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범 May 20. 2018

#59. 앞은 희망, 뒤는 약속

감독이 박수만 쳤는데 2위가 된 한화 이글스.

'앞은 희망, 뒤는 약속'

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이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지난 10여 년간 꼴찌 그룹의 이미지를 지우지 못했던  한화. 한용덕 감독이 두산 베어스 코치로 있을 때 최강 한화를 외치며 응원하는 친정팀을 보면서 짠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했던 한 감독의 고백에 공감한다(한화 레전드 출신)


시즌 초반(144 게임 중 44 게임 소화/공동 2위)이긴 하지만 지금의 한화는 지난 날 팬들이 경험했던 한화가 아니다. 한화는 패배가 익숙한 팀이었다. 지금은 승리에 익숙한 팀이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 팀을 변화시킨 것일까?

식상한 결론일 수 있지만 역시 사람이었다.

한화 이글스의 전성기를 이끈 레전드들에게 사령탑을 맡긴 것(감독/한용덕, 코치/장종훈, 송진우) 외엔 딱히 내놓을 만한 변화를 찾기 어렵다. 예년처럼 큰돈을 들여서 선수를 데려온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신인들의 비중이 커지면서 평균 연령이 낮아진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하지만 곱씹어 볼 것이 있었다. 그들에겐 한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커리어는 전임 감독들이나 코치들과 비교의 대상이 아니지만 한화에 대한 애정은 전임자들이 넘볼 수 없는 자산인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야구의 명장 김응룡 사단, 김성근 사단도 한화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여타 종목과 마찬가지로 감독과 코치의 능력은 매우 중요한 포지션이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치고 달리는 사람은 감독과 코치가 아니다. 감독의 몫과 선수의 몫은 구분될 수밖에 없다. 프로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그래서 자율의지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전임 감독의 경력을 존중한다. 그리고 존경한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마른 수건도 쥐어짜면 물이 나온다는 말처럼 선수들을 혹사시킨 면이 없다고 할 순 없다. 통계에 대한 믿음이 큰 야구. 잦은 번트로 대변되는 스몰 야구. 그리고 스프링 캠프의 지옥훈련과 시즌 중 때와 장소를 불문한 특타 훈련들...

프로들은 자신의 실력이 곧 돈으로 연결되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시즌을 치르는 한화 선수들을 보면 저러다 쓰러지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한화의 레전드 들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변화의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의기투합은 한화를 지배하는 냉기를 밀어내고 온기와 생기가 넘치는 행복한 야구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한화 야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조기 강판(투수)과 잦은 번트(타자)가 그것이다. 이는 선수의 능력을 의심하는 통제 야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필요한 작전이지만 그것이 너무 잦다면 생각해볼 일이다.

올해는 뚜렷한 변화가 보이고 있다. 번트 없는 야구, 조기 강판이 줄어든 야구를 하고 있다. 물론 선발야구까지는 아니지만 점차 안정화되고 있다. 체력을 혹사하는 지옥훈련이나 잦은 특타도 사라졌다. 그리고 휴식을 해야 하는 선수에겐 스파이크조차 신지 않게 한다. 쉴땐 쉬라는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기든 지든 무리하게 선수를 당겨 쓰지 않고 순리대로 선수를 기용하며 예측 가능한 야구를 한다. 뿐만 아니라 한화의 미래들을 1군에 올려서 뛸 수 있게 함으로써 한화의 선수층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선수간 자율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다음 이미지

한화 야구를 한마디로 정의할 순 없지만 통제 야구에서 자율야구로 변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시즌 초반이라 단언하긴 어렵지만, 지난날의 그것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느낌이다. 한화 선수들은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말한다. "내부 분위가 좋다" 가을야구에 대한 희망을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말에선 겸손한 결기가 느껴진다. 한용덕 감독의 말처럼 앞은 희망을 말하고, 뒤는 그 약속을 이행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리더가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리더의 경험 값도 중요하지만 그 경험도 정답은 아니다. 지난날 성취의 경험 값이 오늘의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경험 값을 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경험 값을 조직의 표준값으로 강제하는 것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음이미지

Q》 팀이 초반에 잘 나가는 이유는?
A》 "이기는 경기를 살펴보면 각 요소마다 잘하는 선수들이 나와서 제 몫을 해준다. 특히나 이런 부분이 몇몇 선수들에게 치중된 것이 아니기에 더 의미가 있다. 기존 몇몇 선수들 중심으로 가면 이렇게 팀이 좋게 굴러가지 못한다. 각자 제 몫을 해주기에 지금 정도의 성적이 나오는 것 같다. 감독인 저는 박수만 칠 따름이다" (한용덕 감독/스포츠한국 기사 중에서)


전임 감독 퇴임후 1년, 기록으로 보는 한화의 변화 (144게임 중 46게임 현재/ 단독2위)

▲ 평균자책점 7위→1위

▲ 희생번트 최다 1위→최소 1위

▲ 구원 3연투 9차례→2차례

▲ 1점차 승부 6승7패→10승3패

▲ 부상 엔트리 말소 11명→2명

▲ 선수 평균 연령 30.7세→28.7세

▲ 평균 경기시간 최장 2위→5위


시간이  흐르면 야구 환경도, 선수도, 팬들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 변화를 자신의 경험 값으로 강제하지 않는 리더의 여유를 계속해서 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58. 훈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