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법정 퇴직연령은 60세다. 하지만 60세까지 꽉 채운 퇴직자는 8%에 불과하다. 90%가 넘는 직장인 들은 60세가 되기 전에 퇴직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기업의 경우 평균 퇴직 연령은 49세에 지나지 않는다. 또 중소기업은 51세로 대기업에 불과 2년을 더한 정도다. 그렇다면 철 밥통으로 불리는 공기업은 어떨까, 대기업이나 중소기업보다는 오래 근무하지만 역시 55세를 넘기지 못하고 퇴직하는 현실이다. 이처럼 50세에서 55세에 이르는 구간은, 수많은 사람들이 몸담았던 직장을 뒤로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사하는 조기퇴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구간이다
이종범의 도해 카드_퇴직 레드존, 기업별 조기 퇴직 평균 연령
예를 들어 보자. 현재 50세(1970년)에서 55세(1965년)에 이르는 사람들은 대략 1985년에서 1990년 사이에 결혼한 사람들이다. 이때 가구당 합계 출산율은 1.63명까지 떨어져서 넉넉히 잡아도 가구당 약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문제는 두 자녀의 나이다. 나이 서른에 첫 아이를 낳고 3년 터울 막내 자녀를 낳았다고 가정하면, 아버지가 오십일 때 큰 아이는 스무 살, 막내는 열일곱에 불과하다. 이제 막 대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자녀를 둔 셈이다.
이 상황은 본격적으로 교육비가 투입되어야 할 시점에 아버지가 퇴사한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저축한 돈이 많거나 재산이 있다면 걱정할 것이 없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저축 액도 그렇고 자산도 넉넉한 입장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 교육비를 제대로 뒷받침하는 것이 쉬운 일일까?
55세에 퇴직한 사람도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큰 아이는 스물다섯, 막내가 스물둘이다. 대학교육도 끝나지 않은 나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정서상 아직은 부모의 경제적 도움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릴 적부터 같은 교회를 다니며 성장한 후배 이야기다(현재 55세). 공기업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지난 8월 말, 덴탈 마스크 100장 한 박스에 5만 원이라며 소개를 부탁하는 것이 아닌가. 예고도 없이 불쑥 방문한 상황이라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할 수 없이 소개를 약속하고 100장을 구매했다. 그리고 왜 그만두었는지 이유를 물었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짐작하건대 세 가지 중 하나일 확률이 높다. 하나는 임금 피크를 거부했거나, 명예퇴직을 했을 가능성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불미스러운 일로 갑자기 퇴사를 결정해야 하는 일일 수 있다. 상식적으로 임금 피크나 명예퇴직은 감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세 번째 문제 때문일까? 자꾸 의심만 더해간다. 아무튼 잘되기를 바라지만 공기업에서 결재만 하던 사람이 난데 없이 마스크 영업을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더군다나 한 번도 영업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자존심 때문에 누구보다 부탁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마스크 영업이라니,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아 걱정이다. 요즘 마스크 사업이 유망하다는 말로 설득의 변을 달았지만, 납득이 가질 않는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 사업에 뛰어들었고, 유통망도 체계를 갖춘 상황에서 새내기 세일즈맨이 마스크 시장을 만드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퇴사 전에 치밀하게 알아보고 뛰어든 것도 아니고, 어떨 결에 영업을 시작한 상황인지라 필자의 눈에 비친 후배는 그저 위태할 뿐이다.
후배에겐 아들이 하나 있다. 가수가 되겠다고 3년을 허비하더니, 이젠 포기했는지 헬스장에서 트레이너가 되겠다고 몸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군대 입소 날짜를 받아둔 터라 몸을 만드는 것도, 가수가 되는 것도 무엇 하나 매듭을 지을 수 없는 상황에서 후배가 퇴사한 것이다. 가진 돈이라고 해 봐야 약간의 저축과 퇴직 연금뿐이다. 아직 만기가 되진 않았지만 사용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쓸 수 있는 목돈이다. 혹시라도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새로운 사업을 벌이지 않을까 걱정이다. 55세가 죽은 나이도 아니고, 한창 일해야 할 시점임을 감안할 때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사업 유혹이 다가올 수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후배는 퇴직 레드 존, 소득을 교란시키는 3개의 함정 중에서 조기퇴직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의 마음이 어떨지 헤아릴 순 없지만, 지금은 누가 뭐라고 해도 냉정한 자기 분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물론 마스크를 팔아서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다. 그렇다면 한 걸음 멈춰 서서 자신의 내면이 무엇을 원하는지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현재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알지 못하고 호기만 가지고 일을 벌이면 승산은커녕 패배의 쓴 맛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백지상태에서 자신의 현재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다음, 내면에서 말하는 것들 중 하나를 선택하고, 미리 경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절대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일을 꾸미라는 이야기다. 마음은 급해도 55세가 늦은 나이는 아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든, 사전에 많이 두드려 보는 것이 중요한 나이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1. 당신은 정년까지 근무할 생각인가요(동의하지 않으면, 4번으로)
2. 그렇다면 정년까지 몇 년이 남아 있나요?”
3. 당신의 정년을 훼방할 수 있는 사, 내외 변수는 무엇인가요?
4. (혹시) 조기 퇴직이 발생할 경우, 당신의 플랜 b는(직업 또는 희망하는 것)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