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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균 Nov 25. 2015

한국정치의 부정부패와 역사와의 관계

만약 "역사학이 현실의 학문"이라면  그 지향점은 어디인가?

얼마 전 영화  "내부자들"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소견으론 천만 관객은 일찌감치 넘을 것이고, 이병헌의 안티팬 조차도  '내부자들'을 계기로  용서해 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영화의 주제와 본질은 단순하다. 

'내부자들'은  정치-검찰-언론이라는 쓰리쿠션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 이야기다. 이것은 한국정치현실과 매우 높은 싱크로율을 제시한다.

그 과정에 빼놓을 수 없는 의리와 배신 그리고 복수가 난무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조승우가 부장검사 앞에서 무릎을 꿇으면서 말한다.

"조직을 위해 개처럼 일했는데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라고 말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냉랭하다.
"잘하지 그랬어. 아니면 잘 좀 태어나던가?" 

와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니 못한 은수저 흙 수저의 신분상승의 길마저 막히고 있는 헬조선의 현실이 너무나 잘 나타나 있다. 


이제 현실로 들어가 보자.

영화에서의 결말은 통쾌감을 주지만 현실의 앞날은 암울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름, 거리의 집회는 봉쇄되거나 진압되고 승리자의 파시즘이 송두리째 주입당하고 서민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노동법 개악의 핵심은 집단해고로 향하고 있으며, 그 정점은 우리를 향해 오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한국정치의 시작은 당쟁에서 기인하고, 옛날의 권문세가들마냥 지금의 지배권들은 친일파의 후손들이며 그들은 다시 정치판에 서있고 , 경제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잡혀 경제정책을 대기업들이 쥐었다 폈다 하는 형국이다. 

언론은 비판의 시각에서 벗어나 "권력이 하고 싶은 말 만 대변 해주는  기관"으로 바뀌고 있다. 


역사는 현실의 학문이다?


얼마전 BBC TV 에서 "왜 한국 정부는 역사 교과서를 새로 쓰려고 하나? " 라는 질문을 던졌다.

패널로 나온 오웬 밀러교수는 그 대답을 하기전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던졌다고 한다.

"역사라는게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심는 도구여야 합니까? 아니면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교훈을 찾는 시민 양성 도구입니까?"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과거를 정확히 조명하고 다양한 생각의 스펙트럼을 높여 생각의 질을 높이는 인간으로 향하고자 우리는 공부하고 배운다. 

그러하기에 난 나의 짧은 역사적 지식을 가지고 오늘의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 사학을 전공하는 사학자가 아닌 교양으로서의 역사관을 가지고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 보자는것이다. 


이러한  의문을 제시하기 전, 전재가 될 만한 사안을  들여다보자.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식민사학을 극복하고자 한국 역사학계의 피나는 노력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졌다.

우리가 어렸을 때 배운 역사가 바로 그러한 역사의 연장선이었다. 이를테면 식민사학에 의해 망국의 원인으로 지명되어온 당쟁은 일본 제국주의 학자들의 시각에서 기술된 왜곡된 시각이며, 그것은 공리를 향한 붕당정치의 과정으로 재 해석되었고, 정체된 경제사는 자본주의 맹아론으로 대치되고 중국 주자학의 모방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되었던 조선 성리학은 이황과 이이 에 의해 중국 주자학보다 더 심화된 철학적 사유로서 재음미되었다. 마찬가지 차원에서 사대주의(事大主義) 및 소중화(小中華)는 존명(尊明) 의식 및 그에 연루된 사유가 오히려 민족 지존을 나타내는 현상으로 재해석되어 우리는 배워왔다. 

여기서 중화(中華)란 유교 예법으로 환원되며, 그 유교 예법은 다시 주자학으로 환원되며, 주자학의 요체는 다시 주자가례로 환원된다. 따라서 유교는 조선사회에 윤리이자 도덕이며 가치였었다. 그러나 명나라가 청에 의해 패망하자 조선 정치는 사상적 혼란에 빠지게 되고 조선만의 색깔로 중화주의를 실현해 나간다

 

그래서 우리 사고의 스펙트럼이 더 넓어졌는가? 

글로벌 스탠더드가 요하는 창의성과 생각의 다양성이 더욱 확장되었는가? 

그래서 그것이 지금의 정치현실이고 헬조선인가? 


우선 세 가지 의문을 가져본다.


 먼저 훈민정음은 세종이 편찬한 훌륭한 문자 체계이자 세종의 가장 위대한 치적 중 하나이다. 그러나  당시의 국제 정세라는 정치적 시각에서 보자. 아시아의 패권은 명나라에게 있었고 명나라는 수많은 제후국을 거느렸으며 조선은 변방의 이민족 중에 하나에 불과했다. 따라서 조선도 명나라의 지배에 있었다. 세종은  중국과의 언어정책에 맞춰 문자 체계를 만들었으며 말소리에 부합하는 글자의 재정을 통해 중국의 책에 담겨 있는 유학의 깊은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전달할 목적으로 한글 창제를 했다면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와 더불어 이를 통해 백성의 언어를 장악하고 더욱 중앙집권적인 왕권 강화가 궁극적 목적이었다면 바로 그러한 이유이지 않았을까? 

더불어  '농사직설'이라는 책도  들여다보자. 

우선 15세기 위정자들은 조선의 토착적 개별성이 아닌 중화적 보편성을 추구하고자 했으며 그와 더불어 농사직설은 농노들로부터 채록한 현장 농업기술서적은 중국의 선진적인 강남 농업기술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기존의 중국의 풍토가 우리와 달라 한반도의 자연여건에 맞게 변형한 것이라는 논리도  존재한다.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밝히고 이해시키는 것은 학자들의 영역이다.

그러나  풍토 부동론으로 조선의 언어와 식생활이 중국과는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차이가 조선을 조선이게 만들었다는 논리로 민족주의적 시각과 자국의 문화가 높다는 자긍심으로 이어지는 생각의 스펙트럼 보다는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창의적 논리가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일국사를 넘어서 초국가적 한국사에 접근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거시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시각을 질문해 보고 싶다. 관계망(국제정치) 안에서 전개된 역사를, 자국 중심적 시각에서만 재구성해 왔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사라는 지형에 갇혀 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더불어 이를 토대로 한국학이 세계 학계에 공헌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세 번째, 조선의 사상과 정치는 존명 사대를 기반으로 사대주의 중화주의를 표방했었다. 그러나 일부 식민사관에 날조된 역사라 하여 근대 후 한국사학계는 그런 시각에서 많은 탈피를 하고 현재는 매우 다른 시각에서 역사학이 진행되고 있다. 해방 이후 우리는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서구적 근대성이 곧 합리성이라는 시선을 기본으로 삼아 우리의 유교적 전통에서 이와 비슷하고 동화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어 근대 지향적인 것으로 재창출했다. 과거에는 대명 의리론에 따라 존명 사대했었고 오늘날은 미국의 신자유주의의 압박 과 굴복에 직면해 있다.


강대국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 우리는 어떻게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미래를 가져가야 하는가?

그 와중에 역사학은 충분히 현실의 학문으로 미래를 지향하고 있는가? 를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Wanderer above the sea of for, 1818Y




참고자료 

존 B 던컨, 조선왕조의 기원

최이돈, 조선 초기 친족의 신분적 성격

마르티나 도이힐러, 한국 사회의 유교적 변환

문중양, 15세기 풍토부동론과 조선의 고유성

이정철, 조선시대 사림의 기원과 형성과정

최진홍, 율곡 이기론의 정치적 해석

이정철, 선조대 당재의 원인과 전개 양상

김영민, 조선중화주의의 재검토 


관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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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교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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