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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다리 준 Oct 11. 2021

멜브(MELb.)

세인트 알리 패밀리(ST. ALi FAMILY)

멜버른을 여행하다 보면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도시 환경이 있다. 바로 공원이다. 멜버른 CBD를 중심으로 퀸 빅토리아 마켓과 붙어있는 플래그스태프 가든(Flagstaff Gardens), 왕립전시관과 멜버른 박물관을 품고 있는 칼턴 가든(Carlton Gardens), 호주를 처음으로 발견한 탐험가 제임스 쿡(캡틴 쿡) 선장의 집이 있는 피츠로이 가든(Fitzroy Gardens)처럼 꽤 넓은 크기의 공원들이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CBD 남쪽에 흐르는 야라 강을 따라 로열 보타닉 가든 멜버른(Royal Botanic Gardens Victoria - Melbourne), 멜버른 파크(Melbourne Park), 야라 파크(Yarra Park) 등의 공원이 어마어마한 넓이를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공원에서 멜버니안들은 물론, 호주와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끄는 스포츠 이벤트가 펼쳐진다.


멜버른하면 ‘커피’를 떠올리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호주 사람들에게는 ‘스포츠’도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이다. 특히 테니스, 크리켓, 그리고 럭비는 멜버니안들에게 스포츠와 함께 자연스레 연상되는 단어들이다. 그렇다. 멜버른은 커피의 수도이기도 하지만 스포츠의 수도이기도 하다.

테니스 팬이 아니더라도 윔블던은 들어본 적이 있을 텐데, 호주 오픈은 윔블던, US 오픈, 프랑스 오픈과 함께 테니스 대회들 중 4대 메이저 대회에 속한다. 바로 이 호주 오픈이 멜버른의 멜버른 파크에서 열린다. 그뿐 아니라 크리켓과 럭비 경기도 이 멜버른 파크 바로 옆에 있는 멜버른 크리켓 경기장(Melbourne Cricket Ground)에서 열린다. 특히 호주 풋볼 리그(Australian Football League, AFL)는 호주 스포츠 이벤트 중 가장 크다고 여겨지는 AFL 그랜드 파이널과 함께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멜버른이 속해 있는 빅토리아 주에서는 이 그랜드 파이널 데이를 공휴일로 지정할 정도라고 하니 그 열기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할 수 있다. 이 성대한 행사를 즐기기 위해 사람들은 펍과 공원에 모여들어 박진감 넘치는 경기와 다양한 이벤트를 즐긴다.


쇼룸 역할을 겸하고 있는 멜브 에스프레소 바는 맥주나 와인 한 잔을 하며 친구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는 멜버른의 스포츠바를 닮아있다. 파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럭비공이나 각종 맥주 컵처럼 멜버른의 펍 혹은 스포츠바를 떠올리게 만드는 아이템들이 눈에 들어온다. 비록 멜버른에 있는 것처럼 여기저기 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지는 않지만 동네 어디인가 있을 법한 캐주얼한 느낌의 인테리어 덕분에 혼자는 물론 친구들과 가볍게 들러 커피를 즐기다 가기에도 부담이 없다.

입구 위에는 MELb espresso bar라는 이름이 적혀있지만 외벽에는 ST ALi FAMILY의 간판이 달려있다. 멜버른의 유명 로스터리인 세인트 알리(ST ALi)의 공식 수입원임을 알 수 있는 표시이다.


세인트 알리(ST. ALi)는 멜버른뿐 아니라 호주 그리고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카페이자 로스터리이다. 특히 에스프레소 기반의 음료가 주였던 멜버른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가장 먼저 시작한 선구자 중 하나이기도 하다.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굳건히 그 인기를 이어가면서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하려는 노력이 중심가에서 다소 먼 사우스 멜버른에 위치하면서도 멜버른의 커피 문화를 선도하는 카페가 된 이유가 아닐까.

그 노력의 일환으로 세인트 알리의 바리스타들은 바다 건너 여러 나라의 커피 애호가들에게 세인트 알리의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축제에 초대를 받거나 팝업 스토어를 열어 행사를 주최하기도 했는데, 2014년에는 한국에서도 팝업 스토어를 통해 일반 고객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세인트 알리의 커피를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맛보기까지 그로부터 5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고, 2019년에 들어서야 인천 부평과 서울 합정에 공식 디스트리뷰터 멜브를 통해 세인트 알리의 커피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순수하게 카페의 역할을 하는 부평의 매장과는 달리 합정의 멜브 에스프레소바는 쇼룸답게 조금 더 멜버른의 분위기를 닮아있다. 하얀색과 검은색 육각형 타일로 COFFEE라는 글씨를 장식해놓은 입구 바닥이 그렇고, 카페 옆면에 통창 아래로 낮게 쌓인 하얀색 벽돌이 또 그렇다. 특히 페인트로 거칠게 칠해놓은 듯한 하얀색 벽돌은 사우스 멜버른에 있는 세인트 알리의 파사드를 연상시킨다. 물론 내부의 캐주얼한 분위기는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이 친구들과 함께 럭비 경기를 시청하며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스포츠바와 같은 느낌을 준다.


인테리어만 멜버른의 느낌을 내는 것이 아니다. 커피 역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스페셜티 커피씬을 대표하는 멜버른의 커피 브랜드인 세인트 알리의 원두를 한국에서도 즐길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이 아닐까. 멜브에는 세인트 알리에서 로스팅한 싱글 오리진 리스트 외에도 오소독스(ORTHODOX)와 와이드 어웨이크(WIDE AWAKE) 두 가지 하우스 블랜드가 있다. 모두 콜롬비아와 브라질 원두를 블랜딩했지만 재배 지역을 달리하고 블랜딩 비율을 조절하여 각각의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했다. 점심 후 방문한다면 와이드 어웨이크를 주문해보자 왠지 이름에서부터 정신을 확 깨워줄 것 같지 않은가.


세인트 알리의 하우스 블렌드든 세심히 선별한 싱글 오리진이든 어느 원두를 선택하더라도 선명한 플레이버와 함께 후회 없는 커피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메뉴판을 유심히 보자. 이름만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메뉴가 하나 보일 것이다. SIGNATURE - MAGIC. 카페라면 저마다의 시그니처 메뉴가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이 메뉴도 멜브만의 시그니처 메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알만한 사람은 안다는 멜버른의 그 ‘매직’*이다.

멜버른의 카페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면 어디서도 ‘매직’이라는 메뉴를 찾아볼 수 없다. 너무도 당연한 메뉴인만큼 굳이 메뉴판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 것이다. 멜버니안이라면 어디서든 ‘매직’을 주문할 수 있고 멜버른의 바리스타라면 누구나 ‘매직’을 만들 줄 안다. 그러니 멜브에 방문했다면 꼭 ‘매직’을 한 잔 주문해 마셔보자. 그리고 상상해보자. 멜버른의 한 카페에서 ‘May I have a magic, please?(매직 한 잔 주세요)’라고 주문한 후, 마치 오랜 시간 멜버른에서 지낸 멜버니안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커피를 받아 들고 공원을 산책하러 가는 모습을.


*매직(Magic) - 더블 리스트레토에 스팀 밀크가 들어간 커피. 리스트레토로 내린 만큼 플랫화이트보다도 조금 더 진한 커피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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