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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Feb 02. 2021

올레 길 위에 서다

  26코스 425킬로미터, 내가 걸을 수 있을까? 제주에 와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올레 길을 걷는 것이다. 올레 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산티아고를 걸었던 경험만을 믿고 호기롭게 스스로에게 던진 숙제이다. 산티아고를 걷고 나서부터는 어느 지역을 잘 알기 위해 두 발로 걷는 방법이 가장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주를 더 많이 사랑하고 조금 더 가까이에서 제주의 속살을 보기 위해 올레 길을 선택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동할 때 시내버스나 고속버스, 기차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승용차를 많이 이용한다. 물론 취미로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이나 등산을 하기 위해 걷기도 한다.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면 지나온 지역에 대해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특히 직접 운전을 할 경우에는 운전에 집중하느라 주위 환경을 거의 볼 수가 없다. 내비게이션이 길잡이를 해 주는 요즘에는 여러 번 간 길도 내비게이션이 없이는 길을 찾아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15년 전부터 시내버스를 많이 애용하고 있다. 타 지역에 가거나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곳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시내버스를 타고 다녔다. 제주에 와서도 시내버스 사랑은 이어졌다. 제주도는 도로가 다른 지역과 연결되지 않고 섬 내부를 돌고 돌기 때문에 몇 개 중요한 도로만 알면 시내버스를 이용하기가 편리하다. 출퇴근뿐만 아니라 올레 길을 걸을 때도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올레 시작점까지는 승용차로 가서 주차를 하여 두고 걸어서 종점에 이르면 시내버스를 타고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오곤 한다. 올레 길을 따라 시내버스 노선이 연결되어 있어서 도보자들에게는 무척 편리하게 이용되고 있다.


  3년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여정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힘들 때 위로가 되어 주고 있다. 걷기의 매력은 걸어 본 사람만이 안다. 걷는 동안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마다 사람과 음식, 동네의 특색들이 발길 따라 고스란히 머릿속에 저장된다. 제주에 와서 첫 번째 하고 싶은 도전으로 올레 길을 선택한 이유이다.


  제주에 온 첫 주일에 15코스를 선택했다. 시작점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가까스로 찾아간 시작점에는 15코스 표지석과 간세가 있었다. 안내를 받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서니 안내사가 계셨다. 친절한 안내사분으로부터 간세의 의미와 화살표 방향을 보는 법, 리본의 역할 등에 대해 듣고 올레 패스포트도 구입했다. 표지석 앞까지 따라 나와 패스포트에 스탬프 찍는 법도 가르쳐주고, 첫출발 기념으로 사진도 찍어 주었다. 출발하는 발길을 잡으며 200미터 정도를 지나도 리본이 보이지 않으면 길을 잘못 든 것이니 돌아와서 다시 리본을 따라가라는 조언은 지금까지도 유용한 팁으로 적용하고 있다. 


  올레 길을 가는 방법도 다양했다. 나처럼 시계 방향으로 걷는 사람, 역방향으로 걷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오토바이로 가는 사람이 있다. 걸어서 가는 사람들도 걷는 유형이 각양각색이다. 매일 걸어서 전 코스를 한 번에 걷기도 하고, 일정한 기간 동안 코스를 나누어서 완주를 하기도 하고, 시간이 없으면 아름답다고 소문난 코스를 몇 개 골라서 걷기도 한다. 나는 일 년을 목표로 전 코스를 일주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한림항에서 고내 포구까지 해안길을 따라 걷는 15-B코스 13킬로를 5시간 정도 걸었다. 제주에서 가장 핫 하다는 애월읍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경치가 가히 환상적이다. 8월의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는 제주 바람, 눈이 시릴 정도로 진한 쪽빛 바다, 바닷가 해변에 자리 잡은 검은색 현무암 바위들, 밀려온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공중에 뿌려지는 하얀 물거품, 형형색색 단장한 이국적인 풍경의 카페들, 해안가 여기저기에 마련된 포토 존, 제주의 바다를 마음껏 느끼고 있는 청춘들,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이다. 걷는 도중에 맛집을 찾아 여유롭게 혼밥도 하고 경치와 사람에 취해 해찰을 하다 보니 예상시간보다 오래 걸렸다. 


  처음에는 사전 준비가 덜되어 늦은 여름 뙤약볕에 화상으로 고생도 하고, 다리가 쑤셔 잠을 설쳤던 기억은 이제 옛 추억이 되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부터 걷다 보니 제주시 지역 올레 길을 먼저 걷기 시작하여 어느새 코스의 절반 정도를 걸었다. 올레 길도 익숙해져서 시작점을 찾아 코스를 걷고 종점에서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정도는 척척이다. 한 코스의 길이는 짧게는 10킬로에서 길게는 20킬로 정도이다. 10킬로까지는 별 부담 없이 걷지만 그 지점을 넘어가면 힘들다는 느낌이 들다가 15킬로를 넘어서면 왜 종점이 나오지 않나 하며 자꾸 거리를 확인하곤 한다. 그래도 종점 스탬프를 찍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계속 걷다 보면 코스 표시 간세와 표지석을 만나게 된다. 돌아오는 길은 많이 지치고 힘들지만 제주와 좀 더 가까워졌다는 뿌듯함에 기분이 좋다.


  올레 길은 혼자 걷는 것도 좋지만 같이 걷기에도 좋다. 올레 축제 때 참가자들과 같이 19 코스를 걸었다. 반장과 부반장이 동행하며 코스에 대한 설명도 해주고 시간마다 휴식도 취하며 여유롭게 걷다 보니 그 지역에 대해 좀 더 세세하게 알게 되었다. 참가한 사람들은 제주뿐만 아니라 멀리 서울까지 전국 팔도에서 축제를 위해 왔다고 했다. 나처럼 처음 참여한 사람도 있고 매년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장님으로부터 쓰레기를 주우며 걷는 클린 올레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함께 한 사람들은 그간 올레 길을 걸으며 보고 듣고 느꼈던 올레의 아름다운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피곤한 기색도 없이 설명을 해 주었다. 이런 분들이 있어 제주의 올레 길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걸어야 할 코스가 많이 남아 있다. 늦여름에 시작하여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었다. 겨울에 올레 길을 걷는 것은 푸른 파도와 곶자왈, 오름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매서운 바다 바람과 추위에 맞서 한 걸음씩 전진해야 하는 고난의 행군과도 같다. 유채꽃 만발한 봄을 준비하기 위해 미리 체력 단련을 하는 과정이라 위안해 본다. 올레 길 위에서 만나게 될 풍경과 사람들이 나를 설레게 한다. 제주가 준 선물에 제주에 대한 사랑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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