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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Nov 24. 2016

 #04. 출근하지 않는 남편과 30년을 살아야 한다면

12시간의 자유

https://youtu.be/05i4ZYAj1pE

남편의 은퇴를 코앞에 둔 중년의 아내들에게 묻고 싶다.

'결혼 후 수십 년간 출근하는 남편을 보았다. 

그런데 이제 부터 출근하지 않는 남편을 수십 년간 보아야 한다면 어떤 마음이 들지 생각해 보았는가?'


살림을 전담했던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 중 남편을 위해 직접적인 신경을 써야 하는 시간은 남편의 퇴근 후부터 다음 날 출근 전까지.

하루 중 약 12시간 정도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자신만의 시간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출근하지 않는 남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면 여러 가지 면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새벽 6시.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에 익숙한 남편은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식탁에 앉는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아내는 아직도 취침 중이다.

남편은 아내를 깨운다. '아침 먹자?'

아내는 조금만 더 자자고 뭉개지는 소리도 답한다.

배는 고파오는데 아내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슬슬 약이 오른 남편은 이불을 걷어내면서 조금 더 커진 소리로 한 마디 한다. '아, 밥 안 줄 거야?' 

살짝 분쟁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한다. 

사실 아내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단순한 일이다.

밥통에서 밥 푸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 꺼내서 혼자라도 식사하면 될 일이다.

굳이 아내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될 일 아닌가?

손이 없는 것도 아니고, 꼭 아내가 아침 밥상을 차려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제 남편은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은 여유롭게 일어나고 싶은 아내의 마음을 남편은 정녕 모르는 것일까?


12시다.

남편의 배꼽시계는 정확하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해서 그런지 정확도 만큼은 스위스의 명품 시계를 능가한다.

'여보 점심 먹자'. 남편의 주문이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빨래 널고 있는 거 끝내고요'

'알았어'

10분쯤 흘렀을까 살짝 당황한듯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 어쩌죠, 밥통 스위치 올리는 걸 깜빡했네, 1시간 정도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요'

아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편의 고함이 터져 나온다.

'아니 까먹을게 따로 있지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지'

아내도 지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도 있지 별걸 가지고 다 화를 내시'

남편의 화로에 기름이 떨어진다. 그다음은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하루 중 부부가 헤어져 보내는 시간은 오고 가는 시간을 포함해서 대략 12시간 정도 (7시 출근, 7시 퇴근).

가끔 술이라도 한잔 걸치는 날이면 그 이상의 시간을 떨어져 보내야 한다. 하루 중  반 이상을 배우자의 참견 없이 자유롭게 사용한 기간이 족히 30년은 되었을 것이다. 남편도 아내도 서로의 12시간 생활 습관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는 마음이 부족하면 부부간 충돌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은퇴자에게 소파와 큰 TV를 선물한다. 추측해 보건대 은퇴 후에 할 일이 없으면 소파에 들어 누워 TV나 보라는 뜻은 아닐지..


'익숙한 것이 떠나고 새로운 것이 들어오면 마찰이 생기게 마련이'

그동안 남편의 출근은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은퇴는 아내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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