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부터 아들 같은 사위, 딸 같은 며느리를 서로에게 강요하는 것이 부부 사이에 얼마나 독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일화들을 여럿 들어왔다. 그래서 결혼 전 나와 남편 A는 서로에게 아들 같은 사위, 또 딸 같은 며느리가 될 것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더불어결혼 생활을 하며 발생할 경조사 들을 어느 선 까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챙길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의논했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다. 종종 서로 다른 생각에 언성을 높이기도 했고 며칠간 대화를 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의 노력 끝에 중간 합의점을 찾아내는 과정을 반복하곤 했다.
우리는 각자 '사위' 그리고 '며느리'라는 역할을 맡게 되며 서로의 부모님들에게 예의를 한 가득 갖추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A는 본인의 부모님에게 종종 툴툴거리거나,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들에 대해 강력한 의견 표출을 편하게 하곤 했지만 장인, 장모님인 나의 부모님에게는 항상 웃음을 띄며 격식을 갖춘 태도로 대했다.
나 또한 내 부모님에게는 "우리 팀 팀장, 인성이 완전 쓰레기야.", "나 어제 그 인간 때문에 완전 짜증 났어." 라며 부정적인 표현을 가감 없이 사용하기도 하고, 편안함에서 기반한 날모습을 드러내고 했지만 시부모님과 대화할 때면 긍정적이고 고운 표현을 사용하며 예의 바른 말투를 구사했다.
시부모님에게 연락을 드리게 경우엔 아들인 남편이 주가 되고, 나의 부모님에게 연락하게 될 경우엔 딸인 내가 주가 된다. 우리는 '주' 역할에 각자 충실했고 또 그에 따른 '부' 역할에도 정성스레 임했다.
다행히 양가 부모님들은 "너희 둘이 행복한 게 최고다."라는 말씀을 주로 하셨다. 말뿐만이 아니라 그 가치관을 실천하도록 많은 배려와 이해를 해주셨다. 우리의 상황에 개입하거나 가치관이 다소 다른 부분들에 대해 강요하지 않으셨다. 덕분에 우리는 사위가 갑작스레 아들이 되기 위한 또 며느리가 갑자기 딸이 위한 부담을 크게 가지지 않은 채 천천히 다가갈 수 있었다.
독일에 거주하고 계신 시부모님은 아들인 남편에게 "안나(필명) 부모님께 잘해라."며 당부하셨고, 나의 부모님은 딸인 나에게 "A 부모님께서 해외에서 아들이 얼마나 보고 싶으시겠니. 자주 연락드려라."라고 하신다. 양가 부모님들의 서로를 향한 배려들인 것이다. 만약 이 상황이 반대가 되어버렸다면 우리는 일말의 부담감을 느껴 진심을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또 그 감정이 쌓이고 쌓여 둘의 다툼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나의 아빠는 A에게 '아들 같은 사위가 되기 위해 무리하지 말아라.'라고 하셨다. 사위는 딸의 배우자로서 소중한 존재임에 분명하지만, 사위 그리고 장인이라는 관계가 서로에 대한 존중이 기반이 된 상태에서 애정과 신뢰가 쌓이며 자연스레 가까워져야 한다고. 빠르게 편해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무리하다 보면 탈이 날 것이라고 하신다. 이런 신세대 감성을 어디서 배우셨데?라는 나의 장난스러운 질문에 아빠는 유튜브를 통해 요즘 세대 사위 혹은 며느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영상들을 보며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결혼 전 그리고 결혼식을 올린 직후,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며느리'라는 역할이 두려웠고 또 어려웠다. 남편 또한 처음 해보는 '사위'라는 역할이 어려웠을 것이다. 드라마 속 며느리들처럼 시부모님에게 간드러진 콧소리를 내며 "어머님~", "아버님~" 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나는 내 부모님에게 조차 무심한 저음의 목소리로 "엄마", "아빠" 하고 불렀고 팔짱을 끼는 것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수줍은 인간이었으니까. 시부모님께 얼마 간격으로 연락을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것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그 적정한 기간이라는 것을 차라리 누군가 정해줬으면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별걸 다 고민했네. 하고 싶을 때 하면 되지.' 싶지만 당시엔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의무감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곤 했다.
결혼식을 치른 지 5개월이 지난 지금. 처음보다는 아니지만 여전히 A는 장인, 장모님이 그리고 나는 시부모님이 어렵다. 수십 년을 함께 한 내 가족들도 어려울 때가 많은데, 여태 모르는 사이로 살아왔던 다른 세대의 어른들과 갑작스럽게 편한 사이가 되는 점이 힘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요즘 들어 A는 장인 장모님에게 종종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젊은이들 사이에 유명한 곳이라며 핫플레이스 카페를 찾아 모시고 가기도 한다. 나 또한 독일에 계신 시부모님께 영상통화를 하며 안부를 묻기도 하고 "그동안 저희가 너무 연락이 뜸했죠~" 라며 섭섭했음에도 내심 숨기고 계셨을 마음을 먼저 헤아려 드려 보기도 한다. 올 추석엔 꼭 놀러 가고 싶다며 '코로나 싫어요'라는 무뚝뚝한 투정을 살짝 부려보기도 한다.
A가 나의 부모님에게 사위로서 기본 예의를 지키고 소중하게 대하는 모습을 볼 때면 늘 고맙고, 나 또한 시부모님에게 한 마디라도 더 예쁘게 하고 소소한 것이라도 챙겨야겠다는 다짐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들이 쌓이고 쌓인 수년 뒤에는 양가 부모님들과 더욱 친근해져서 A가 장인, 장모님에게 아들처럼 반찬 투정을 부릴 수도 있겠고, 내가 시부모님에게 격식을 조금 덜어내고 딸처럼 철없는 응석을 부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은 적당한 예의를 지키고 서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서서히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너무 서두르면 탈 나니까, 욕심부리거나 서두르지 않기로 한다.
아들 같은 사위, 딸 같은 며느리가 되는 것을 서로에게 강요하며 감정 소비를 하는 대신에 부부가 중심이 되어 서로를 존중하는 것. 동시에 사위는 사위로서, 며느리는 며느리로서 기본 예의 갖추고 양가 부모님들을 소중하게 대하는 것. 그 예의가 일방향이 아닌 쌍뱡향으로 이루어지는 것. 이 모든 기본적인 배려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서로에게 늘 고마워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