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행의 기쁨과 두려움
홀로 여행한다는 건 듣기에는 좀 쓸쓸해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여행을 100%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충동적으로 여행하는 사람이든, 철저히 계획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이든, 모두에게 만족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할까.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가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모든 일정을 내 스타일대로 가득 채울 수 있으니 여행을 즐기기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겠는가.
이전에 다른 나라로 몇 번 여행을 갔지만 혼자 가더라도 현지에서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아예 처음부터 지인들과 함께 여행을 가서 온전히 혼행을 즐겨 본 적이 없었다.
나의 온전한 첫 혼행은 일본, 교토와 오사카였다.
열 명의 여행자가 있다면 여행에 관하여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모두 다를 수 있다. 철저한 계획 하에 여행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현장에서 충동적으로 모든 사항을 결정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비즈니스석을 구매하는 대신 그 돈으로 먹을 것에 아끼지 않고 쓰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음식은 싼 것을 먹더라도 고급스러운 숙소나 이동 수단을 예약하는 사람도 있다.
숙소 하나만 하더라도 취향은 수십 갈래로 나뉠 수 있다. 관광지와 가까운 곳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그보다는 조용한 주택가나 한적한 동네에서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다. 숙소에서 보이는 풍경도 누군가는 도시를 조망하는 시티뷰를 선호하고, 다른 누군가는 산이나 바다 같은 자연 풍경이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지는 걸 원한다. 하지만 당신이 누구든 이것 하나만은 장담할 수 있다. 무덤을 코 앞 1열에서 직관할 수 있는 무덤뷰를 원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
나라고 원했겠는가… 하필이면 첫 혼행에서 이런 시련을 맞닥뜨릴 줄이야.
교토와 오사카를 여행하는 4박 5일의 일정에서 첫 3일은 교토에서 머물기로 했다. 처음 일본을 방문하는 만큼 료칸에서 머무는 경험을 꼭 해보고 싶었다. 꽤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 이틀간 지낼 좋은 료칸을 예약했다. 그 결과 한정된 경비에 맞추기 위해서는 나머지 숙소를 저렴하게 구해야만 했다. 교토의 마지막 숙소는 비용은 저렴했지만 위치가 관광하기 좋은 기온 거리까지 걸어서 금방 도착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웠기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결정했다.
이틀간의 아늑했던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교토의 마지막 숙소로 이동할 셋째 날이 되었다. 료칸 사장님이 저녁까지 짐을 맡아주시겠다고 배려해주셔서 저녁 식사 전까지 관광을 하다가 짐을 찾고 료칸을 나왔다. 료칸에서 멀어지며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 앞에 서서 배웅해주시는데 그 정성이 얼마나 고맙던지.
새로운 숙소는 가깝지는 않지만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캐리어를 들고 가다 보니 그것도 그리 쉽지는 않았다.
골목 안으로 이어진 긴 담벼락 끝에 위치한 숙소는 어딘지 모르게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주인은 보이지 않고 넓은 로비에 전등불 하나만 켜놓아서 일본 공포 영화나 게임에 나오는 공간을 방불케 했다. 그냥 나가야 하나 싶었지만 숙소 비용이 아깝기도 해서 조심스레 ‘스미마셍’하고 불러보았다. 숙소 안쪽 어디선가 부스럭 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거뭇거뭇하게 수염이 난 주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주인의 안내를 받아 2층에 있는 방에 짐을 올려다 놨다. 3평 정도 되어 보이는 자그마한 다다미방이었다. 빈말로라도 깔끔해 보인다고는 말하지 못할 공간이다 보니 하룻밤만 예약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놓자마자 화장실과 샤워실을 알려주겠다며 나와보란다. 샤워를 하기 위해서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했는데, 선뜻 내려갈 수 없는 어두운 공간이었다. 이건 위험하다 절대로 위험하다 생각하면서도 그놈에 숙소비용이 뭔지…
비좁고 어두운 계단을 따라 내려갔는데 어둠 속을 더듬거려야 겨우 스위치를 찾아서 전등을 켤 수 있었다. 지하 1층 안쪽으로 이어진 짧고 좁은 복도를 걸어가 보니 오른쪽 편으로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있었다. 단순히 어두워서였을까 아니면 공간이 비좁고 다소 지저분한 인상 때문이었을까. 이상하리만치 으스스한 기분이 떨쳐지지가 않았다.
2층에 있는 방으로 돌아오는 내내 손님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방에서 짐을 챙겨 나가려다가 답답하기도 하고 환기라도 시키자 싶어서 창문을 열었는데, 이게 웬일… 시티뷰, 리버뷰는 바라지도 않는다. 차라리 벽 뷰면 감지덕지했을 터다… 살다 살다 1미터 앞 무덤뷰 숙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순간 든 생각이 아… 그럼 그 아래층 샤워실 바로 옆에… 아… 옆이!!!
샤워를 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다시 내려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주인에게 따질까 하다가 이미 여기서 숙소를 운영하는 사람이 무슨 죄인가 싶어서 당시 숙소를 예약했던 사이트에 연락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따졌다. 사이트 담당자도 주변 시설에 대한 사실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던지 방법을 강구해보겠다며 기다려달라 했다.
일단 숙소에 있기보다는 나가는 게 좋을 듯해서 관광을 하기로 했다. 원래 계획했던 대로 일정을 소화하던 와중에 사이트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당장 숙소를 바꿔주는 등의 조치를 할 수는 없어서 죄송하다며 해당 숙박에 대해서는 환불 조치를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다른 숙소를 찾아보고 싶었지만 그 저녁에 다른 숙소를 찾는다는 것도 힘들 것 같고, 또 마지막 밤의 일정을 계획한 대로 소화하고 싶은 마음에 그냥 술이나 왕창 마시고 늦게 들어가서 뻗어 자면 되겠지 라며 마음을 먹었다.
한참 관광을 하고 늦은 밤까지 술집을 돌아다니며 술을 진탕 마셨다.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고 숙소에 들어가 잠을 청했는데, 기분 탓일까… 깊이 잠에 들지 못하고 자다 깨다를 반복 했다.
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아침 일찍 교토역으로 가기 위해 짐을 챙겼다. 매가리 하나 없이 비실거리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짐을 챙기는 속도는 빨랐다. 오사카로 이동하는 기차에서 내내 기절하듯 잠을 잤는데 1시간 정도밖에 안 되는 그 시간이 얼마나 고맙던지.
숙소에서 한참을 멀어지고 나니 그래 여행하면서 무덤뷰를 배경으로 지내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위로하며 오사카를 즐기기로 했다.
그 후로도 이곳저곳 여행을 다녔지만 무덤뷰의 여파일까. 숙소를 예약할 때면 나도 모르게 훨씬 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잠을 설치는 일은 또 겪고 싶지 않기도 하고. 그들의 삶의 방식은 존중하지만, 글쎄…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질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