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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lumnlist Jan 05. 2024

붕어빵도 빵이었네...

금연은 유지하되, 라면/빵/과자도 끊어볼까?

오늘 담배 피우는 꿈을 꿨습니다. 신기한 게, 꿈에서도 금연을 하고 있다고 인식했는지 불을 붙이지 않고 그냥 빨기만 했더랬죠. 근데, 담배가 줄어드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중엔 재도 떨어지더라고요. 이럴 거면 그냥 불 붙이고 화끈하게 피우지… 어차피 꿈인데… 그냥 꿈인데 시원하게 빨지… 꿈에서도 소심하구나…




금연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아 새해에는 라면/빵/과자도 함께 끊기로 다짐했다. 12월 31일, 마지막이 될 라면을 끓였다. 어떻게 끓일까 고민하다가, 그냥 플랫하게 끓이기로 했다. 이별은 미사여구 없이 깔끔한 게 좋으니까.



 마지막 만찬으로 칭하기에 나무랄 데 없는 환상적인 라면이었다. 냉수와 온수, 그 중간에 위치한 완벽한 온도의 미지근한 물처럼 설익은 면과 푹 익은 면 그 사이, 완벽하게 익은 면발이었다. 쫄깃하지만 부드러운 면발, 입에서 느껴지는 윤기. 사진을 다시 보니 방금 점심을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군침이 돈다.


여러분. 라면엔 총각김치입니다. 이 완벽한 조합을 모르셨다면 오늘 한 번 드셔보세요. 단, 계란 풀은 라면에는 안 어울립니다.
마지막이니 밥까지... 저 새빨간 거 보세요. 아주 도발적입니다.
소고기는 남겨도 라면은 못 남기지....

 이렇게 12월 31일의 마지막 식사를 라면으로 마무리했다. 대학 때는 자취를 했으니 친구들과 함께 해의 마무리를 했지만, 지금은 가족들과 소소하게 타종 행사를 보며 싱거운 말을 주고받는 걸로 해를 마무리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근데, 아빠. 올해 내 운세 어때?"

"넌 그냥 열심히 해."

사실 열심히 하란 말엔 대꾸할 말이 없다. 노력은 통장잔고처럼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니까.


 이제 담배 생각은 나지 않는다. 하루에 두 번씩 먹던 라면도 안 먹다 보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대신 하루에 두 끼를 먹던 내가 근육 성장을 위해 세끼를 먹는다. 하루동안 섭취해야 할 칼로리를 계산해 보니, 적어도 2,500 칼로리 이상은 먹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두 끼로는 어림도 없었다. 2,500칼로리. 말로는 쉽지만 정제 탄수화물을 제외한다면 그 폭이 굉장히 좁아진다. 피자 한 판이면 채워질 열량을 공깃밥 10 공기로 채워야 한다는 거다. 우웩. 듣기만 해도 힘들다. 전보다 먹는 양은 늘었지만, 죄다 현미밥, 닭가슴살, 단백질 보충제, 연어, 구운 계란 등등이라서 헛배가 부르다는 느낌이 든다. 빵은 한 두 개만 먹어도 포만감이 느껴지는데, 현미밥과 닭가슴살은 먹어도 먹어도 '이게 배가 부른 건가?' 하는 의문이 든다. 먹는 양은 늘었지만, 살은 외려 빠진다. 이로써 정제 탄수화물이 지방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인구 소멸 위험 지역에 정제 탄수화물을 잔뜩 가져다 놓으면 지방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루에 3끼를 먹다 보니 두 끼를 먹었을 때보다 기운이 넘치긴 하지만, 속이 계속 든든한 느낌이라 별로다. 허한 그 느낌이 좋은데. 그렇다고 두 끼만 먹자니 살이 찌고 근육이 줄어들 게 뻔하다. 참... 근육을 키우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것이 뭐가 되었든 간에 '생성'이란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근육을 키우는 이유는 단순하다. 앉아서 오~~래 일하고 싶어서. 근육이 없으면 힘이 없다. 그럼 앉아서 일하다가 졸음이 온다. 식사를 많이 하고 운동을 빡세게 해서 그런지 요새는 파이팅 넘친다.

복싱을 했을 때는 내가 대출을 해주는 입장이었다. 내 돈(에너지)을 탈탈탈 털어가는 느낌. 근데 다음날이 되면 털어간 에너지만큼 다시 채워놓고 간다. 털어간 에너지에 이자를 조금 더해서(에너지의 총량이 늘어난다, 피통이 늘어난다).

헬스는 적금 같은 느낌이다. 체력을 차곡차곡 비축하는.

 이렇게 열량을 채우려다 보니, 매 끼니마다 하나를 더 먹으려 한다. 이틀 전, 아침 일찍 병원에 가신 할머니를 모시러 갔었다. 차에 타신 할머니의 손에는 검은색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는데, 그 안에는 까스활명수와 붕어빵이 있었다. 아, 나는 왜 붕어빵을 보고도 '빵'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슈크림 붕어빵의 누우런 자태를 보고 하나를 입에 넣어버렸다. 아, 얼마나 달콤했는지. 내 머릿속에 빵이란, '파리바게트' 혹은 '뚜레쥬르'에서 파는 빵들뿐이었다. 붕어빵도 '빵'이다. 하아... 그간 잘 참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손에 묻은 캡사이신 원액을 핥은 길이 떠올랐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안 그러면 열불 납니다~.
정신 차리겠습니다!

앞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



 담배 피우는 꿈을 꾼 걸 보니, 금연을 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래 금연 1~2달 차에 다들 한 번씩 꾼다고 하더라고요? 아, 이 건강한 느낌. 아주 좋습니다. 런닝머신을 영원히 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예전엔 숨이 차서 멈췄는데 요새는 귀찮아서 멈춥니다. 무릎도 아프고 해서. 와... 금연하세요. 정말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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