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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 준 Oct 13. 2021

식스 디그리스(Six Degrees)

한국은 물론 호주나 미국, 어느 나라가 되었든 원두를 로스팅하는 로스터리 대부분은 카페를 같이 운영한다. 반대로 커피를 제공하는 대부분의 카페도 카페가 추구하는 맛과 본연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기 위해 로스터리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어느 방향이든 모두 자연스러운 수순이 아닐까. 그러니 둘 사이에 별도의 구분을 두지 않고 운영하거나 로스터리와 카페의 이름이 같은 것도 당연할 듯싶다. 반면 처음부터 로스터리와 카페를 철저히 분리하고 이름도 달리하는 경우가 있다. 그중 한 곳이 시드니에 위치한 식스 디그리스(Six Degrees)이다.

식스 디그리스는 2015년경 시드니 근교에 있는 사우스 그랜빌(South Granville)에 세워졌다. 설립 이후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던 이 로스터리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세계 최대의 로스팅 대회 중 하나인 골든 빈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Golden Bean Australia/NewZealand)[1]를 포함한 각종 대회에서 수상하며 그 우수성과 가치를 증명했다.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로스터리와 카페가 이름이 같다 보니 로스터리 이름인 식스 디그리스로 카페를 찾는데, 그렇게 되면 샌드빌에 있는 로스터리만 나타난다. 혼란스러울 수 있겠지만 이 식스 디그리스는 로스터리로만 존재할 뿐 같은 이름의 카페는 호주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Leaf Cafe & Co.라는 카페를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이 Leaf Cafe(리프 카페, 이하 Leaf Cafe)가 식스 디그리스의 원두를 사용하는 카페이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Leaf Cafe는 시드니 전역에 20개가 넘는 지점을 열고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이다. 프랜차이즈의 장점이자 단점은 통일성과 일관성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지역, 어느 나라를 가든 동일한 메뉴와 맛(적어도 비슷한 맛)을 제공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들어갈 수 있지만 그 예측되는 맛이 흥미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Leaf Cafe는 프랜차이즈의 통일성에 더해 지점이 위치한 지역에 따라 메뉴에 변화를 줌으로써 재미를 더했다. 모든 지점에서 음료 메뉴는 거의 동일하지만 브런치나 메인 요리 등은 차이가 있어서 다른 카페에 온 듯한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 점이 프랜차이즈가 살아남기 힘든 호주에서 모든 지점이 고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발전하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기반에는 높은 수준의 원두로 내리는 커피도 한몫할 테지만.

낯선 땅에서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보고 싶을 때가 있지만 선뜻 용기를 내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 프랜차이즈의 안정적인 맛을 제공하면서도 해당 지역의 특징을 잘 표현한 카페를 가고 싶다면 꼭 도전해볼 만한 장소이다.




비록 한국에서는 Leaf Cafe를 찾아볼 수 없지만 그 대신 화려한 수상 경력으로 증명된 식스 디그리스의 원두를 만나볼 수 있는 카페가 있다. 동명의 카페인 식스디그리스이다. 이곳의 이름이 Leaf Cafe가 아닌 식스 디그리스인 것은 카페가 아닌 쇼룸 역할에 집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뚝섬유원지역에서 나와 한강 둔치를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카페라고는 하나 보일 것 같지 않은 적적한 동네 한복판을 지나게 된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 가득한 그 한 구석에 사람들을 유혹하는 시원한 코발트블루의 파사드가 눈길을 끈다.

동쪽으로는 북적북적하게 사람들이 모여드는 화려한 대학가가 있고 서쪽으로는 서울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인 성수동이 있어 접근성이 좋을 것 같지만 자가용을 제외하면 가볍게 방문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가장 가까운 뚝섬유원지역에서도 10분 이상 걸어야 하고 버스로 방문하기도 그다지 쉽지는 않다. 그러다 보니 서울의 중심가에 있으면서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섬과도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자리하고 있는 이 쇼룸을 방문해야 할 3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인스타그래머블하다. 코발트블루로 색을 낸 전면 창은 벽처럼 보이지만 전면 전체가 위로 열리는 창문이다. 창문이 열리면 창문턱은 테이블로도 혹은 사진 촬영을 위한 의자로도 활용할 수 있다. 창가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으면 매력적인 인생샷을남길 수 있다.

둘째, 당연한 말이지만 커피가 훌륭하다. 다소 거칠고 투박한 느낌의 내부 인테리어를 보고 나면 커피 또한 그럴 것이라는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기분 좋게 느껴지는 원두의 명확한 특징과 플레이버를 맛보면 얼마큼 섬세하게 내린 커피인지 느낄 수 있다. 자체 블렌드의 수준이 높은 만큼 에스프레소 기반 음료의 맛이 훌륭하다. 순수하게 블랙으로 마시는 것도 좋지만 우유를 섞은 화이트 메뉴(플랫화이트, 라테 등)를 추천한다.

커피를 즐겨하는 사람 중에는 산미를 즐기기보다 아몬드나 땅콩 같은 견과류의 고소함을 더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고소함을 좋아한다면 화이트 메뉴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것이다. 필터 커피의 수준도 훌륭해서 테이스팅 노트에서 설명하는 원두의 플레이버를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다.

셋째,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살고 있다. 원래 길에서 살던 녀석이었지만 식스 디그리스가 생긴 후 자주 방문하다 거의 눌러앉아버렸다고 한다. 바리스타가 ‘모나미’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었다는데, 검은색과 하얀색이 절묘하게 섞인 모습이 이름과 찰떡 같이 어울린다. 처음에는 손님이 오면 도망가기 바빴다지만 이제는 가게의 마스코트가 되고 손님들이 와도 팔자 좋게 드러누워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인스타 계정(@monaminyang)도 있는 인싸 고양이이니 꼭 그 귀여운 모습을 좇아보자.

오기 힘든 장소이지만 한 번 오고 나면 자리를 뜨기 싫어질 것이다. 그럴 땐 바깥일 같은 건 잊고 느긋하게 앉아 커피향에 몸을 맡겨보자. 누가 아는가. 운이 좋다면 날이 좋은 언젠가 시원하게 열린 창문 앞에서 ‘모나미’와 나란히 앉아 맛있는 커피를 한 잔 할 수 있을지.


      

[1] 세계 최대의 로스팅 대회 중 하나로 2007년부터 호주에서 이어져왔으며, 2015년부터는 북미 지역에서도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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