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스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체력과 실력이 조금 되시는 프랑스인 부녀가 Cheval Alsace를 찾아왔다. 그들과 나, 그리고 Petrick 아저씨 이렇게 네 사람은 점심 도시락을 싸들고 오후까지 이어지는 긴 코스를 가기로 했다. 각자 취향껏 만든 샌드위치와 물을 챙기고, Petrick 아저씨는 말밥을 담은 주머니를 가져와 바케호 등에 얹혀 주셨다. 나는 바케호에게 줄 사과도 몇알 함께 주머니에 넣었다.
중간중간 구보도 여러번 하면서 우리는 꽤 먼 거리를 달렸다. 언제 여기를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나는 풍경 한장면 한장면을 눈에 꼭꼭 담아가려 애썼다. 그날은 날씨가 유독 좋았다. 비오고 흐린 날의 알자스도 아름다웠지만, 화창한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초원과 산세는 비현실적이게 느껴질 정도로 눈부셨다. 일주일동안 그렇게 말만 탔는데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지금 바케호와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아쉽기 그지 없었다.
저녁 메뉴로는 요리사 아저씨가 직접 화덕에 구운 피자와 스테이크에 이어, 손수 만드신 티라미수가 디저트로 나왔다. 살면서 먹어본 최고의 티라미수였다. 나는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나야 하는 탓에 승마장 사람들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눴다. 다음번엔 남자친구와 함께 오겠다는 내 말에 Marco 아저씨는 '그럼 그 남자친구한테 여자를 소개시켜주겠다'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피곤하면 먹으려고 챙겨왔던 홍삼을 아저씨들에게 선물로 드리면서 '건강에 좋은 것'이라고 설명했더니 그걸 어떻게 이해한건지 "쓸데도 없는데(?) 이거 먹어서 뭐하냐"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입이 귀에 걸리셨다. 프랑스 아저씨들의 농담에 아쉬운 이별의 장은 눈물이 아닌 웃음으로 가득찼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건물로 돌아가던 길, 방목장에서 역시나 또 친구들과 신나게 건초를 먹고 있는 바케호가 보였다. 한번 더 작별인사를 하고 싶어서 열심히 이름을 불러봤지만 바케호는 통 이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첫 외승 때, 그러니까 파리의 베르사이유 공원에서 부티를 탔을 때는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속도감에 흥분했었던 것 같다. 그 기분은 마치 운전을 처음 배우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느낀 쾌감과 비슷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오토바이 같은 것에 빠지나보다 싶었다.
물론 승마에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것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말이라는, 살아 있는 동물과 호흡을 맞추고 소통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걸을수도, 달릴수도 있다는 것. 엑셀을 밟으면 밟는대로 나가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서는 기계장치를 대할 때는 느낄 수 없는 아날로그적인 밀당의 매력이 있다. 그 밀당에 성공해서 말과 한몸이 된듯이 달려나가는 순간에는 단순히 자동차 엑셀을 밟아서 스피드를 올리는 것과 차원이 다른 희열이 느껴진다. 그 하이라이트가 바로 구보이고, 외승을 가는 이유이기도 했다. 동호회 사람들도 외승을 갈 때면 구보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면 얼마나 할 것이냐가 늘 화제거리였다.
그런데 Cheval Alsace에 와보니 저마다 실력이 가지각색인 탓에 생각만큼 구보를 할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이 자주 들었던 게 사실이다. 구보는 커녕 속보도 몇번 할 기회가 없었다. 첫날은 속보를 조금 하자마자 Maud의 딸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뒤로 이들이 함께할 때면 오로지 평보, 평보, 평보뿐이었다. 이렇게 두 시간 내내 말타고 걷기만 하는데 이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외승을 가는 걸까 싶었다.
평보만 계속 하다보니 긴장도 풀어지고(그러다 낙마하긴 했지만), 뒤에 쳐지는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바케호가 신나게 풀을 뜯어먹는 동안 나는 주변 풍경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곳의 자연은 참 아름다웠다. 군더더기 없이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능력을 한참 넘어서는 경이로움이 알자스 언덕에 내려앉아 있었다. 바케호와 함께 걸으면서 나는 이 자연 속에 구석구석 깊은 곳까지 온전히 녹아들어갔다.
만약에 여길 걸어서 왔다면 어땠을까. 아마 무지하게 힘들고 지루했을 것이다. 자동차나 자전거는 다닐 수 있는 범위에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넓히려면 필히 자연에 인공적인 위해를 가해야 한다. 산을 깎아서 평평한 도로를 만들어야 하고, 포장도 해야 하며, 주차장 같은 시설도 필요해진다. 하지만 말을 타면 그런 식의 알량한 호작질이 필요 없다. 말에게 필요한건 원래의 부드러운 흙길 뿐이다. 거기에 신선한 풀이 곁들여진다면 더 바랄게 없다.
Cheval Alsace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나는 구보가 외승의 전부는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람이 조금 빠르게 걷는 것과 비슷한 속도를 가진 말의 걸음걸이 덕분에 누릴 수 있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이곳의 말과 환경에 조금 익숙해지고 나서는 평보나 속보만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름대로 구보를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됐다. 그건 한 평생 말을 타셨다는 독일인 아주머니의 노하우였다. 이제 겨우 대여섯살 정도 돼보이는 아주머니의 아들이 구보하고 싶다고 칭얼거리자, 아주머니는 Petrick 아저씨와 잠깐의 협상을 하더니 일행과 거리를 두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네 가족들만 따로 가려는 건가 했는데 잠시후 괴성(?)을 지르며 아주머니의 아들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게 보였다. 구보를 할만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뒤에 멈춰서 있었던 것이었다. 아주머니의 아들은 만족스럽다는 듯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Petrick 아저씨는 나도 구보를 하고 싶어한다는걸 눈치채고 이 독일식의 '초보자들 사이에서 구보하기'를 해보라고 이야기하셨다. 나는 달려나가려는 바케호를 최대한 멈춰 세우고 걸음을 늦추어서 앞사람들과의 거리를 넓혀보았다. 앞의 말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바케호가 안절부절 못하는 게 느껴졌다. 고삐 잡은 힘을 살짝 푸는 순간, 바케호는 마치 대포알처럼 튀어 나갔다. 한국에서는 아마 이런 식으로 하다간 위험하다고 욕을 한 바가지 들어야할지도 모르지만 프랑스는 그런거 없었다. 여기는 장애물 레슨도 통나무 놓고 하는 곳이었다.(*일반적으로 승마경기에서 볼 수 있는, 건드리면 떨어지는 형태의 장애물보다 통나무처럼 고정돼있는 장애물이 훨씬 위험하다고 한다.)
이제 'independently하게 말을 탈줄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고 구보에 대한 두려움과 집착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 내 앞에는 정말 무궁무진한 외승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내년에는 이번에 거절당한 라벤다밭 코스에도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이면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보러 갈수도 있고, 그토록 가고 싶었던 남미의 마추픽추 유적지도 외승코스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너무 더워서 외승이 힘든 한여름이면 말과 함께 수영을 하는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한번 가봤던 곳이나 걸어서 가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은 관광지도 말을 타고서라면 거칠 것이 없었다.
이곳 Cheval Alsace에 다시 오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일주일동안 다녔던 코스 중에는 스키장처럼 보이는 장소도 있었다. 시즌이 아닐 때는 말들의 방목장으로 쓰이는 모양이었지만 틀림없는 스키장이었다. 그만큼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인 것 같아, 혹시나하는 마음에 겨울에도 말을 탈 수 있냐고 물었더니 Petrick 아저씨가 이렇게 대답하셨다.
"말들은 눈밭에서 더 신나게 달려요."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7시에 예약한 택시가 Cheval Alsace 본 건물 앞에 도착해 있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올 때처럼 픽업 서비스를 이용할 수가 없어서 부른 택시였다. 택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나를 스트라스부르의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데려갔다. 창밖의 풍경은 빠른 속도로 변했다. 바케호와 함께 느긋하게 즐겼던 알자스의 숲은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 희미하게 스쳐지나가 버렸고, 어느새 나는 도시의 한복판에 도착해있었다.
승마를 시작한지 이제 10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요즘 나는 마이크 잡을 일만 있으면 승마 이야기를 한다. 귀족스포츠라거나 일부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닌, 세상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인간의 하찮음을 깨닫고 다른 생명체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로서 승마의 매력과 가치를 한 사람이라도 더 알기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의미로(?) 오늘 저녁에는 제주도 외승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