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랐는데 벌써 금연 4주 차가 된 건에 대하여
짜잔! 알고 보니 금연 4주 차였습니다. 생각보다 더 오래 금연했군요. 11월 28일 날 시작했으니 4주 째이죠. 이 사실을 보건소에 들러서야 알게 됐답니다.
"그냥 금연을 한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어요. 저는 원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거든요."
내 말을 들은 상담사분은 스스로 콩을 집어먹는 아이를 본 어린이집 선생님처럼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거 아주 좋은 방법인데요? 아주 잘하셨어요."
칭찬의 강도가 거진 인명 사고를 막은 수준이었다. 괜히 부끄럽고 민망해서 상담 내내 상담사분의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솔직히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나이가 몇 갠데 금연했다고 이렇게 칭찬을 받는 거지? 나 좋자고 금연하는 건데.'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래서 2주에 한 번씩 안 오고, 그냥 너무 힘들 때마다 올게요. 2주에 한 번씩 방문하면 내가 금연 중이란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인지하게 되잖아요. 그냥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요."
"아주 좋은 생각이에요. 저희가 2주에 한 번씩 문자는 넣어드리거든요. 그게 꼭 오시라는 의미는 아니니까 오고 싶을 때 오세요. 그리고 금연하신 지 4주가 되셔서 저희가 조그만 선물을 준비했어요."
치약이었다. 남은 니코틴 찌꺼기를 벗겨낼 수 있는 아주 고마운. 금연해서 건강도 챙기고, 돈도 굳고, 선물도 받고, 껌도 공짜로 받고. 이거, 흡연보다 금연이 더 이득이잖아? 그렇게 나의 화요일은 아주 기분 좋게 끝났다.
어쨌든 흡연 생각이 거의 나지 않는다...라고 생각한 다음 날, 일이 터졌다.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동아리에 납품해야 하는 책이 다섯 권이나 누락된 것이었다(나는 현재 서점에서 일하고 있다). 엥? 그거 그냥 다시 주문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르다.
나는 서점에 3일(목, 금, 토) 출근한다. 일요일부터 수요일은 출근하지 않는 것이다. '금요일'에 받은 주문 요청서를 확인하고, 주문할 수 없는(주로 절판) 책을 제외한 나머지 책을 추려, '서점 컴퓨터'로 견적서를 작성했다. '금요일'에. 동아리 운영자분은 다섯 권을 추가 주문 요청하셨고,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나는 집에서 '내 노트북'을 이용해 견적서를 수정해 보내드렸고... 그리고 까먹었다. 목요일 출근해 책 주문을 넣었다. '서점 컴퓨터'로 작성한, 수정되지 않은 견적서에 나와있는 책들로. 나는 '금요일'에 작성한 견적서가 맞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 '일요일'날 수정해 보낸 견적서는 내 노트북에만 있어서 행방을 몰랐다(까먹었으니까). 서점 컴퓨터에는 수정된 견적서가 없었으니 당연히 내 말이 맞다고 믿었다. 도서관에서 '결제 금액이 견적서에 나와있는 금액하고 다른데요.'라는 얘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아리 운영자분에게 '보내주신 견적서랑 책 수량이 다른데요.'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점 사장님에게 '이거 결제 금액이 안 맞다는데요?'라는 얘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아리 운영자 분께서 절판된 책들을 제외하기 전 요청서로 보셨나 봐요. 그거 제외하고는 이 금액이 맞습니다.'라고 말했다.
'뭐, 이런 실수쯤이야. 누락된 서적 다시 재구매하면 되잖아. 그리고 도서관 결제 담당자분께 재결제 요청하며 되고. 별것도 아닌 걸로 왜 그래.'
물론 그러면 된다. 별것도 아닌 일인 것도 맞고. 실제로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고. 누락된 책들을 재주문했고. 미결제된 금액도 내일 재결제하기로 했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부분은 우격다짐으로 우겨댔다는 것이다. 내 말이 맞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는 점. 이게 너무 싫었다. 꺼진 불도 다시 보고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야 하는데, 왜 난 바보같이 우겨댔을까. 나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자괴감 비슷한 걸 느끼니 흡연 욕구가 일기 시작했다.
'여느 일반적인 회사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면 바로 짤렸을 텐데(물론 난 일반적인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다) 아... 담배를 피우고 싶다, 담배.'
그러다 문득, 내가 왜 까먹었을까를 생각하게 됐다. 맞다. 흡연이 내 기억력을 감퇴시켰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당시 금연을 했었더라면 난 수정된 견적서를 기억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 맞다.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하게 됐는지에 대한 경위가 명명백백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금연이 기억력을 회복시킨 게 분명하다.
이로써 나는 금연을 하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왜냐? 나는 원래부터 비흡연자였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흡연을 한 것도 아니거니와 흡연을 했던 기간보다 비흡연했던 기간이 더 길었다. 비흡연자이니 금연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난 비흡연자다.
15% 오른 주식을 팔았는데도 슬픈 이유는 그 주식이 상한가를 쳤기 때문이다. 주식을 잘하는 한 형님은 '자신이 목표한 금액에 팔고 후회하지 않는다'라는 철칙을 가지고 계신다. 그 형님은 부자다. 사업으로도 돈을 많이 벌었고 주식으로도 쏠쏠하게 돈을 벌었다. 아, 그렇다. 미련을 갖지 않는 것. 그것이 성공의 키워드이다.
흡연을 하는 사람을 봐도, '뭐, 나는 원래 비흡연자인걸.'
스트레스를 받아도 '뭐, 나는 원래부터 스트레스를 받아도 흡연하지는 않았는걸.'
이미 팔아버린 주식에 미련을 갖지 않는 것. 이미 끊어버린 담배에 미련을 갖지 않는 것.
아, 저는 비흡연자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요즘 내가 몰두하는 금(禁)은 음란물이다. 음란물은 뇌를 망가뜨린다. 확실히 그렇게 느끼고 있다. 음란물에서 점점 멀어지니 느껴진다. 음란물로 인한 자극의 잔상이 오래 남는다는 것을. 날이 갈수록 더 큰 자극을 원한다는 것을. 뇌가 자동적으로 일반적인 것을 성적인 것과 연관시킨다는 것을. 그렇게 뇌가 점점 음란물에 절여진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단 한 가지의 공통점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자위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의 자위행위, 그리고 스스로 위로하지 않는다는 뜻의 자위. 다시 말해 합리화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하지 않는다.
'아 친구들이랑 술자리를 가졌는데 나는 술을 못 마시잖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담배 한 대 피웠어.'
'글 쓰려면 영감을 얻어야해. 영감의 원천은 역시 니코틴이지. 유명한 대 작가들 봐봐, 죄다 꼴초지.'
'아니 그냥 넷플릭스 보는데 야한 장면 나와서 하는 수 없이 야동 봤어.'
'이틀 동안 열심히 운동했으니까 오늘은 야식 먹어도 돼.'
'어제 글 열심히 썼으니까 오늘은 좀 쉬자.'
'음악 하는 사람은 노는 것도 공부야.'
'피곤하니까 더 자도 돼. 어차피 피곤하면 아무것도 못해.'
이런 의미 없는 합리화들.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치기 어린 생각들은 나를 얼마나 낯부끄럽게 만들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피함을 모르는 나는 얼마나 방만했던 것인가.
손쉬운 도파민에 절여졌던 뇌가 회복해 나가고 있다. 내가 20대를 얼마나 방탕하게 보냈는지 깨닫게 되었다. 10대 때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루가 너무 짧았다.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앞으로 다가올 30대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쓰고 싶다. 낭비하고 싶지 않다. 손쉬운 자극들에게서 멀어지니 많은 걸 깨닫게 되었다. 금연, 이것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날갯짓이 아니었을까. 그만 놀고 이제 현생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