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아로운 생각 Sep 01. 2023

어느 대기업 임원과 커피 한잔 하실래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버스 안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 근처 정류장까지는 한참 남아 있었다. 생각 없이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는데, 깜짝 놀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사님, 죄송해요!! 저 내릴게요!!” 순간, 버스 기사님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버스가 잠시 멈춘 정류장을 다시 출발하려던 찰나였다.     


“할머니!!” 내가 버스까지 멈춰 세우고 달려간 곳은 붕어빵 리어카였다. 뜨거운 여름이라 계실리 만무한데, 전혀 예상치 못하게 붕어빵 할머니가 리어카 앞에 앉아 계셨다. 천막으로 감겨 있는 리어카의 파라솔로 햇볕을 가리시고,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앞에 두신 모습이셨다. 뜨거운 여름에 어찌 나오셨는지를 여쭙자 집에서 우두커니 있으면 뭐 하겠냐 하셨다. 그러시며, 요즘 옥수수로 점심을 때우는 근처 직장인이 많아졌다며 당신이 나오지 않으면 배를 곯을 수 있어 꼭 나와야 한다고 하셨다. 지난겨울에도 물가가 부쩍 올라 붕어빵으로 끼니 때우는 손님들 때문에 나오셔야 한다고 하시더니, 철이 바뀐 여름에도 같은 대답이셨다.     

 

잘 지내느냐며 반갑게 맞아 주시는 할머니의 눈매가 여전히 선하셨다. 할머니가 계신 줄 알았다면 여러 번 왔을 거라 말씀드리자 환하게 웃어 주셨다. 할머니와는 퇴직 후 몇 년의 겨울을 함께 보내며, 단골의 정을 쌓아가는 중이었다.     


매 겨울철, 뵐 때마다 신기하게도 할머니는 내 기분을 정확히 알아채셨다. 얼굴 전체가 마스크로 가려져 눈만 빼꼼히 나와 있는데도, 내가 유독 우울한 날이면 붕어빵 한 마리를 더 얹어 주셨다. 가끔은 붕어빵 틀이 넘치도록 팥을 부으시며, 팥을 더 담아주고 싶지만 그러면 붕어빵 배가 터진다며 이해하라고 말씀하셨다.

     

언젠가는 그날따라 내 어깨가 유독 처져 보였는지, 붕어빵을 봉투에 담으시며 겨울은 지나간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을 듣고 눈물을 와락 쏟고 말았다. 말씀하시는 겨울이 그 겨울은 아닐진대, 할머니의 그 말씀 한마디를 통해 나는 가녀린 희망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할머니는 내게 따뜻한 세상이었고, 온기 느껴지는 회사 밖 사람이었다.     


간혹  내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도 할머니는 싫은 내색이 없으셨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짧은 한 두 마디에 담아 말을 하고 나면 왠지 기분이 후련해졌다. 그런 이유로, 마음이 터질 듯하면 일부러 할머니를 찾아가기도 했다. 기껏해야 붕어빵이 구워지는 동안인데, 붕어빵을 사들고 돌아설 때면 가슴속 응어리가 씻겨 나간 것 같았다. 그 시절, 그 순간이 내게는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표현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였다.      


“할머니, 저 옥수수 주세요”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할머니 계좌로 5천 원을 보냈다. 그러며 내가 계산한 옥수수는, 한 봉으로 부족해 보이는 다른 분들에게 덤으로 주시라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미소를 띠시며 알겠다고 대답하셨다. 아주 짧은 순간, 내가 행복한 것처럼 할머니께서도 그러신 것 같았다.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데 퇴직 후 기억이 떠올랐다. 퇴직 후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이 다른 퇴직자들은 어떻게 길을 찾아가는 지였다. 어떤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지도 알고 싶었다. 마땅히 물어볼 곳 없는 가운데, 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는 동안 나는 적잖이 상처를 받았다. 누구 하나 물어보고 말할 데가 없는 것도 답답했다. 대체 나는 세상 어디쯤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다면 덜 힘들 텐데, 심할 때는 내가 폭풍 속 사막 한가운데 맨몸으로 서 있는 듯했다.      


후에 브런치를 통해 같은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계심을 알게 되기까지 나는 매일을 끝도 없는 절벽으로 추락했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는 내게 참 고마운 곳이다. 브런치를 통해 만난 분들의 말씀은 내게 큰 힘이 되었고 새로운 꿈을 꾸게 했다. 더 일찍 그분들을 뵈었다면 덜 힘들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그래서일까. 퇴직자분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머니와 나누는 몇 마디로 겨울을 버텨낸 것처럼, 퇴직자분들이 경험을 주고받으며, 힘을 얻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같은 처지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얼마 전 ‘퇴직학교’라는 유튜브 채널을 오픈했다. 새로 시작한 유튜브가 그런 창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간혹 곤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대부분 진심이 느껴지는 댓글들을 볼 때면, 마음이 울컥해진다. 다른 분들께 걱정 담은 이야기를 전하는 동네 형님, 아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더 많은 분들이 그 안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하며 힐링을 하시고, 다른 이의 삶을 들으며 길을 찾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퇴직 후 내가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된다. 특별히, 같은 어려움을 겪은 사람을 통해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저와 커피 한잔 하시겠어요?     
   




선생님의 소중한 경험을 나눠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퇴직  길을 찾으셨던 (또는 찾으시는) 과정 / 퇴직  미래를 준비하시는 과정]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주신 이야기는 유투브와 브런치를 통하여 다른 분께  도움을 드릴 것입니다.  괜찮으시면 아래와 같이 적으셔서, k_jakka@kakao.com 으로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퇴직하신 분]연령대  / 간단한 이력 (예. 기업 몇 년 근무)  / 퇴직 시기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 퇴직(예정) 자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아직 재직 중이신 분] 연령대  / 간단한 이력 (예. 기업 몇 년 근무) / 퇴직 예정 시기  / 하고 계신 준비  / 퇴직(예정) 자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___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공모전을 준비하는 작가들에게 고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