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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Mar 03. 2021

편두통만 없어지면 좋겠다더니

이 고민, 저 고민, 이 욕망, 저 욕망이여

아름답지 않은 알람 소리를 들으며 깨어난 아침. 

묵직한 무거움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통증이 좌측 눈 부분과 머리통 부분을 세게 강타한다.


'젠장, 또 시작이네.'


인상을 한껏 쓰며 이불속에서 억지로 몸을 일으키는 순간, 편두통과 함께 동반되는 울렁거림까지 더불어 불쾌함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준 후 양배추 사과즙을 억지로 목구멍에 쏟아붓는다. 약을 먹기 위해선 빈속을 억지로 채워야 했다. 사과 한입을 와그작 씹어먹고 작은 빵 조각을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진통제를 꿀떡 삼키고 회사로 향한다. 반차를 쓸까 말까 엄청난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머리 아플 때마다 반차를 쓰면 남아나는 휴가가 없겠지.'라는 생각에 노동자의 서러운 감정을 느끼며 무거운 발걸음을 이끈다.




보름에 한 번 꼴로 내 머리통을 휘감는 이 '편두통'이란 놈은 웃음, 행복, 상쾌함 등의 긍정적인 요소들을 싹 앗아 가는 듯하다. 그래도 최근엔 많이 나아진 편이다. 몇 년 전부터 요가 혹은 필라테스를 주 2~3회라도 꾸준히 하게 되면서 혈액순환이 전보단 잘 되는지 편두통이 발생하는 횟수가 현저히 잦아들었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격일로 편두통을 앓은 채 병든 닭처럼 쑤시는 부위를 손가락으로 눌러대며 인상 쓰는 것이 일상이었다.


잦은 통증에 "아 머리 아파, 머리 아파."를 외치기에도 민망해서 난 왜 이리도 이곳저곳 아픈 곳이 많은 것이냐며 스스로를 원망하고 다그쳤다. 잦은 두통으로 병원도 많이 다녀보았지만 속 시원할 만한 원인을 찾지는 못했다.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단 즉 스트레스받지 않는 아름다운 생활을 위한 나의 노력이 가장 많이 요구되었다. 열이 머리 쪽에 몰려있는 편이니 순환을 위한 스트레칭이나 반신욕 등을 자주 하라는 말도 지겹게 들어왔다. 그나마 결혼 전 부모님 집에서 살던 때는 가끔씩 반신욕도 하곤 했는데 신혼집에는 욕조가 없다 보니 그마저도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 또 코로나로 인해 요가나 필라테스 수업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집에서 홈트 영상을 틀어놓고 버둥대는 것으로 대체해주고 있긴 하지만 이전보다 운동에 소홀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들어 다시 편두통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편두통이 심한 날은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던 누군가의 볼멘소리, 커다란 대화 소리 등에도 유난히 얼굴이 찌푸려진다. 작은 자극에도 통증 부위가 쿡쿡 쑤시기 때문이다. 손가락으로 통증이 심한 부위를 꾹꾹 눌러가며 뜨거운 우엉차를 조금씩 들이키곤 한다.


'아 진짜 편두통만 좀 없어지면 좋겠다.'

이렇게 아플 때는 통증으로 휩싸인 머리통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들을 생각할 수가 없다. 얼른 이 무겁고도 고통스러운 통증만이 사라지길 바라본다. 통증 완화를 위해 억지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거나 팔을 쭉쭉 피며 스트레칭을 시도해보지만 어지러움만을 느끼고 그새 머리를 떨구고 끄응 짧은 신음소리를 낸다. 식은땀이 졸졸 난다.


머리만 안 아프면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머리만 안 아프면 감사할 것 같다.

머리만 안 아프면......


고통스러운 시간이 째깍째깍 흐르다 보면 어느 순간 온몸을 마비시키는 듯한 고통이 신기하게도 사그라든다. 그렇게 괴로운 시간을 보낸 끝에 가벼워진 머리를 몸소 느끼는 순간 산뜻한 기분에 뛸 듯이 기쁘다. 하지만 회복된 건강을 즐기는 것도 잠시. 나는 어찌나 간사한 인간이던지 아픈 머리통에만 신경 쓰느라 잊고 있던 다른 고민거리들과 욕망 거리들을 하나씩 떠올린다. 편두통만 사라지면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할 거라는 소박한 마음가짐을 금세 잊어버리곤 고민과 욕망의 독소들로 내 머릿속을 다시 꽉꽉 채우기 시작한다. 피와 살이 될 만한 선한 생각을 위한 고민이란 물론 필요한 것이지만 독이 되는 고민들을 유독 놓질 못하니 내 머릿속이 이다지도 아픈 것인가 보다.


이 고민, 저 고민, 이 욕망, 저 욕망.

머릿속이 다시 한번 독소로 가득 차다 보면 편두통이 나를 괴롭히려 다가온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지겹게도 내 머릿속을 자주 방문하는 그놈의 힘에 짓눌려 고민과 욕망들을 잠시 잊은 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이 고통이 가시기만 바란다. 몇 년째 이러한 지겨움을 반복해서 겪고 있다.


최근 받아 본 건강검진 결과지에선 내 머릿속은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달갑지 않은 이 편두통이란 것은 어디서부터 오는지 고민해본다. 이 또한 이 고민 저 고민 중 하나에 속할 수 있겠으나 건강과 직결되었으니 필수적인 고민이라 볼 수 있겠다. 수십 년째 맞닥뜨리고 있는 이 요망한 통증은 내가 내려놓지 못한 온갖 고민과 욕망들이 쌓이고 쌓여 만든 독소들의 결과물이었던 게 아닐까.


'편두통만 없어지면 참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가짐을 고통이 사라짐과 동시에 잊고 다른 욕망을 떠올리는 간사한 나. 이런 내가 독이 되는 고민들과 욕망들을 잘 덜어낼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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