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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 준 Oct 12. 2021

에이커피(ACOFFEE)

여행은 언제나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일을 꼽으라면 뭐가 있을까? 아마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낯선 이국땅에서는 커피 한 잔 주문하기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바디랭귀지를 포함해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 그런데 주문을 받는 사람이 갑자기 한국어로 말을 걸어온다면 그 놀라움과 반가움을 어찌 이루 말할 수 있을까. 그런 먼 이국의 도시 멜버른에 한국인이 세운 쇼룸 겸 로스터리가 있다.


A cup of coffee(한 잔의 커피)를 줄여 이름을 지은 ACOFFEE(이하 에이커피)는 2017년 설립 이후 각종 매체에 소개되며 콜링우드(Collingwood) 지역의 베스트 카페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커피 도시 멜버른에서 한국인이 창업한 로스터리가 멜버른의 커피씬에서 손에 꼽히는 위치까지 올라갔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멜버른의 에이커피가 있는 콜링우드는 CBD와 멀지 않은 거리에 있으면서도 마치 먼 교외로 나온 듯 조용한 동네이다. 하늘을 가리는 높은 건물도 보이지 않고 대부분이 2층 정도의 낮은 건물로 이루어져 있어 CBD에 비하면 평화롭고 한적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멜버른 교외의 분위기를 즐기기는 좋지만 멀리 해외에서 온 관광객에게는 그다지 추천해줄 만한 관광 코스가 아닌 것처럼 보이긴 한다. 하지만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다채로운 매력을 품고 있는 동네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천국과도 같다. 수준 높은 카페들이 발에 차일 만큼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으니까. 바로 옆에 붙어있는 피츠로이(Fitzroy)까지 더해지면 지역 자체가 수준 높은 커피의 경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츠로이와 콜링우드를 천천히 돌아다니다 보면 서울의 성수동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로 유명한 카페에 들러 테이크아웃을 해서 나오면 바로 앞에 서울숲이 반겨준다. 서울숲의 공원을 걸으며 맛있는 커피를 마신다면 그만한 호사가 또 어디 있을까.

CBD 위 쪽에 있는 이 조용한 지역도 그렇다. 조금 더, 아니 꽤나 더 넓고 여유로워 보이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까. 커피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해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멜버른 박물관이 있는 칼튼 가든까지 닿게 될 것이다. 근대의 영국 어느 곳인가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 매력적인 동네 특유의 분위기와 쉴 새 없이 눈을 즐겁게 해주는 거리 풍경을 즐기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를 테니까.

거리를 걷다 보면 옷과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는 물론 아기자기한 편집숍도 눈에 띈다. 골목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보면 커피의 향긋한 향이 코를 간지럽힐지도 모른다. 그 향기를 잘 따라가 보자. 멜버른의 가게들은 좀 짓궂은 면이 있다 보니 밖에서 보면 어떤 가게인지 감이 안 올 때도 있고, 심지어 간판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니까.

사실 에이커피도 그렇다. 거리 풍경에 눈이 팔려 돌아다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지나쳐버릴 수 있다. 우연히 발견한다면 그건 아마도 간판 때문이 아니라 입구의 통창 안쪽에서 커피를 즐기는 손님들과 커피 향, 그리고 눈길을 끄는 커다란 로스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멜버른의 에이커피 내부는 벽면부터 천장까지 하얗게 칠해져 있다. 입구의 디스플레이 케이스부터 안쪽의 좌석까지 카운터 테이블이 일렬로 깔끔하게 이어져있어 애플 스토어에 들어온 것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에이커피 서울은 멜버른보다 한층 더 미니멀한 느낌이 강조되었다. 입구 정면에서 좌우로 길게 뻗어있는 카운터는 커피 추출 공간부터 좌석까지 일렬로 이어져 있는 멜버른의 카운터를 닮아있지만 벽면은 벽돌로 쌓아 올린 멜버른의 거친 느낌 대신 매끈하게 마감되어 더욱 깔끔한 느낌을 준다.

기억자로 꺾여있는 왼쪽 편의 쇼룸 공간에는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길고 심플한 디자인의 테이블이 놓여있다. 벽면에는 플로팅 유리로 만든 선반에 가지런히 놓인 에이커피의 원두 봉지가 올려져 있는데 하얀색으로 통일되어 있어 상당히 절제된 느낌을 준다. 원래 갤러리가 있던 자리를 사용해서일까 마치 모던한 미술관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렇듯 카페 내부는 쌍둥이처럼 닮아있지만 주변 환경은 닮은 듯 다르다. 에이커피 서울이 자리한 부암동은 서울의 중심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도 서울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높고 긴 언덕길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걸어가기도 마땅치 않고 지하철이 들어와 있지 않아 버스나 차량으로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접근성도 떨어진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전원의 풍경이 남아있다. 왼쪽으로는 인왕산, 오른쪽으로는 북한산이 있어 도시의 콘크리트보다는 자연의 초록으로 감싸인 듯한 동네다. 찻길을 벗어나 주택가 사이로 오솔길처럼 이어진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조그만 갈래길 오른편에 숨어있는 에이커피를 찾을 수 있다.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점은 역시 멜버른과 똑 닮아있다.


일반적으로 해외 로스터리의 원두를 취급하는 카페라면 직접 원두를 들여와 커피를 제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직접 카페나 쇼룸을 여는 일은 많지 않다. 하물며 본점에서 활동하던 바리스타가 직접 운영하며 커피를 내리는 곳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보통은 기존 경력이 있는 바리스타를 구한다거나 멜버른 등 다른 나라에서 바리스타 경력을 쌓아온 사람이 커피를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에이커피 서울의 바리스타는 멜버른 에이커피 초창기 때부터 함께 활동하던 바리스타로 에이커피 서울이 오픈하며 그 운영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러니 에어커피 서울에서 마시는 커피는 멜버른에서 마시는 커피와 같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터다.


북적거리는 도시 분위기에 지쳐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생각에 잠기고 싶다면 자연 속에서 산책도 할 겸 가벼운 차림으로 이곳을 찾아보자. 혹 반려동물과 산책하다 방문하고 싶은데 들어가기가 조심스럽다면 걱정하지마시라. 반려견 동반 입장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 아이들을 위한 물그릇까지 구비되어 있을 정도로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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