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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lumnlist Jan 19. 2024

오랜만에 먹은 라면 맛의 느낌은 실망이었다

금연 몇 주차인지 까먹었어요. 이제 저는 그냥 비흡연자입니다.

좋았던 기억들로 가득 차서 몰랐었다. 우리가 왜 헤어지게 됐는지. 원인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변함없이. 원인을 마주한 나는 또다시 이별을 계획한다.


아 이거 참, 한 달은 끊기로 했으면서 고새를 못 참고 2주 만에 끓여먹고 말입니다. 그래도 매일 먹던 라면이었는데, 2주 만에 다시 먹었으니 괜찮겠죠? 괜찮은 거죠? 괜찮다고 해주세요 제발...


오랜만에 라면 끓여 먹었는데, 더럽게 맛없었습니다. 정말 더.럽.게. 12월 31일 날 먹은 라면은 정말 말 그대로 꿀맛이었는데 말이죠. 맛없는 라면을 먹으니 재결합 후 다툼의 원인을 완벽히 깨달은 부부처럼, 왜 제가 라면과 헤어지려고 했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더라고요. 이래서 추억은 추억대로 남겨둬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추억은 추억으로. 뒤돌아보지 말고.
여기서 잠깐! 그때의 라면이 왜 맛있었을까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우지를 사용했다는 것. 당시 어머니께서는 고기를 굽고 계셨습니다. 저는 라면을 끓이고 있었구요. 어머니에게 고기를 굽던 집게를 건네받아 라면 면발을 풀었습니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죠. 그렇게 첨가된 소의 지방이 라면의 풍미를 완벽하게 업그레이드시켰던 겁니다. 게다가 적당히 삶은, 퍼지지도 꼬들꼬들하지도 않은 완벽한 면발까지. 아, 라면엔 역시 소기름이 들어가 줘야 합니다. 이건 진리입니다. 그렇다고 소기름을 넣어 다시 라면을 끓이고 싶진 않습니다. 마지막은 좋은 추억으로 남겨둬야죠. 전 애인에게 전화해 봤자, 돌아오는 건 욕밖에 없습니다.
여하튼, 재회의 기쁨보다는 이별의 후련함을 다시금 느끼게 해 줬던 '라면' 씨에게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꾸준히 라면을 끊을 생각입니다.




근래 들어 도넛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음식 중 하나였는데, 왜 이리 도넛이 먹고 싶을까. 예전에도 가끔씩 도넛이 먹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무조건 크리스피크림이 떠올랐는데, 요새는 심지어 던킨도너츠가 떠오른다. 의식의 흐름이 던킨까지 미치다니. 햄버거가 먹고 싶다는 욕망에 전혀 같지도 않은 햄버거 젤리까지 탐닉하고 싶다는 지경에 이르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이건 햄버거가 아니야!!!!


집 앞에 던킨도너츠가 생겨서였을까? 아 원래 나는 도넛을 좋아하지 않았던 인간이었는데...


파주출판단지에서 3년 정도를 살았었다. 그때는 책에 관심도 없었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작곡을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밖에 없었다. 출판단지에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뜬금없이 롯데 아웃렛이 있다. 그때 당시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던 건물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거기 그게 왜 있을까 의문이 든다. 호젓하기까지 하던 출판단지가 주말만 되면 시끌벅적해졌다. 지혜의 숲, 헤이리, 아웃렛 3 콤보가 후미진 동네에 열기를 불어넣었다. 그 롯데 아웃렛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살았었는데, 가끔 짬뽕이 먹고 싶을 때면 롯데 아웃렛 내부의 중국집에 가 짬뽕을 먹곤 했다. 이름이 무슨 차이나였는데, 여름 때면 냉짬뽕을 먹곤 했었다. 후식으로는 아래층인가, 옆 동인가에 있던 크리스피크림 도넛을 먹었다. 그때를 돌이켜 생각해 보니 좀 무서워졌다. 아니, 갑자기 한기가 내 몸을 쫘악 스치고 지나갔다. 왜냐면 우리 집은 당뇨병 내력이 있기 때문이다.

30이 된 나이에 라면이랑 담배랑 커피랑 술(은 원래 안 마시고)이랑 빵, 과자를 멀리하려고 노력 중이다. 30이란 나이는 내 안에 있는 나와 타협을 할 시기라고 느껴진다.

 10대 때는 혼자라서 1.

 20대 때는 둘(배우자)이 함께여서 2.

 30대 때는 자녀까지 더해 3.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요새 생각이 달라졌다. 오직 3에 대한 것만. 요샌 느지막한 30대 중후반쯤 되어서야 결혼을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3의 패러다임이 변할 때가 된 것이다. 3은 또 다른 나를 지칭하는 숫자로 치환되어야 한다. 3은 집안 내력, 즉 유전학적인 나다. 30대가 되면 스멀스멀 다가온다. 당뇨/고혈압/탈모 기타 등등... 딱 30이 되니까 이것들이 체감된다. 이 글을 읽는 40-60대 형님/누님들은 '얼라가 뭔 소리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신다는 거 안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형님/누님께서도 그때쯤 느끼시지 않았나. 젊음에서 늙음으로 전환되는 변곡점이 30이란 걸. 이러니까 진짜 슬퍼지네. 하지만 슬퍼하긴 이르다! 아직 나에겐 70년이 남았다!


요 근래 피부로 더 와닿는 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


내가 좋아하는 건 멍하니 시간 보내기다. 근데 그게 나를 좀먹더라.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었던 건 게으름이었다. 그것 역시 나를 좀먹더라. 그래서 다 끊어내기로 했다. 담배를 끊고, 음식을 끊고, 나쁜 습관을 끊는 행위들은 결국 게으른 내가 쥐고 있던 주도권을 뺏기 위함은 아닐까. 30대. 유전학적인 또 다른 나. 유전학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천성. 그 천성을 지닌 또 다른 나와 엎치락뒤치락해야 할 시기. 게으른 나 역시 나이기에 끊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잘 구슬려서 설득한다면 평생을 살아가는데 좋은 동반자가 되지 않을까.


'30년간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았잖아. 이제는 열심히  살아보자.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죽기 전에 후회는 하지 말아야지. 방탕함은 잠시 넣어둬. 나중에 지칠 때 꺼내 쓰게. 방탕해도 걱정 없을 만큼만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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