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번도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되면 탐내지 않았다. 이것은 어려서부터 지속되어온 훈련의 결과이다. 취하는 것보다 포기하는 쪽을 먼저 배워왔던 탓이다. 그렇다고 포기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 성인군자도 아니고 속세를 초탈한 삶을 살았던 것도 아니라 포기가 쉬웠을리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원하는 것이 없으면 포기할 일도 없다. TV에서 보는 연예인들의 헤어 스타일, 액세서리, 의상을 보면서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의 사람들이라고, 욕심내도 의미 없는 일이라고 나 자신을 설득하는 훈련하는 삶을 20년간 해왔다. 그렇다고 모든 것들에 대한 포기가 쉬웠던 것은 아니지만 효과는 좋았던것 같다. 지금도 내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을 보면.. 20년간의 훈련은 아주 극적인 순간에 그 효과를 발휘했다. 내 삶이지만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 알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엄청난 효과인 듯하다. 폭풍이 휘몰아 칠때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떠도는 배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둘 있다. 선장과 항해사이다. 선장은 화물 및 승객운송, 어로를 위하여 항해하는 선박 내의 제반활동을 지휘·감독·조정하며, 항해사는 선장의 지시에 따라 선박의 항로를 결정한다. 이들의 역할이 없다면 선박은 갈 길을 잃고 표류하다가 난파당하거나 원래의 목적지가 아닌 의외의 장소에 정박하게 될 것이다. 물론 표류도 좋고 의외의 장소에 정박하는 것도 좋다. 의도한 데로 살아지면 그것이 인생이던가..
선장과 항해사가 없는 선박이 꼭 내 인생과 같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에게 선장과 항해사의 역할을 맡긴 것일까? 맡기지 않았다면 그들의 역할을 뺏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런 질문을 할 이유가 없다. 내 인생에는 애초부터 선장과 항해사가 없었다. 그리고 단 한번도 정박한 적도 없다. 즉 다시 말하면 내 인생은 광활한 바다 한복판에 표류만 해왔다. 잔잔하면 잔잔한 데로 폭풍이 휘몰아치면 휘몰아치는 데로 견뎌내면서 말이다. 사실 이대로 살아도 나쁘지는 않다. 여러 유형의 인생 중 하나의 모습일 뿐인데 누가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 괜찮은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멀미 때문에 참을 수가 없었다. 버스를 타도 멀미를 하는데 출렁이는 바다 한복판에서 40년을 살아왔으니 멀미가 더 심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정박해서 땅을 밟고 살아가겠다고 결심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야 육지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기억을 더듬어 내가 부러워했던 상황이나 친구들을 떠올려보는 것이었다. 먼저 어렸을 때에는 부자가 되고 싶었다. 몇 십억, 몇 백억 소유의 부자가 아니라 어머니가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부자였다.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나에게 참고서를 사줄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부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부자의 삶을 위한 곳에 정박하면 되지 않을까? 나쁘지 않은 삶이다. 요즘 세상에 돈이 권력이고 품격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성을 팔고 살인이 행해지는 세상에서 돈을 목적지를 삼는 것이 뭐가 나쁠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돈을 위한 목적이라면 책을 쓸 것이 아니라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학창 시절에도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늘 조용했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질문하는 것조차 주저했던 그런 학생이었다. 나는 세상의 중심에 있고 싶지 않다. 소심한 성격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성향일 수도 있지만 소심함이 당당함으로 바뀐 지금도 사람들의 중심에 있고 싶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냥 성격인듯하다. 요즈음 마케팅은 글이 아닌 영상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보니 책이 출판될 때마다 홍보 영상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는 한사코 거절했다. 가장 큰 이유는 영상에 내 얼굴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였다. 누군가 나를 알아보는 것이 싫고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더 싫다. 그러고보면 연예인이라는 직업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그들의 기대에 부흥하는 삶이란 얼마나 피곤할까? 대중들의 사랑으로 인기가 유지되지만 사랑만큼 욕도 많이 먹어야 하는 것이 연예인이다. 나는 사랑받는 것도 욕먹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동전의 양면이다. 선의로 행한 행동도 누군가의 눈에는 악의로 비칠 수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사람이라면 선의건 악의건 그들의 행동이 더 부각되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홍보 동영상 하나 찍는다고 내가 연예인과 같아진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누구도 나를 알아보는 이가 없었으면 좋겠다.
부자가 되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자산괸리가있다.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함으로써 목돈을 벌어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 가능한 방법이다. 그런데 이 역시도 쉽지 않다. 나는 이미 꽤 많은 돈을 주식으로 날린 적이 있다. 심지어 단기 투자도 아닌 7년을 한 회사에 투자하였었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하..7년이면 오래 기다려줬는데..) 40% 손해 후 투자했던 모든 주식을 팔았다. 하지만 2년후 그 회사의 주식 가치는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마치 나 때문에 주식이 오르지 않았던 것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쭉쭉 올라가는 주식을 보면서 ‘황당했다’라는 말 외에 다른 표현이 떠어르지 않았다. 그때 결심한 것이 다시는 결코 주식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마이너스의 손’이 나였던 것이다. 코인 역시 다르지 않다. 코인의 경우는 해보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코인 특성상 수시로 시세를 확인해야 하는데 무심한 내 성격상 불가능한 일이다. 나와 함께 일했던 동료 중 한 명이 초창기부터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있다. 업무를 하던 중에도 수십번은 시세를 확인하는 그의 삶을 보고 있으면 무언가에 홀려 있는 사람 같았다. 물론 나 역시도 책을 한권 쓰기 위해 반은 미친 사람처럼 살고 있음을 인정한다. 동료의 삶이 내 기준에서 전혀 가치 있어 보이지 않았다. 부자가되기를 원했다면 코인으로 수십 억원을 번 동료의 조언을 귀담아 듣고 투자 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결국 나는 부자의 삶에 정박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럼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어릴적 나의 동경은 사회적 성공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렸을 때 의사나 검사의 삶을 동경했던 적이 있다. 주위에 의사나 검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TV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삶이 멋있었다. 지금도 의사나 검사는 선자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결혼 시장에서 잘 팔리는 직업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에는 결혼을 잘 하고 싶다는 욕심이 아닌 순수한 동경이었다. 그들의 일이 아닌 단순히 그들의 옷(의사들의 가운이나 판사복)이 멋있어 보였으니 정말 순수한 목적이 맞는 듯하다. 그런데 어느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일은 뭐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공장 몇시간 멈춘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단지 생산에 차질이 생기고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정도의 일이다. 하지만 의사나 검사의 일은 다르다. 그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도 살릴 수도 있다. 남의 인생이 내 손안에 달려있다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부담이다. 나의 판결로 한 사람이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지만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면 감옥에서 한 평생을 보낸 사람의 인생을 어찌 보상할 수 있으랴. 이런 생각을 하니 의사나 검사라는 직업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나의 삶도 때로는 부담스럽고 버겁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인생이 내 손안에 달려 있다면 그 부담감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것이다. 참..대담하지 못한 성격이다. 많이 극복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소심한 삶을 원하다니..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으로는 대기업 임원이나 스타트업 CEO도 생각해볼 수 있다(현실적으로 중소기업이나 대기업 CEO가 될 수 없으니 스타트업 CEO를 생각해본 것이다). 임원이나 CEO의 주된 관심사는 기업의 이윤이다. 기업이 돈을 벌어야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고 상여금을 줄 수 있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인력 감축이다. 결국 임원이나 CEO의 잘못된 운영은 한 가정을 거리로 내몰 수 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나는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지고 싶지 않다. 내 인생 하나 책임지고 살기도 버거운데 누구의 인생을 책을 질 수 있겠는가?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나를 희생하고 싶지도 않다. 이기적이지는 않았지만 철저히 개인주의자로 살아온 나였다. 하루아침에 바뀔리 없으며 이제와서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구지 바꾸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명확히 나는 사회적인 성공에 정착하고 싶은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삶은 어떨까? 나는 비혼주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혼을 해야겠다는 큰 의지도 없다. 주위 선/후배 및 친구들은 모두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어 잘 살고 있다. 빨리 결혼한 친구는 현재 대학생 자녀가 있는 경우도 있고, 늦게 결혼한 친구는 아직 신혼인 경우도 있다. 그들의 삶을 보고 있자면 가끔 부러운 생각도 있다. 내가 이번생에 절대로 누려보지 못할 삶에 대한 동경일까? 카카오톡 메신저나 SNS에는 해가 바뀔 때마다 성장하는 그들의 자녀들이 올라온다. 아이들은 얼마나 빨리 성장하는지 2~3년만 지나도 어느새 훌쩍 자라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들은 뭔가 대단한 업적을 남긴 것 같다. 친구들이 나이 먹고 의지할 곳이 필요하면 자식들과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겠지만 나는 홀로 독거노인이 될 것이다. 혼자서 외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고독사이다. 70이 넘어 아무도 나를 찾는 이가 없을 때 외롭게 죽음과 맞서 싸워야 하거나 죽음 이후 시체가 몇 달째 방치된다면 슬플 것 같다. 지금의 슬프고 두려운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어서 실버타운에 입주해야겠다고 생각해보지만 실버타운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보증금이 10억이 필요하다고 한다. 10억이면 실버타운에 입주할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몇 달씩 살아보는 것을 선택할 것 같다. 영국에서 3개월, 그리스에서 3개월, 캐나다에서 3개월.. 아껴 쓰고 간간히 아르바이트도 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무엇보다 나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편안한 삶을 원하지는 않는다. 편안함 보다는 새로운 것을 보고 듣는 삶이 좋다. 10억이라는 돈이 있고 나이 먹어서도 걸어 다닐 수 있는 최소한의 건강이 허락된다면 반드시 실버타운이 아닌 세상을 경험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10억이 있다면..
10억이 없다고 해서 슬플 일은 아니다. 물론 나를 챙겨줄 가족이 없다는 것은 외롭고 슬픈 일이지만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존재이다. 나와 같이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서 아침, 저녁마다 생사를 확인해주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나의 죽음 이후의 처리를 위해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는 것은 옳지 않다. 무엇보다 결혼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는 이유는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보고 듣지 못한 상태라 나 역시 좋은 부모가 되어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부모가 되기에는 내가 너무 이기적이다. 자식을 키워도 여전히 나를 위한 삶을 살 것 같다. 지금의 나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자식의 경우는 내가 개인적인 삶을 고수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개인주의가 아닌 이기주의가 된다. 자식을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나와 같은 사람들은 결혼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사람이 가끔은 부럽지만 절대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라 아쉽지만 나의 정착지는 아닌 듯하다.
최근에 꿈꿔본 것은 안정적인 삶이었다. 정년이 보장되고 적당히 여유 있어서 휴가 때마다 해외 여행을 다니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삶을 바랬었다. 그래서 이직한 곳이 공기업이었다. 계약직이기는 했지만 3년 혹은 6년간 열심히 일 한다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지원을 했고 입사 했지만 업무는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처음에는 기존에 해왔던 업무와 많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히려 기존의 업무와 동일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다면 공기업이라고 해서 적응하는데 특별히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한달도 걸리지 않았다. 공기업은 문서 위주로 일하는 곳이다. 즉 작업을 하나하기 위해 준비해야하는 문서작업들이 너무 많았다. 이것 까지는 좋다고 생각했다. 회사마다 문화가 다르듯이 공기업 역시 특유의 문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래한글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에게 자간, 행간, 자폭을 신경쓸 여유가 없었으며 무엇보다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그들만의 단어와 문구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서툰 문서 작업 때문에 무능력한 직원으로 전락하는 것은 순간이었다. 그동안의 경력마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특이한 곳이었다. 특히 이곳은 일명 꼰대 문화의 온상지였다. 공기업을 다녔던 2년 가까운 시간동안 내게 남은 것은 또 다시 낮아진 자존감 뿐이었다. 꼰대 중에 꼰대 팀장을 만날 때면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질 정도였다. 결국 회사를 나온 이유는 죽기보다 싫었던 사람이 원인인 것이 반, 일을 위한 일과 그 일로부터 어떤 성취감도 얻을 수 없었던 것이 나머지 반이었다. 대체로 회사를 퇴사하면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을 하게 되는데 공기업을 다녔던 동안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었는지 섭섭한 마음이 전혀 없었다. 물론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나에게만 상처를 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 팀장이 말했던 것과 같이 자신이 보고 배운 데로 행동했을 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20~30년간 같이 생활했던 사람이 아니다. 기존의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서 20년 이상 서로가 성장해온 모습들을 보아 왔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기존에 같이 생활했던 사람들이 다르다거나 잘못되었다는 의식을 하지 못하겠지만 새롭게 합류한 나는 달랐다. 사기업과 비교하여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다. 혹시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하여 확실히 말해두지만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뇌리에 깊숙히 박혀 마치 전체가 이상한 것처럼 왜곡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하고 친절했다. 공기업에서 일했던 내내 생각했던 것이 있다. 이런 곳에서는 절대 경력직을 뽑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기업과 공기업의 문화 차이가 컸고, 문화 차이가 큰 만큼 사기업에서 일해왔던 사람이 공기업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어떤 것도 비교할 대상이 없는 신입사원을 채용하여 공기업 문화에 잘 적응하도록 가리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나는 퇴사를 결심했고 그 결정이 단 한번도 후회로 남은 적이 없다. 요즈음 임시직 공무원 채용도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나는 결코 지원할 생각이 없다(물론 뽑아 주지도 않겠지만).
역시 인생이란 생각했던데로 풀리지 않아야 제 맛인 것일까? 만약 아직도 공기업에 다니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다양한 활동들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새로운 기술들을 익히면서 살아있음을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정착지는 무엇이 있을까? 결국 돌고 돌아서 현재의 삶으로 되돌아왔다. 결국 나는 ‘현재의 내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일까?’라고 묻는다면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동경했던 인생이 실은 따지고 보면 정말로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다고 현재의 내 인생이 내가 가장 원했던 삶이 였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우여곡절과 모진 풍파가 있었던 인생이지만 더 잘 살아낼 자신도 없다는 뜻이다. 자화자찬이나 자만의 의도는 전혀 없지만 사실이다. 지금의 삶에서 더 잘 살아낼 자신이 없다. 20대 까지의 삶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면 그 이후의 삶에서는 어느 정도 내 의지가 반영되었으며 무엇을 하던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물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죽을힘을 다해 살아왔다. 얼마나 힘겹게 최선을 다했는지 건강도 챙기지 못했다. 나의 온 몸은 영광의 상처들로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럼 이즈음에서 나자신에게 다시 물어야겠다. 지금의 삶이 정말 내가 원했던 삶이었는지..
사실 그렇지는 않다. 내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고, 얼마 안되는 경험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아니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집어치우자. 또다시 동경이라는 단어로 바꿔야겠다. 행복했던 때라고 표현하기에는 내 기억이 온전하지 않기 때문에 동경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맞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원하지만 현실은 가능하지 않거나 나와 맞지 않을 수 있으니 동경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마지막 동경의 삶은 많은 곳을 여행하는 삶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냐고 묻고 싶겠지만 사실이다. 여행도 다녀본 사람이나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어렸을때 가족들끼리 여행을 갔던 기억이 있다. 우리 가족들과 작은 고모 가족들이 함께 바닷가로 여름 휴가를 갔었는데 그때 기억이 최악이었다. 1박 2일 동안 아버지와 고모의 다툼으로 여행 내내 불안했던 기억 밖에 없다. 아버지 형제들은 이후로도 모이기만하면 싸운다. 아마 고모들도 아버지 때문에 차별받았던 서러움이 컸을 것이다. 그 서러움을 돌아가신 부모님께 토로할 수 없으니 아버지에게 모든 원망을 돌리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가족과 함께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은 나에게 최악의 기억만 남겨주었다. 이후로 수학 여행을 가거나 친구들끼리 여행을 가더라도 그리 즐겁지 않다. 그때의 가족 여행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기억 어딘가에 남아서 다시는 여행을 가지 말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가족끼리 여행가자는 말을 해본적이 없다. 매사에 부정적인 아버지는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모든 짜증을 어머니에게 퍼부어 댈 것이고 그것을 듣고 있는 나 역시 짜증나면서도 불안할 것이다. 아버지의 짜증과 불만이 또 다시 언제 터질지 전전긍긍하면서..
그럼에도 가능한 많은 국가를 여행하고 싶다는 것은 그야말로 동경일 것이다. 여행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갖고 있음에도 왜 여행을 동경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동안 못해본 것에 대한 단순한 동경일까? 아니면, 그동안 해보지 못한 삶에 대해 보상을 주고 싶었던 것일까? 이것에 대한 답은 찾아보려고 수없이 노력했지만 알 수 없었다. 실제로 여행을 했을 때 정말 나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여행이라는 것이 내 집과 같이 편안하기만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최대한 많은 나라를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책을 통해 습득했던 간접 경험이 아닌 내 몸과 마음으로 배우는 직접 경험을 하고 싶다.
여행으로부터 내가 얻고 싶은 것은 단 하나다. 내가 아닌 나로서의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영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의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또 다른 인격체가 나를 대신하는 것 같다. 본래의 나와는 다르게 또 다른 인격체는 유쾌하고 좀 더 이성적이다. 또 다른 인격체가 나와 전혀 다른 또 다른 누군가라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언어라는 것은 꽤 대단하다. 생각의 체계를 바꿀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미친 사람 같겠지만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에 소개된 ‘트롤리 딜레마’ 실험이 있다. ‘한 사람을 육교에서 밀쳐 떨어뜨릴 경우 다섯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한 사람을 육교에서 밀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질문에 일반적으로 한 명의 목숨보다 다섯 명의 목숨이 더 가치 있으므로, 밀치겠다고 답해야 한다. 하지만 죄 없는 누군가를 내 손으로 적극적으로 밀쳐서 죽인다는 죄책감을 회피하려는 성향 때문에 밀치기를 선택하는 비율은 소수에 그친다.
여기서 흥미로운 실험이 하나 더 있다. 한 사람을 육교에서 밀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모국어로 물었을 때와 외국어로 물었을 때의 답변이 달랐던 것이다. 모국어로 물었을 때는 17%만 육교에서 밀치고 다섯 사람을 구하겠다는 답변이었지만, 외국어로 물었을 때는 40%가 밀치는 것을 선택했다. 모국어로 생각할 때보다 외국어로 말할 때 더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합리적인 생각과 더불어 유쾌함이 더해진다.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어만 바뀌었을 뿐인데 지난 과거의 모든 사건들이 현재의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새하얀 도화지에 새로운 인생을 그려나갈 수 있는 방법이 생겼으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