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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와 나는 결혼 전부터 '생리현상'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자주 나눴다.
결혼 후 너무 괴로워 서로 합의하에 방귀를 트기로 했다는 지인의 소식을 들은 A는, 우리의 방귀 규정 확립을 위해 나의 의견을 물었다.
"우리 같이 살면 방귀 틀 거야?"
"아니!"
나는 매우 단호한 태도로 방귀를 트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A도 동의했다.
신혼의 환상이란 걸 떠나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생리현상은 최대한 공개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이고 배려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결혼 전 부모님, 동생들과 함께 살 때도 아무 때나 방귀를 뿡뿡 뀌거나 끅끅 거리며 트림하지 않았고, 최대한 혼자만의 공간에서 해결하곤 했다. 가족이나, 편한 지인들 앞에서도 생리현상은 함부로 트지 않았던 나는 불 특정 다수의 타인들이 많은 공간, 특히 학교와 회사에서 유독 더 조심했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 그리고 과거에 다녔던 회사에서 마주친 사람들 모두 생리현상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다. 공공장소에서 생각 없이 수시로 뿡뿡, 꺽꺽 거린다면 예의를 밥 말아먹은 인간 비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간혹 실수로 새어 나오는 생리현상에 대해선 눈치껏 눈감아줄 생각이지만, 새어 나온 생리현상의 주인공이 내가 된다는 생각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회사에서 회의를 하다 방귀를 뿡 뀐 거나, 직장동료들과 밥을 먹다가 트림을 꺼억하게 된다면? 난 수치심에 몇 날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며, 진지하게 퇴사를 고려해볼 것이다.
결혼을 하기에 앞서 나는 종종 고민했다.
'갑자기 밥 먹다가 트림이 나오면 어떡하지.'
'배탈이 난 후 발산되는 엄청되는 소리를 A가 들으면 나에게 정 떨어지겠지.'
'머리도 부스스하고 안경까지 쓴 극강의 생얼을 보고 날 못 알아보면 어떡하지.'
4개월을 함께 살아온 지금, A는 나의 생얼에 완벽 적응해버려 내가 얼굴에 파운데이션이라도 바르고 나면 '화장했네.' 라며 알은체를 한다. 나 또한 A의 부스스한 모습에 자연스레 적응되었다.
방귀와 더불어 작고 큰 것들의 배출 현상에 대해서도 서로 선을 지키자고 제안한 나는, 비열하게도 A가 화장실에 있는 순간이며 장난기가 발동하곤 했다.
함께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가 A가 갑자기 사색이 된 얼굴로 일어나 TV 소리를 키웠다. 그리곤 화장실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나보고 화장실에서 최대한 먼 안방에 들어가 책 읽고 있으라는 말과 함께. 그의 다급한 행동과 말투에서 곧 큰 것을 배출하는 의식이 펼쳐질 것이라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잠겨버린 화장실 문 안에선 으레 배출을 유추할 수 있는 소리들이 내 청각을 자극한다. 나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화장실 앞으로 뛰어가 문을 두드린다.
"A! 왜?!!"
"......."
"A! 나 부르지 않았어?? 뭐라고?"
".......... 하....."
A의 한숨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온다. 나는 혼자 신이나 끅끅 대고 웃어댄다. 잠시 뒤 A는 한 껏 상기된 얼굴로 화장실 밖을 나와 나를 노려본다. 화장실 환기 버튼을 눌러둔 채.
"아, 이런 거로 장난 좀 하지 마."
"왜? 난 나 부르는 소린 줄 알았지!"
얄미운 대답을 내던지며 나는 더 크게 깔깔 댔다. 그동안 A의 장난들로 인해 서러웠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드디어 복수를 했다는 쾌감에 휩싸였다.
순간적인 쾌감에 젖어있느라 내가 간과해버린 사실이 있었다. A는 복수의 화신이었다는 것.
석화, 해삼, 멍게, 회동 생물을 잔뜩 먹고 잠든 다음날, 나는 일어나자마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세차게 닫았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대비하여 세면대 물을 잠시 틀어놓기도 했지만 정신이 혼미했다.
그 날 따라 복통이 유독 심했고, 속도 울렁 였다. 그렇게 불편한 배출에 집중했다.
다행히 A는 화장실 문을 두드리거나, 말을 거는 등의 유치한 장난을 하지는 않았다. '역시 내가 남자를 잘 봤군, 내 여자의 배출 시간을 소중히 하는 남자라니 매력 있어.'이라는 생각을 아주 잠시 하며 고통스러웠던 배출을 마쳤다.
비누거품을 잔뜩 내 손가락을 싹싹 닦아 낸 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로마향 탈취제를 화장실 이곳저곳에 뿌려댔다. 나의 배출의 잔향은 남편인 A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 껏 밝아진 얼굴로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자 A는 기다렸다는 듯 입술을 쌜룩 대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나는 그를 거칠게 막아섰다.
"왜?"
"흐음~ 아로마 향이 코 끝을 찌르네요. 아로마 타임 가지셨나 봐요?"
그는 어느 순간부터 나의 큰 것을 배출하는 의식을 '아로마 타임'이라 칭하며 놀려대기 시작했다. 수치스러웠다.
"아, 생리현상으로 놀리지 말라고!"
처음에는 부끄러워하며 살살 웃던 나도 계속되는 놀림에 정색을 하며 꽥- 소리쳤다.
A 또한 따발총 쏘 듯 지금까지 본인의 억눌렸던 감정을 표출해냈다.
"네가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왜 불러? 왜?' 거릴 때마다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받았는데, 집중을 할 수 없었다고!"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방귀와 트림 및 작고 큰 것 들을 배출하는 것들에 대한 장난을 하나씩 끄집어내며 서로의 수치스러움을 자극했다. "넌 똥 안 싸냐.", "사실 아로마 탈취제 뿌려대도 냄새난다.", "넌 날 괴롭히는 게 인생의 행복인 것이냐." 등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사를 주고받으며 목청을 높였다. 우리는 진지했다.
이성을 되찾은 우리는 생리현상을 가로막는 장난은 최소화 하자며,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배 아픈데 장난치는 건 상도덕이 아니라는 결론을 냈고 화해의 악수를 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매일같이 붙어지내다보니, 아무리 조절하려고 해도 생리현상이 불가피하게 공개되는 순간이 간혹 발생하곤 한다.
신발 끈을 묶는다며 자세를 구부리던 나는 '뽕' 하며 경쾌한 소리를 내기도 했으며 ('뿡'이 아님이었음에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치킨을 먹고 콜라를 잔뜩 마시던 A는 '끅' 하며, 속에서 올라오는 깊은 울림을 선사해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최대한 청각과 후각을 상실한 것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 반응해주려 노력한다.
하지만 가끔 참을 수 없는 수위라고 생각하면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하기도 한다.
'끅-'
"어? 이건 사과해줘."
"미안."
오늘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데 배가 너무 아팠다.
나보다 15분 정도 먼저 집을 나서는 A는 나갈 시간이 되었음에도 내 앞에서 알짱대며 여유를 부렸다. 오늘 진짜 춥다며, 보일러를 몇 도로 하고 나가야 한다는 등 내게 주의사항을 끊임없이 당부하기도 했다.
난 그가 얼른 집에서 나가주길 바랐다. 혼자만의 아로마 타임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아, 빨리 좀 가, 회사 늦겠다!"
배의 찌릿함에 극에 다르자 나는 깊은 고통을 느꼈고, 그 고통에 대한 화살은 A를 향했다.
A는 "어? 지금 왜 신경질 내?" 라며 내 앞에 더 바짝 다가와 따져대기 시작했다.
"아, 너 회사 늦을까 봐 그러지. 제발... 제발 빨리 좀 나가. 회사 좀 가."
나는 애원하는 말투로 그를 달랬다.
내 표정을 못 읽은 것인지 A는 토라진 채로 집 밖을 나섰다. 그의 애처로운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나는 화장실로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