, 쉿!), 잘라놓은 사과 조각을 입안에 넣어 오물거리며 얼굴에 로션과 파운데이션을 슥슥 발라주니 시간도 단축되고, 상큼한 수분 섭취와 더불어 건강도 챙길 수 있었다. 달콤 상큼한 사과의 식감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늘 속이 안 좋다던 A도 아침마다 사과로 공복을 기분 좋게 채워주니 속이 편안하다며 '아침 사과'를 극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과를 먹는다고 해서 복부의 공허함이 만족스럽게 채워지진 않기에 아침 사과와 더불어 '사과즙' 혹은 '양배추 사과즙' 도 주문해서 함께 마시고 있다. 또한 가끔씩 계란과 고구마, 혹은 토스트를 곁들이기도 한다.




결혼 후 3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의 아침 풍경은 함께 살기 시작한 초창기보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변화되었다.


내가 전날 밤 사과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놓고 잠들면, 다음날 먼저 기상한 A가 샤워를 마친 후 사과즙 혹은 양배추 사과즙을 먹기 좋게 각자의 컵에 따라 놓는다. (참고로 A는 포도즙을 더 좋아한다.) 자주 빼먹긴 하지만 유산균 혹은 간단하게 집어먹을 것들을 입안에서 오물거리며 몸을 단장한다. 그러다가 A가 먼저 "이따 봐!" 라며 현관문을 열고 나가고, 그 이후의 나는 약 10분 동안 화장을 마무리하거나 옷을 걸쳐 입고, 창문 및 가스 온도를 한 번씩 살핀 뒤 집을 나선다.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아침마다 샐러드나 밥과 반찬 혹은 계란이나 아보카도가 예쁘게 올라간 토스트와 커피를 즐기는 여유시간은 갖지 못하더라도, 아침 공복을 상큼하게 채워주기 위해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사과를 깎고, 사과즙을 예쁜 컵에 따르며 하루를 시작한다.




참고로 지금까지 서술한 아침 풍경은 주로 '평일'에 해당되는 편이다.

주말엔 둘 다 늦잠을 충분히 즐긴 후 일어나 부스스한 모습으로 집밥을 지어먹기도 하고, 배달음식을 시키기도 한다. 긍정적인 점은 사과를 깎고, 사과즙을 예쁜 컵에 따라, 마시기 좋게 준비하는 행동이 습관화되어 주말 늦은 아침에도 지속된다는 것.


아침식사를 정성껏 차려먹는 다른 이들은 "사과 하나 깎아 먹고, 즙을 마시는 게 무슨 아침이야?" 라며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침잠을 사랑하고, 일어나자마자 약 1시간은 지나야 식욕이 돋는 우리 둘에겐 지금의 '아침에 사과 먹기'는 아주 합리적이면서도 현명한 식사라 생각한다. (참고로 점심과 저녁은 아주 배부르게 포식하는 편.)


A와 나는 먹는 행위에 진지한 편이기에 (특히 내가 더 그렇다는 점은 양심에 찔려 적어야겠다.) 또 다른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할 방법을 찾아보는 것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논의해 나갈 예정이다.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 언론사 하이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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