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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

너무 늦었어... 늦어버렸다고...

by 움직이기

​갓 스무살이 되던 그때, 편입할 요량으로 들어간 대학에서는 학점만 잘 관리하면서 있는 둥 없는 둥 조용히 지냈다. 그러나 외부적으로는 댄스팀 오빠들과 행사를 다니느라 분주하게 지냈다. 춤 잘추는 빨간머리 노란머리 댄스팀 오빠들과 함께 다닌다는 사실은 당시 나의 은밀한 자부심이었다. 중고등학교때까지 꾹 눌러왔던 욕구를 풀 수 있어서 조금은 살 것 같았지만, 그럴수록 마음 한켠에서는 춤에 대한 목마름과 갈증이 웅성대었다.

이 정도로는 모자라고 부족했다. 춤을 더 하고 싶고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공부를 해야 할 것이며, 이것은 어디까지나 취미일 뿐이라고 스스로 되뇌이곤 했다.

사실 나는 방송댄스(지금은 커버댄스)나 힙합 같은 스트릿 댄스를 매우 좋아했다. 당시 내가 아는 무용이란 것은 기껏해야 발레나 한국무용이었다. 현대무용이란 것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발레는 기술적으로 너무 멀고 난해하게 보였고, 한국무용은 너무 지난하고 느려서 재미없어 보였다. 둘다 내가 어느정도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는 춤도 아니었고, 흥미가 가는 춤도 아니었다.

당시 나는 내가 어느정도 따라하고 흉내낼 수 있는 춤, 단숨에 사람들의 눈을 잡아끄는, 외부적으로 그냥 좀 멋있어보이고 재밌어보이고 쿨해보이는 춤이 좋았단 말이다.

그러던 중, "재즈댄스(아프리카 흑인들의 리듬과 춤에서 유래했으며, 미국으로 건너가 발레, 유럽의 전통 무용, 현대무용 등과 결합해 발전)"라는 대학수강과목에서 무용과 학생들을 처음 보게 되었다. 현대무용이나 발레를 전공하던 친구들이었다.

그들의 몸과 태, 춤을 보는 순간, 대번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방송댄스로는 절대로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나 높이, 깊이같은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그들이 추는 춤이 정말 무엇인지,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온건지 잘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의 춤이 두텁고 높고 세고 강하다는 것, 그들이 내 수준보다 훨씬 높고 깊다는 것, 내가 한참 그들 밑에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추는 춤이 어쩌면 나의 목마름과 갈증을 근원적으로 혹은 원천적으로 해결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미세한 희망같은 것도 내 안에 스쳐지나갔던 것 같다.

"진영아, 무용 한번 해볼래?"

무용과 교수님들이 진행하는 교양수업을 듣다가, 한 무용과 강사선생님으로부터 제안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스무살, 스물 한살 즈음 나는 그 강사선생님이 운영하시던 학원에서 인생처음으로 현대무용이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무용과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중학생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입시반 수업이었다.

거기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고, 당연히 내가 제일 몸도 안됐고, 내가 제일 무용을 못했다. 인생처음으로 스트레칭을 하면서 오열을 했고, 수업 때마다 체력적으로 너무너무 힘이 들어서 주저앉고 싶었다. 게다가 몸을 쓸 줄 모르는데, 잘하는 입시생들 사이에서 그들을 따라하느라고 온 몸에 멍이 가시질 않았다. 어찌된게 감도 안잡히고, 흉내도 낼 수 없는 동작들을 해내는 동생들을 보면서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현대무용 수업을 들으면서도, 현대무용이란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를 뿐이었다. 왜 이렇게 땅바닥에서 구르는 것이며, 동작이 왜 이리 추상적이고 난해한 것인가, 왜 이리 기능적으로 어려운 것인가 말이었다.

알 수 없음과 끌림, 약간의 흥미 그 외에 당시 딱히 엄청난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때도 여전히 나의 주된 관심은 방송댄스에 있었으니까. 끼와 에너지가 순식간에 포착되는 것, 외부적으로 다소 쉽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몸짓 외에, 다른 차원의 춤을 접촉하고 다룰수 있는 정신적 신체적 수준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무의식적인 끌림에 의해 계속 하게 되었다.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고, 엄청난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 춤이 어떤 더 높고 깊은 수준에 있다는 것, 세고 강하다는 것은 분명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와 같은 훈련을 통하지 않고서는 나는 절대로 춤에서 어떤 수준을 넘을 수 없고, 어떤 경지에 다다를 수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어느샌가 서서히 나는 타과 학생으로서 무용과 1학년 2학년 전공수업을 수강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무용으로 진로를 완전히 틀어버릴 생각까지는 정말 하지 않았다.

'할까? 에이... 아니야...
너무 늦었어...늦어버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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