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방송댄스에서 현대무용으로
내 기억으로 초등학교 3학년, 4학년때 즈음부터 나는 tv에 나오는 가수들의 춤을 자연스럽게 따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부르면, 나는 앞에 나가서 항상 춤을 추곤 했다.
초등학교 중간체조시간이나 거의 대부분의 운동회, 체육대회 때에도 단상 앞에서 시범어린이로 시연을 했고, 소풍이나 걸스카우트 수련회, 수학여행의 장기자랑 때에도 당시 한창 유행하던 가수들의 춤을 추곤 했다. (그때 추었던 춤 순서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러나 춤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춤을 진로로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고, 나는 판검사가 되어서 가난한 우리 집안을 살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여중에 입학한 나는 대외적으로 친구들앞에서 춤을 선보이는 일 없이 모범적이고 얌전하게 나름대로 공부에 매진했다. 당시 우리 여중에서는 장기자랑에서 춤을 추는 것은 소위 말해 좀 놀던 양아치나 일진 친구들이나 하는 것이기도 했다.
춤추고 싶은 욕망을 다스리고 눌러가면서 공부를 했지만, 욕망은 가끔 주체할 길 없이 속에서 터져나오곤 했다. 몇몇 친구들 앞에서는 솟구치는 흥과 끼로 우습고 코믹스러운 댄스를 자주 시전해 보이기도 했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한번씩은 꼭 콜라텍에 들러서 고삐를 풀고 나름대로 콜라를 들이키며(?) 정신없이 춤추곤 했다.
부모님의 원대로 대전 외국어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3년간 러시아어과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공부에 정말로 매진해야 할 시기인데, 어찌된게 춤추고 싶은 욕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내 안에서 더욱 거세지는 물결 같았다.
학교에는 머리도 좋고, 집안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나는 전혀 그러지 못했다. 중학교때 공부하던 그 얄팍한 수준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차분하게 앉아서 공부하는 분위기로 가득한 교실의 공기에 나는 항상 짓눌리는 듯한 갑갑함과 답답함을 느꼈다.
다들 부지런히 공부하는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혼자 몰래 학교 주변 동네를 산책하기도 하고, 다른 빈 교실에서 춤을 추고 오기도 하고, 노래방을 다녀오기도 했다. 학교 축제에서는 당시 핫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로 무대에서 독무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것이 공부만 하는 분위기의 외고에서 나름 센세이셔널한 사건이었는지, 나는 "대전외고 러시아어과의 마이클잭슨"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좀 우스운 소리지만, 다른 과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춤추는 그 애'를 보러 우리 반에 찾아오기도 했었다.
춤추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올 때마다 달래고 가라앉히면서 외고 3년을 보냈다. 춤추고 싶었지만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나는 우리반의 다른 친구들만큼 공부에 대한 머리도, 감도, 흥미도 없다는 사실만이 뚜렷해질 뿐이었다.
결국 다른 친구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창피한 수능점수로 대학을 가야 했다. 재수를 할 형편도 안되었고, 재수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게다가 러시아어를 좋아하기도 했고, 지방의 러시아어과에는 장학금을 받고 들어갈 수는 있었기에 일단 먼저 어디라도 들어가서 학점을 따고 편입을 준비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기, 그러니까 막 스무살이 되기 전 19살 후기 그때 즈음에도 춤을 추고 싶어서 몸살을 앓았던 모양이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당시 대전 유성구청이 주관하는 청소년 가요제 같은 경연행사에도 참여했다. 거기에서 독무로 은상을 받기도 했다. 그때 거기에서 그 경연행사에 게스트로 초대된 대전의 유명 댄스팀 "리" 오빠들을 영접하게 되었다. (당시 2000년대 초 대전에서는 시내의 쇼핑몰 앞 무대에서 유명 가수들의 춤을 따라추는 이미테이션 댄스팀들의 활동이 나름 활발했었다)
또 무슨 생각이었는지 춤을 배우고 싶다고, 나를 연습생으로 받아달라고 댄스팀 오빠들의 지하 연습실에 찾아갔다. 그렇게 나는 그 오빠들에게 처음으로 (온전히 전문적이고 체계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방송댄스, 댄스, 춤이란 것을 배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