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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 준 Oct 14. 2021

벤치 커피 스튜디오 (BenchCoffeeStudio)

어느 나라나 그 나라를 대표하는 도시가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은 수도가 그 나라를 대표하는 도시이지만, 수도 외에도 유명세를 떨치며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도시들이 있다. 한국에는 서울과 부산, 일본은 도쿄와 오사카, 중국에는 베이징과 상하이, 그리고 호주에는 시드니와 멜버른이 있다. 호주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면 다른 나라와 달리 이 두 도시 중에 호주의 수도는 없다는 것이다. 시드니와 멜버른은 수도인 캔버라를 제치고 호주의 가장 유명한 도시임을 자랑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호주의 수도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서로에게 뒤지지 않지만 커피에 있어서만은 언제나 멜버른을 동경할 수밖에 없던 시드니였다. 오랜 시간 쌓여온 커피 문화를 단번에 앞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란 어려우니까. 하지만 커피의 수준에 있어서 시드니가 더 뒤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시드니 거리 곳곳에는 멜버른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카페와 로스터리들이 자리하고 있다.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시드니의 커피씬을 지켜온 SingleO(싱글오)나 Mecca Coffee(메카 커피) 같이 나름의 전통을 자랑하는 카페는 물론이고 Skittle Lane(스키틀 레인)이나 Reuben Hills(루벤 힐스)처럼 2010년 이후 시드니에 자리 잡은 신생 카페까지 높은 퀄리티로 커피 애호가들을 즐겁게 해주는 카페가 가득하다.

시드니에 있는 수많은 카페 중에서도 현재 시드니의 커피 문화를 정착시킨 카페를 하나 꼽으라면 많은 사람이 SingleO(이하 싱글오)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시드니 커피 문화가 시작된 곳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시드니 CBD에서 남동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나오는 SurryHills(이하 써리 힐즈) 지역에서 이 역사적인 카페를 발견할 수 있다.


싱글오가 있는 써리힐즈 지역은 한때 악명 높은 범죄자들의 아지트처럼 사용되기도 한 우범 지역이었다. 시드니 중심가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동네에 그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걸 쉽게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이제는 과거의 흔적 위에 트렌디한 카페와 고급스러운 파인 다이닝, 각종 문화 행사를 위한 장소가 가득하게 들어선 덕분에 예전의 어두운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서울 신사동에 가로수길이 유명한 것처럼 써리힐즈 지역에도 가장 인기 있는 거리가 있는데 바로 크라운 스트리트(Crown Street)이다. 2km가량 길게 뻗어있는 이 길을 중심으로 먹을거리와 볼거리 등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다양한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특히 매달 첫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써리 힐즈 마켓은 빈티지하고 독특한 제품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둘러볼만한 장소이다.

크라운 스트리트를 구경하다 잠시 다리를 쉬며 목을 축이고 싶어 졌다면 이제 싱글오를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크라운 스트리트 중간쯤에서 리저뷰어 스트리트(Reservoir St.)로 빠져 벨모어 공원(Belmore Park) 근처까지 쭉 들어오다 보면 오른편으로 건물 코너에 자리한 싱글오 카페를 볼 수 있다.

 



2003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Single Origin Roasters(싱글 오리진 로스터스)라는 이름이었지만 고객들이 ‘SingleO(싱글오)’라고 줄여 부르다 보니 아예 상호명 자체를 ‘싱글오’로 변경해버렸다. 이렇듯 고객들의 의견을 가게 운영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뿐만 아니라 이전에 사람들이 잘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것에 눈독을 들이기도 한다.

싱글오는 시드니 커피씬에서 제3의 물결[1]을 일으키며 등장했다. 지금이야 스페셜티 커피가 주류에 편입되며 커피 문화를 이끌어가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일반 소비자에게 있어 스페셜티 커피란 꽤나 생소한 개념이었다.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덕분일까. 싱글오는 새롭고 실험적인 시도에 두려움이 없는 것만 같다.

테이스팅 노트에 QR 코드를 프린트해서 한정된 노트의 공간을 온라인까지 확장했다. 그 덕에 원두에 대한 기본 정보와 소개는 물론, 추천하는 레시피와 원두가 생산된 지역의 정보까지 폭넓게 안내하여 커피를 맛에 보는 재미까지 더 했다. 2019년에는 세계 최초로 셀프 배치 브루 탭을 설치하기도 했다. 마치 펍에서 생맥주를 따라 마시듯 미리 뽑아놓은 커피를 바로 컵에 따라 마실수 있는 시스템이다. 배치 브루(Batch brew)[2]라고 하면 보통 다이너(Diner)라고 하는 미국의 작은 식당에서 주는 커피를 떠올릴 것이다. 밝은 네온사인에 외부는 스테인리스 스틸 같은 재질로 덮여 있고 내부는 원색 느낌으로 인테리어 해놓은, 우리에겐 영화나 드라마로 더 익숙한 장소이다. 그 영향 탓일까. 이런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가 무료로 리필해주는 커피도 배치 브루의 일종이다 보니 자연스레 싸구려 커피 같다는 편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근래 미국이나 호주에서 유행하는 배치 브루는 엄선된 원두로 본연의 맛을 구현한 덕에 에어로프레스나 사이펀 같은 도구처럼 커피를 내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싱글오의 커피를 맛보기 위해 호주까지 가는 길이 부담스럽다면 조금 방향을 틀어서 도쿄로 날아가도 된다. 유명 관광지인 도쿄 스카이 트리가 있는 도쿄 스미다구에 싱글오에서 연 테이스팅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비행기를 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럴 때는 멀리 갈 필요 없이 신촌에 있는 벤치 커피 스튜디오로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처음 돌아다닐 때는 찾기 힘들 것이다. 외부 간판이 없다 보니 이름을 보고 찾아갈 수도 없다. 사실 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화살표 모양의 로고가 있고 그 옆에 COFFEE라고 크게 쓰여있으니까. 하지만 이것만을 보고 벤치 커피 스튜디오가 맞는지 확신할 수는 없으니 미리 주소를 알아서 오는 게 편할 것이다. 아무 표시도 없는 입구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가면 문 옆에 조그맣게 벤치 커피 스튜디오의 이름이 쓰여있다. 이름을 잘 지었다고 할까. 들어가는 순간 벤치, 커피, 그리고 스튜디오 3개 단어가 눈과 코로 바로 느껴진다. 막힘이 없이 시원한 스튜디오 공간에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벤치와 테이블이 쭉 놓여 있다.

커피 메뉴를 보면 싱글오에서 엄선한 싱글 오리진 리스트와 함께 자체 블렌드인 리저뷰어(RESERVOIR)와 파라독스(PARADOX)까지 모두 제공하고 있다. 싱글 오리진으로 내린 커피도 좋지만 자체 블렌드로 내린 플랫화이트를 마셔보자. 쌉싸름한 느낌의 독특한 원두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커피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내추럴 와인이 구비되어 있으니 저녁 에들러 조용히 와인 한 잔을 즐기고 오는 것도 좋을 듯싶다.



[1] 커피 문화와 시장의 변화에 대한 구분으로 제1의 물결(1st wave)은 인스턴트커피의 시대. 제2의 물결(2nd wave)은 대형 커피 체인의 시대(스타벅스 등), 제3의 물결(3rd wave)은 스페셜티 커피의 시대이다.

하나의 물결이 다른 물결을 미뤄낸다고 하기보다는 이전의 물결에 더해져 시장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2] 한 번에 여러 잔 분량을 추출하여 손님이 주문했을 때 바로 컵에 담아주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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