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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Mar 08. 2021

P과장의 임신 간섭 대처법

저희 매일 해요

약 6~7년 전, 내가 스물다섯 혹은 스물여섯 쯤이 었을 때의 일이다. 첫 이직을 경험한 후 두 번째 회사에 재직하던 시기. 내 옆자리엔 상사인 P과장이 있었다. 그녀는 늘 밝고 씩씩했으며 상사, 동료, 후배 가리지 않고 직접 구운 쿠키나 과일 등을 자주 나누어주며 챙겨주는 것을 즐기던 마음 따듯한 이였다.


결혼한 지 1년 정도 된, 삼십 대 중반이었던 그녀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열망을 자주 토로했다. 하지만 반복되는 실패에 연신 속상해하며 초조해했다. 당시의 나는 결혼, 출산 등이 멀게만 느껴지던 나이였기에 그녀의 조바심을 크게 이해하진 못했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 결혼을 하고 나니 당시 그녀가 겪었을 심정을 자주 떠올려 보게 된다.




P과장을 유독 힘들게 만들던 것들은 가족, 친지 그리고 회사 상사, 동료들의 오지랖 넓은 임신 간섭이었다.


"네가 지금 몇 살이지? 지금 낳아도 늦었어! 서둘러."

"네 나이면 빨리 낳아야지! 더 나이 들면 힘들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라고 끝나는, 자궁의 안부를  선 넘는 아픈 말들에 그녀는 자주 슬퍼했고 결국 7살이나 어린 후배던 내 앞에서까지 눈물을 보이곤 했다. 상세히 묻지는 않았으나 시험관 시술을 알아본다고도 했고, 임신 관련한 시아버지의 반복되는 막말에 결혼을 후회한다는 말도 종종 했다.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누군가의 출산 계획에 간섭하는 말을 하는 것이 지금보다 더 만연했, 그런 말들에 정색을 하거나 화를 내면 예민하다고 취급해버리는 분위기였다. 걱정을 가장한 아픈 말들에 그녀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자주 위태로워 보였다.


항상 사람 좋은 웃음을 띄고 다니며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을 자주 하던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잘 웃지 않았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챙겨주는 것 또한 그만두었다. 후배였던 나에겐 본인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솔직히 토로하며, 상사로서 챙겨주지는 못할 망정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다며 하루빨리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녀의 말에선 진심이 느껴졌고 나 또한 그녀를 응원했다.




어느 날. P과장은 더 이상 본인의 자궁을 향한 무례한 말들에 대해 바보같이 하하호호 웃어주지 않겠다며 독기 가득한 눈을 세차게 번뜩였다.


어느 날, P과장과 점심을 먹고 회사 1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후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오후에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4층에서 다른 팀 K차장이 탑승했다. K차장은 특유의 해맑은 말투로 누군가의 아픔을 자주 톡톡 건드리던 전적이 많았던 이었기에 나는 순간 긴장했다.


K차장은 역시나 예상을 저버리지 않았고 천연덕스러운 목소리로 P과장의 자궁 안부를 물었다.


"어머! P과장 오랜만이다. 근데 결혼한 지 꽤 되었는데 아직도 좋은 소식이 없는 거야?"

"곧 생기겠죠."

"이제 따지고 여유 부릴 그럴 나이가 아니야. 그렇게 여유롭게 생각하다간 후회해."


P과장의 상황을 알지도 못한 채 아픈 말들을 연달아 내뱉는 K차장의 입을 틀어 먹고 싶었다. P과장의 안색은 점점 굳어져 가고 있었다. 마음 여린 그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뛰어가 눈물을 한가득 쏟아 버릴 것만 같아 우려스러웠다.


"저희 매일 해요."

순간 예기치 못한 대사가 엘리베이터 안을 울렸다. 항상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무례한 말들에도 끄덕이기만 하던 P과장이 내뱉은 말이었다. 그녀에게 단호박 영혼이 씐 것만 같았다. 엘리베이터 안은 정적으로 가득 찼다.


"피임 안 하고 매일 해요."

K차장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며 당황해하자 P과장은 다시 한번 상세한 설명을 섞어 이 전의 말을 상기시켜 주었다.


피임 안 하고 매일 한다 = 아기를 가지기 위해 우리 부부는 남 모를 노력을 하고 있다 = 출산을 하든 안 하든 내 사생활이니 그 입 닫아달라.


P과장의 그간 쌓인 울분이 다 담긴 강력한 한 마디였다.


당황해하는 K차장의 얼굴을 더 관찰하려는 순간 우리가 내릴 층에 도착하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더 위층으로 올라가야 하는 K차장에게 예의 바르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우리 둘은 엘리베이터 밖으로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P과장을 바라보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평소 누군가에게 임신 간섭을 들을 때마다 눈물을 글썽 거리며 혼자 속상해하던 그녀 여유 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항상 휘청거리며 약해 보이던 그녀가 어느 때보다 단단해 보이고 강해 보였다.


"과장님! 정말 멋있어요!"

나의 칭찬에 그녀도 깔깔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 근데 너무 셌나? 나도 모르게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해버렸어."


걱정하는 그녀에게 대답했다.

"저분도 그냥 생각나는 대로 안 거르고 말씀하신 건데요, 뭘."




P과장의 임신 간섭 대처법이 옳고 그른지 혹은 부작용이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선 사람마다 혹은 상황마다 생각이 상이할 수 있겠다. 누군가는 멋지다 할 수도 있고 충동적이라 할 수도. 혹은 '맨날 해요.' 등의 노골적인 대답을 오히려 악이용 하는 못된 인간들을 마주치면 더 피곤해질 것이라는 걱정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맨날 해요.'라는 여러 의미가 함축된 말에, 적어도 생각이란 걸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본인의 말을 한 번쯤은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날 P과장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던 K차장은 P과장에게 본인의 생각 없는 말에 대해 사과했다. P과장이 아무 말하지 못하고 혼자 눈물만 훔쳤다면 K차장 또한 본인의 말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며 누군가에게 똑같은 실례를 번복했을 것이다.


P과장의 임신 간섭 대처법은 그 사건 이후 점점 더 강도가 세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도 그녀의 자궁 사정에 대해 선 넘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할 말 하고 사니 살 것 같다.'며 웃던 그녀의 안색은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본인만의 임신 간섭 대처법을 구체화해 나가던 P과장은 현재 사랑스러운 한 아이의 멋진 엄마가 되었다. 그녀의 밝은 미래를 응원한다.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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