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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Aug 09. 2017

#11. 쓴다는 것은?

조화


“얼” 

그 사람의 정신으로 혼(魂 넋혼)을 지칭하는 말이. 

"굴"

혼(魂 정신)이 들어오고 나가는 굴(窟 굴굴)이다


사람의 얼굴은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수 많은 힌트한다.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쓰인 것이 있다는 것과 맥이 통한다.

"얼굴은 그 사람의 인격을 엿볼 수 있는 현주소" 라고 말하는 것도 어찌 보면 감출 수 없는 인간의 속내를 가장 잘 드러내는 출구이기 때다.

마음이 요구하는 데로 용 되는 얼굴은 직업적 성격이나 소양에 따라 각기 다른 이미지를 가진 얼굴로 출되는 특징이 있다.

작곡가의 마음은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로 구현되고, 작사가의 속내는 노랫말로 드러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두 마음은, 곡(曲)이라는 그릇에 담기면서 또 하나의 이름을 갖는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곡(曲)의 생명력은 연주 본능을 자극하게 되고, 이는 악기와 소리 연주자의 협연을 통해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그 중 몇몇 곡은 대중의 관심과 사랑 속에 역사가 된다. 

또 하나 생각해 볼것은 “쓴다”는 의미가 갖고 있는 책임의 요소다. 글을 쓰는 것도, 마음을 쓰는 것도, 표출되는 이미지는 다르지만 행위적 개념을 내포한다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어떤 목적을 위한 쓰여짐인가에 따라 드러나는 모습이 달라질 뿐이다.

폭력은 주먹으로(力)
사랑은 애정으로 다가선다(心)
붓으로 생각을 쓰는 문인들과(文)
전략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무인들도 같은 이치다(武)

"쓴다"는 것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수반한다.

이같은 행위적 개념은 흔적이 남겨지는 일이고, 이는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력이(?) 행사 된 것이다.


글을 쓴다는 관점에서 볼 때

brunch는 좋은 예가 될 수 있을것 같다.

brunch에 쓰여지는 글들은 작가로서 고민한 흔적이 녹아있는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어찌보면 작가의  얼(魂혼.정신)을 느낄수 있는 공간 일 뿐아니라 brunch 라는 통로(굴)를 통해 수 많은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또 하나의 생생한 가치(格)를 공유할수 있는 기회의 장(場)이기도 하다.

이처럼 선의에 기반한 쓰임은 보편적으로 긍정성을 자극한다. 하지만 악의적 덧글이 쓰여지고 있는 또다른 소통의 공간은 그에 상응하는 부정성을 자극하기 때문에 표출된 결과물 또한 사뭇 다른 이미지를 갖는 것이다.


서두에서 얼굴은 그 사람을 읽을 수 있는 수많은 단서를 제공한다고 정의한 바 있다.

사람의 생각은 글이나 말로 표현 할수 있지만 마음을 달리 먹으면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수 있는 위험도 있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본질적 성향도 마찬가지다.

때론 숨기거나 감추고 싶은 것이 있지만 표정이나  행동거지 등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진실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쓴다는 것은

작곡가와 작사가의 조화를 통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듯, 글(文)과  말(言)그리고 행(行)함이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룰때  비로서 신뢰할 수 있는 가치의 소산물로 대중의 사랑을 받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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