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꿈의 격차 14화

이별을 준비하다

by 서지영

내 나이가 이미 40대 중반이니 부모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70 중반이시고 어머니는 70이 가까운 나이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흐른건지.. 이제는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가끔은 서글프다. 나의 보호자가 나 자신이어야 하는 것도 서글프고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것도 서글프고 부모님이 죽음에 더 가까워졌다는 것도 서글프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고 했다. 태어나는 것이 곧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하는 것이 인생이지만 우리는 한평생 살면서 마치 영원을 살 것처럼 행동한다. 평소에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지만(가끔 내 건강이 나빠질 때에만 건강을 챙겨야 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부모님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는 요즘은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이별은 슬프고 그리운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의 죽음은 나쁠 것 같지 않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몇 해전에 ‘호텔 델루나’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평소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지만 우연히 한번 보게 된 드라마는 역시 중독성이 있었다. 우연찮게 보게 된 드라마였지만 결국 마지막회까지 재미있게 봤었다. 드라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음 이후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마치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영원히 사라지는 ‘소멸’을 왜 두려워하는 것일까? 무엇이 아쉬워서 고달픈 인생을 반복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나는 나의 죽음 이후 천국도, 지옥도, 환생도 없기를 바란다. 이번 생을 살면서 행복했던 나날들보다 상처받고 고단했던 날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 환생해서 또 같은 것을 겪으라는 것은 지옥에 가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도대체 왜 또 다시 환생을 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천국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천국이 있으면 지옥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지금은 운이 좋아서 천국에 있지만 어떤 잘못을 해서 지옥에 갈지 모를 일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無의 상태’가 좋다. 죽음 이후 나에게 그런 상태가 허락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간절히 바래 본다.

가끔 친구들끼리 이런 얘기를 했던 기억도 있다. ‘재벌2세나 3세의 삶은 어떨까?’라는 대화 중에 ‘그들의 삶을 알기 위한 방법은 다시 태어나는 방법밖에 없어’라는 친구의 답변이 우문현답이었다. 간접 경험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삶이다. 간접경험을 통해 그들의 삶이 우리에게 얼마나 와 닿을 수 있을까? 역시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다시 태어나면 가능하다는 것이 옳은 답변이기도 하다. 그런데 친구의 답변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재벌로 태어날 가능성보다 현재의 삶보다 못한 인생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재벌보다는 그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어차피 태어날 때에는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어떤 인생으로 태어날 지는 결국 확률게임이다. 따라서 현재보다 못한 삶으로 태어날 확률이 더 높다. 어쨌든 우리는 은연중에 환생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 같다. 다음 생에서는 지금보다 편안하기를 바라면서.

사실 죽음이라는 것은 별 것 없다. 심장 기능의 완전한 정지 상태(심장사)를 가리키거나, 의학적으로는 뇌 기능의 상실 상태(뇌사)를 가리킨다. 단지 몸의 일부, 특히 심장이나 뇌가 더 이상 그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은 연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것은 언제나 떨리고 두렵다. 하지만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 두려움은 조금 줄어든다. 하지만 죽음은 절대 연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준비없이 맞이해야 한다. 또한 막연하게라도 죽음의 순간이 어떠할지 절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두렵다. 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닐 것이다. 사람이던 동물이건 직감적으로 자신이 죽는 순간을 알고 있는 것 같다. 할머니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 숨을 헐떡이면서도 가늘게 붙어 있는 목숨줄을 놓지 않으셨다. 마지막으로 큰고모를 보고 아버지를 보고, 늦게 도착한 작은 고모를 보고서야 눈을 감으셨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 세상에 남겨두고 혼자 떠나는 것이 아쉬웠던 것일까? 아니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에서나 알 수 있겠지.. 하지만 꼭 답을 찾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에게 크게 중요 하지도 않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의 철칙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절대 미리 고민하지 않고 그냥 그 상태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하..그럼에도 프리젠테이션을 앞두고 떨리는 현상은 내 의지로 조절할 수 없다. 그때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 마음껏 나대라, 심장아. 이때 아니면 너의 존재를 또 언제 알릴 수 있겠니’)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고민해봐야 복잡한 내 인생이 더 힘들뿐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충분히 체득했다. 죽음은 내가 어찌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죽고 싶다고 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음의 순간 살고 싶다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찾아올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나 자신을 내어주는 것뿐이다. 내 죽음에 대해서는 매우 ‘쿨’한 자세이다. 회사를 그만둘 때의 시원섭섭함이 내 인생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이미 충분히 최선을 다해왔기 때문에 시원섭섭한 마음만 남을 것 같다.

하지만 내 가족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쿨’한 대처가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가족이 맞이할 죽음의 순간이 걱정되어서가 아니다. 이기적이게도 가족을 잃고 살아갈 내가 걱정되는 것이다. 나라는 인간은 가족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어쩜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는지.. 나조차도 나 자신의 한심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가 의식없이 중환자실에 누워 계실 때 의사는 최악의 상황에 심폐소생술을 할 것이며 무리한 압박으로 갈비뼈가 부러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심폐소생술을 동의하는지를 물었다.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을 경우 죽을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어머니는 동의하지 않으셨다. 이미 여러 차례 의사로부터 가망이 없다는 것과 다시 깨어나도 예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얘기를 수 차례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오랜 병원 생활로 인한 병원비가 고스란히 자식들의 몫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미 얘기했듯이 아버지는 한 평생 일한 기간이 10년 정도이고 그 기간에 벌었던 수입은 모두 본인의 유흥비로 탕진하였기 때문에 저축해둔 돈이 없는 상태였다. 결국 아버지의 병원비는 나와 동생 몫이었다. 특히 장녀인 내 몫이 컸고 어머니는 늘 자식들도 본인들과 같은 삶을 살까 노심초사였다. 이미 충분히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데, 자식들의 노후자금마저 자신들을 위해 모두 써버릴까봐 걱정이셨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의 목숨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미움밖에 남아있는 것이 없는 아버지였지만 포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느낀 감정이 죄책감이었다. 자신의 노후 인생을 위해 자식을 낳아 키운다는 아버지였다. 40년 넘는 세월을 살면서도 아버지로부터 10원의 용돈도 받아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자식들의 생활비 입금이 하루라도 늦어지면 어머니에게 불같이 화를 내셨다. 어머니가 자식들을 잘못 키운 결과라고.. 그럼에도.왜..죄책감이란 감정을 느꼈던 것일까?. 사람의 감정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때 나는 아버지가 떠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복합적인 감정들로 혼란스러웠다. 이제 곧 고아가 될 것이라는 것과 평생 아버지를 미워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 앞으로 어머니는 누가 보살펴야 하나..라는 걱정 (아버지의 분노가 언제 폭발할지 모를 불안감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최근까지 운전을 하면서 어머니의 이동수단이 되어 주기도 했다)과 불안한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휘몰아쳤다. 결국 나는 아버지의 심폐소생술 거부에 사인을 했다. 아버지가 미워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의지가 완고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심폐소생술을 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을 발생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몇 일 후 의식을 차리고 퇴원하셨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다. 다시 아무일 없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가도 되는 줄 알았다. 언젠가 어머니는 한 동네 살고 있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며 문상을 가신다고 했다. 평소 어머니를 많이 챙겨준 고마운 분이라며 그분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얘기해 주셨다. 70 넘은 나이에 두 번 정도 쓰러지시더니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이 먹은 사람들은 한번 크게 앓으면 시름시름 앓다가 그렇게 죽는 것이라고 했다.

태어나는 것도 내가 선택할 수 없듯이 죽는 방법도 내가 선택할 수 없다. 죽음에 대한 고통을 느낄 시간도 없이 숨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도 항상 말씀하신다. 잠자듯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런 행운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고도 하셨다. 나 역시 병으로 고통받다 죽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 정도로 착하게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불가능할 것 같다.

가끔 상상해본다. 내가 없는 이 세상은 어떨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예전과 같이 잘 굴러가겠지.나라는 존재 자체가 세상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도 아닌데.. 내가 세상에 있던 없던 중요한 일이 아닐 것이다. 친구들 역시 내가 없다고 크게 슬퍼할 것 같지는 않다. 가끔 친구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못된다. 오직 나 자신을 위해 살아왔고 나 자신을 위해 죽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죽었다고 가슴 아플 정도로 슬퍼해줄 친구가 없다. 오직 나의 가족만이 오랫동안 나를 기억하며 슬퍼하겠지. 하지만 나의 가족들도 빠른 시간 내에 나를 잊고 자신들의 생활을 계속해 나가기를 바란다. 죽은 사람을 오래 기억하는 것은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는 행복의 걸림돌일 테니까. 아무도 나를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슬플 것 같지 않냐고 친구가 물었던 적이 있다. 역시 <호텔 델루나>라는 드라마에서 망자는 이승과 저승 중간 즈음에 위치한 강을 건너게 되는데 강의 끝자락 즈음에서는 이승에서의 기억이 모두 사라진다고 한다. 사실일리 없지만 혹시라도 사실이라면 망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살아 있는 사람이 나를 오랫동안 기억해주나 기억해주지 않으나 별 차이 없을 것이다. 차라리 나를 잊고 잘 살아주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어차피 살아있는 동안 부모님, 동생, 친구들에게 친절했던 것도 아니다. 그러니 더욱더 나를 그리워할 필요가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남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이 지워졌으면 더 좋겠지만..

아버지가 퇴원하고 집에서 생활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동안 건강을 회복하는가 싶더니 또다시 쇠약해진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계신다. 식사양이 많이 줄어서인지 살도 많이 빠지고 하루에 먹어야 할 약 봉지도 꽤 많다. (그런데 식사양은 사실 내가 더 적다. 나의 하루 식사양은 밥 2/3공기 정도이다. 다이어트 때문이 아니다. 그 이상을 먹으면 위가 힘들다며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세끼 모두 챙겨 드시고 중간중간 간식도 드시면서도 계속 말라가지만, 나는 계속 살이 붙는다. 인체의 신비인건지..) 본인 몸이 아프고 힘들어서인지 요즘 부쩍 죽음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신다.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사실 이것도 할말이 많다. 가족들이 먹을 고구마를 심으셨던 부모님은 몇 일전 맛을 보겠다면 한 박스 정도 캐 오셨다. 다음날부터 어깨가 아프다며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라고 하셨다. 하..할말이 없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아버지는 죽음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셨다. 물론 본인 몸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취했을 때에는 할머니가 그립다며 죽음에 대해 얘기했지만 요즘처럼 매일 죽음을 얘기하신 적은 없다. 이런 식으로 본인도 가족들도 죽음에 대해 준비하라는 신호인지.. 하루에도 3~4번은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옛말에 노인들이 죽었으면 한다는 말은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어르신들이 죽어야겠다는 말은 더 살고 싶다는 말과도 같으니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아버지도 같은 의미로 사용하시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사는 것이 지치신 것일까? 지친걸로 치자면 나도 만만치 않다. 오랫동안 건강을 챙기지 않았기 때문에 약을 먹지 않으면 머리는 깨질 것 같이 아프고 위는 점점 그 기능을 멈춰가는지 그 증상들로 하루를 살아내기도 힘들 지경이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도대체 뭐가 지쳤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동안 충분히 음주가무를 즐기며 살아왔는데 무엇 때문에 지쳤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과거의 상처가 이렇게 무섭다. 어쩌면 나는 기억을 왜곡했을 수도 있다. 나 자신을 완벽한 피해자로 만들기 위해서.. 아버지라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없을 수 있겠는가? 지금도 아버지는 나의 출근 시간에 맞춰 차를 대기하신다. 지하철 역까지 버스를 타야 하지만 좀 더 편안하게 출근하라는 의미에서 지하철역까지 태워 주신다. 출근뿐만이 아니다. 병원을 가거나 친구를 만날때도 마찬가지이다. 외출을 할때마다 아버지는 나를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기 위해 기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신다. 차라리 아버지가 완벽하게 나쁜 사람이었다면 죄책감 따위는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작은 배려 하나가 그동안 아버지를 미워했던 나를 용서할 수 없게 만든다. 어린 시절 기억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느끼고 있는 죄책감에서도 해방시키지 못했다.

아버지 목소리로 죽음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서인지 가끔 아버지에게 죽음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물론 죽음의 냄새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걷는것 조차 힘겨워하거나 음식 섭취를 잘 못하는 것을 볼때마다 죽음의 그림자가 더욱 아버지에 가까이 다가간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알 것 같다. 이별을 준비해야할 때라는 것을..

그런데 이별은 어떻게 준비해야하는 것일까? 모든 것을 글로 배워온 나는 죽음에 관한 많은 책을 구매했다. 한결같이 그럴듯한 얘기를 하지만 전혀 와 닿지 않는 내용들뿐이다. 아마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런 감정을 친구들에게 얘기하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살아계실때 잘해드려’라는 말을 한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못해드린 것들이 후회로 남는다고 했다. 같이 여행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사소한 것들을 더 자주 하라고 했다. 친구들의 조언 역시 나를 위한 것들뿐이다. 후회가 덜 남기 위한 조언들..

가끔 라디오를 들으면 수십년이 흘러도 죽은 이가 보고싶고 그립다는 사연을 듣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없다 해서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냥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것이겠지. 결국 먼저 떠난 이가 그리운 것은 기억 때문일 것이다.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그들과의 추억이 늘 항상 함께하지는 않지만 가끔 툭툭 튀어나올 때마다 더욱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것일 것이다. 뇌의 화학 작용일 뿐인 기억인데도 이렇게까지 가슴 아픈 것을 보면 인간의 삶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아세요?


당신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당신 때문에 내가 얼마나 즐겁고

당신 때문에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불현듯 당신이 궁금해졌어요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혹시 당신도 간간이 날 그리워하는지

간간이 당신도 내가 궁금하고

당신도 간간이 내가 보고 싶은지


그렇게 내 말에 귀 기울여 주고

그렇게 날 이해해주고

그렇게 내 곁에 있었는데


어느 날 당신은 내가 없는 곳으로

어느 날 당신은 내가 안 보이는 곳으로

어느 날 당신은 내 손이 닫지 않는 곳으로


그런데


오늘만큼은 당신이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늘만큼은 당신이 그냥 내 이야기 들어주고

오늘만큼은 그냥 날 바라봐주면 좋겠어요


<삶도 사랑도 물들어 가는 것>의 오늘만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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