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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범 Jun 18. 2020

우연히 경험한 7일간의 동거

비둘기가 사라졌다

일주일 전, 아내는 난데없이 날지 못하는 비둘기 한 마리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집 앞 음식점에서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건물 귀퉁이에 한 발로 서있는 비둘기가 측은해 보였다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날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고, 그냥 놔두면 길 고양이가 해칠지도 모르니 일단 데려가자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친구들이 만류했지만 아내는 날지 못하는 어린 비둘기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30년을 살아본 경험에 비춰보면 아내는 충분히 그럴 사람이었다. 몇 일간만 보살피면 다시 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생각지도 못한 야생 비둘기와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우리 집 강아지들도 비둘기를 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평소 같으면 짖고 난리를 쳤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동거는 낮엔 주택 테라스 데크에서 햇빛을 쪼이게 했고, 밤이면 급조된 박스 집에서 잠을 잘 수 있도록 조치했다. 비둘기는 하룻밤이 지나면서 우리 가족들이 익숙해졌는지,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튿날 저녁 9시, 테라스 데크에 만들어 놓은 비둘기 집(박스 위에 소쿠리를 덮어 놓음)을 실내로 드려 놓기 위해 나갔더니 황색 길냥이 한 마리가 냄새를 맡았는지 박스 위에 뚜껑 삼아 덮어놓은 플라스틱 소쿠리를 건드리고 있었다. 순간 심장이 덜컹거렸다. 비둘기를 해치려고 다가온 고양이였기 때문이다. 어찌나 놀랐는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길냥이를 쫓았다. 어린 비둘기에 대한 측은지심이 발동한 탓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비둘기를 실내로 들이고 난 후부터는 가족 모두 비둘기를 예민하게 챙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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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 연수원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비둘기는 평소처럼 잘 지내고 있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테라스에 나가보니 주택 창문 턱에 않아 있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이젠 창문 높이까지 날아오른다는 말이 돌아왔다. 한편으로 기분이 좋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은 탓에 조금 더 데크에서 놀게 할 생각으로 실내에 들이지 않고 놓아두었다. 그리고 30분쯤 지났을까, 테라스에 나가 보니 비둘기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다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길냥이가 물어간 것일까? 잘 날지도 못하는데 주택 소공원 어딘가에 숨어있는 건 아닐까? 밤이 내린 탓에 시야는 확보되지 않고, 비둘기를 찾을 방법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이런저런 걱정을 뒤로한 채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걱정스러운 밤이 지나고 맞이한 이른 아침, 일어나자마자 테라스로 나갔다. 혹시나 지난밤에 돌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비둘기는 그런 나의 생각을 외면하고 싶었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간 이어진 야생 비둘기와의 동거는 그렇게 끝이 나고 만 것이다. 출근해서 직원들에게 비둘기와 지낸 7일간의 동거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이런 말이 돌아온다.


“흥부처럼 박 씨 물고 다시 오지 않을까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을 알면서도 싫지 않았다. 갑작스레 벌어진 7일간의 동거, 야생 비둘기와의 연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다시 만날 순 없겠지만 건강하게 주어진 수명을 다 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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