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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영 Sep 14. 2022

아빠를 위해

아빠는 폐암을 진단받았지만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도 통증을 느끼지 못해서인지 암 환자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런 것 같았다. 아빠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찬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까? 또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40년 넘는 세월을 함께한 부부였다. 사이가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서로를 위해주면서 함께한 세월은 무시 못할 것이다. 

나 역시 아빠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대신 아파해줄 수는 없지만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많이 사드리고 싶었고, 좋은 곳도 많이 구경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생을 아빠와 거리를 두면서 살아왔다. 어려서는 마음의 상처 때문에 거리를 뒀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어색했다. 아빠와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은 주로 아빠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사드리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2~3번은 좋아하는 음식을 사드리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5년 정도 전부터 부모님은 삼촌의 땅 한켠에 구황작물과 채소를 재배했다. 우리집과 삼촌집이 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매일 밭을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갈때마다 부모님은 빨리 일을 끝마치고 삼촌과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를 하러 다니는 것이 낙이었다. 다녀올 때마다 엄마는 삼촌이 보내준 사진을 내게 보여주곤 했다. 왜 하필이면 그때 그 사진을 봤을까? 사진의 배경은 케이블카였다. 아마도 부모님은 케이블카를 처음 타 보았을 것이다. 그 사진에서 아빠가 웃고 있었다. 화를 자주 내곤 했던 아빠는 평소에도 웃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 사진에서는 아빠가 환히 웃고 있었다. 

사진을 보는데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 맞는 것 같았다. 아빠가 이렇게까지 즐거워하는데 왜 그동안 한번도 여행을 다니지 않았을까? 그래서 동생과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브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자고 제안했다. 평소 같으면 동생은 싫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가 약을 먹은 이후부터 동생은 달라졌다. 부모님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렇게 처음으로 아빠를 위한 드라이브를 하게 되었다. 표현하지 않았지만 아빠는 즐거워 보였다. 처음으로 가족이 모두 함께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의미 있었고 무엇보다 아빠가 좋은 음식을 먹고 즐거워하는 것 같아서 나도 좋았다. 이후에도 더 자주 가고 싶었지만 아빠의 항암치료가 시작되면서 더 이상의 여행이나 드라이브는 불가능했다. 좋은 옷을 사드리고, 좋은 운동화를 사드리고, 좋은 음식을 더 사드렸어야 했는데 아빠의 체력은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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