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dawn of morning there lay the poor little one, with pale cheeks and smiling mouth, leaning against the wall; she had been frozen to death on the last evening of the year; and the New-year's sun rose and shone upon a little corpse! The child still sat, in the stiffness of death, holding the matches in her hand, one bundle of which was burnt.
"She tried to warm herself, " said some. No one imagined what beautiful things she had seen, nor into what glory she had entered with her grandmother, on New-year's day.
아침이 되자 창백한 뺨에 미소를 띤 소녀가 벽에 기대어 있었다. 그녀는 한 해가 끝나는 마지막 밤에 얼어 죽었다. 그리고 새해의 태양이 떠오르며 작은 소녀를 비추었는데, 그 아이는 여전히 죽은 듯이 뻣뻣하게 앉아 있었고, 불에 타버린 성냥을 한 움큼 손에 들고 있었다.
"아이가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노력했나 봐요."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사람들은 새해 첫새벽에소녀가 어떤 아름다운 것을 보았는지, 할머니와 함께 얼마나환한 빛에서즐겼는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새해의 아침이 밝았다. 새벽에 그친 눈으로 인해 도시는 온통 순백의 옷을 입고, 하늘은 금방이라도 코발트색 물을 떨어뜨릴 듯이 선명했다. 코펜하겐의 밤거리를 밝히던 노란 가스 등불들이 꺼지고,밤새 지붕 위에 쌓인 눈들이 아침 햇살을 받기 시작하자 여기저기 새파란 하늘을 향해 아지랑이들이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붉은 벽돌 집들이 마주한 거리에 마차들이 하나 둘 오가기 시작하고, 마차 바퀴들은 아무도 밟지 않았던 새하얀 순백의 도로에 금세 긴 줄들을 주욱 그어댔다. 이른 아침부터 종종걸음으로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소녀를 발견하고 주변에 모여들어 웅성거렸다.
"어젯밤에 성냥을 팔고 있던 아이인데 얼어 죽은 걸까요?"
"겉으로 보기엔 죽은 것처럼 보이는데 너무 예쁜 미소를 짓고 있네요. 혹시 잠든 것은 아닐까요?"
"에그, 저어린것이 얼마나 추웠을까요......"
누군가 측은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아무도 소녀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새해 첫날부터 누군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톱해트를 쓰고 금으로 장식된 흑단 지팡이를 든 젊은사내가 길을 걷다가 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오, 이런! 잠시만요. 비켜주시겠습니까? 저는 의사입니다."
사람들이 길을 열어 주자, 의사는 황급히 소녀에게 다가가서 목에 손가락을 대어 보았다.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인 그는 코밑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재빨리 가방을 열고 청진기를 꺼내 소녀의 가슴에 올렸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 소녀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누구 저 좀 도와주세요. 길 건너편에제 병원이 있으니 함께 옮기도록 도와주세요."
구경꾼들 중에 덩치가 있어 보이는 한 사내가 나서 자신의 등을 내밀었다.
"제가 업고 가겠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도와 덩치의 사내는 소녀를 업고길을 건너가는 의사의 뒤를 따랐다.의사가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깥의 차디 찬 기온과는 달리, 따뜻한 벽난로의 열기가 후끈 느껴졌다.
"자, 여기 눕혀 주세요. 조심조심하시고요, 이봐요 간호사 빨리 소녀의 옷을 벗기고 따뜻한 담요로 감싸주세요.따뜻한 물주머니도 준비해서 겨드랑이 쪽에 넣어주시고요. 자자 어서 서둘러요"
미처가운도 갈아입지 못한의사가 셔츠의 소매를 걷어 부치고 다급히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금세 의사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는데 그때 간호사가 말했다.
"선생님! 보세요. 소녀가 손가락을 움직여요."
잠시 후, 소녀가 눈을 뜨고 의사와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여기는 어디인가요? 할머니는 어디 가셨어요? 제가 왜 여기에 있죠? 왜 이렇게 추운 거죠?"
"얘야! 여기는 내가 진료하는 병원이란다. 나는닥터 닐스 뤼베르핀센이야. 환자들은 닥터 핀센이라고 부르지. 당장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얼어있는 네 몸부터 우선 녹이자꾸나"
중천에 뜬 해가 지붕 위의 눈을 녹이고, 맺혀 있던 고드름들이 녹아 흐르는 오후가 되자 소녀도 따뜻한 수프를 받아먹을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되었다. 소녀는 이내 침대에 혼자 몸을 일으켜 앉을 정도로 기력이 돌아왔다. 옆 침대에 누워 있던 다른 환자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소녀는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빠른 회복을 했다.퇴근을 준비하던 핀센 박사가 소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많이 회복되었구나. 정말 다행이다. 하느님께서 널 살리려고 나를 그곳으로 보내셨다 보다. 내가 거기를 지나가지 않았으면 큰일이 날 뻔했다. 그래 갈 곳은 있니?"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마리라고 합니다. 성냥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돈이 없고, 제가 이틀씩이나 공장에 가지 않고,성냥을 하나도 팔지 못했다는 것을 알면 제 아버지가 저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저를 때리시거든요. 지금이라도 저는 성냥공장에 가야 한답니다. "
"그래, 네 사정은 잘 알겠다. 하지만 오늘도 여기서 쉬도록 해라. 너의 몸상태가 너무 안 좋구나. 영양 결핍도 심각하고, 성냥공장에서 일하는 다른 아이들처럼 성냥의 인가루에 중독현상도 있어 보인단다. 치료비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도록 하렴."
핀센 박사가 나가고 소녀는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깜깜한 어둠 속에 환한 불빛이 보여 그곳을 향해 갔더니 새벽에 만났던 할머니가 벽난로 앞에 앉아 웃고 계셨다.
"할머니!"
"우리 예쁜 손녀가 다시 미소를 찾았네. 참 다행이다. 네가 아파 보여서 의사를 보냈었는데, 왜 또 할미를 찾아왔을꼬?"
"할머니와 함께 가고 싶어요. 저를 데려가 주시면 안 되나요?"
"얘야! 이리 와서 내 무릎에 앉거라. 나도 너를 데리고 함께 가고 싶지만 너는 좀 더 할 일이 남았단다. 다음에는 꼭 할미가 마중을 올터이니 그때까지 건강하게 지내려무나"
소녀가 할머니의 품 속으로 더 파고들었지만, 이내 벽난로의 불이 꺼지고 할머니는 사라졌다.
이튿날 아침,커튼 사이를 파고든 햇살이 소녀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잠에서 깬 소녀의 몸은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따스한 햇살에 축축해진 몸을 말리며 돌아가신 할머니를 추억하던 평화로움도 잠시, 병원 복도에서 누군가 큰소리를 지르는 것이 들렸다.
"마리! 마리! 여기 있는 거 알고 왔다. 이 조그만 게 어디 숨은 거야?"
후줄근한 옷차림의 사내가 아침부터 술냄새를 풍기며 눈을 부라리자, 간호사들도 쉬이 나서서 제지하지를 못했다.그때 막 출입문을 열고 출근을 하던 핀센 박사가 행패를 부리고 있던 사내를 발견했다.
"이봐요. 당신 누구야? 뭐 하는 사람인데 남의 병원에서 이런 소란을 피우는 것이오?"
"오호라! 행색을 보니 당신이 어제 길에 쓰러져 있던 내 딸을 데려갔다던그 의사양반이로구만. 그래 내 딸을 어디광산에라도 팔아넘길 생각인가 본데, 어림없는 짓 말고 내놓으셔. 아니면 당장 납치범으로 경찰을 부를 테고."
성냥팔이 소녀 마리는 복도에서 들리는 아버지의 고함소리를 듣자 얼른 담요를 뒤집어썼다.성냥을 팔지 못하고 여기 있었다는 것을 알면 당장이라도 주먹이 날아올 것 같은 목소리였다.
핀센 박사는 조용히 원장실로 들어서며 남자를 향해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막 원장실 청소를 마치고 나오던 청소부가 사내를 발견하곤 마치 벌레를 발견한 듯 저만치 물러났다.
"당신의 딸이 여기 있는 것은 맞소. 어제 새벽녘에 얼어 죽을뻔한 것을 내가 발견해 살려냈소. 어디 팔아넘길 생각도 없고, 납치할 생각도 아니오. 하지만, 당장 아이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지금 당장 퇴원을 시킬 수는 없소. "
"이보슈, 의사양반! 당장 그 아이를 내어 주시오. 그 아이가 성냥공장에 출근을 하고, 품삯으로 받아 오는 성냥을 팔아야만 우리 가족들이 굶지 않고 살 수 있단 말이오."
"이보시오. 내가 어제 퇴근길에 당신 집 근처에 가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소. 알고 보니 당신은 아이의 친아버지도 아니더구먼. 할머니가 죽기 전에 아이를 부탁했는데, 오히려 남은 재산을 가로채고 아이를 노예처럼 부리고 있는 게 아니오? 좋소. 당신이 지금 저 아이를 데려가려면 어제 치료비와 입원비를 합쳐 당장 돈을 가져오시오. 꽤 비싼 약과 주사를 써서 겨우 아이를 살렸으니, 어림 셈을 해봐도 병원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당장 당신이 그 돈을 내고 아이를 데려가던지 아니면, 저 아이는 여기 남아 허드레 일을 하면서 그 돈을 모두 갚아야 하오. 어떻게 하시겠소?아까 당신이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으니 그렇게 합시다. 경찰을 불러서 당신이 뺏어 간 아이의 재산도 돌려받도록 하고, 당신에게 입원비를 받아내도록 할까요? 아니면,치료를 마치고 아이가 여기에 남아서 일을 하며 병원비를 갚도록 할까요?"
병원비와 할머니가 남긴 유산 얘기를 하자남자는 술이 확 깨는 듯한 표정이다.
"아... 아닙니다. 의사선생... 제가 주사를 맞은 것도 아니고, 아이가 치료를 받았으니 아이가 갚아야지요. 선생님 말씀처럼 저는 그 애의 친아버지도 아니니 제가 병원비를 물어야 할 이유는 없지요. 일을 시키시던 광산에 파시던 선생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나는 당장 나가겠습니다. 그렇긴 해도 선생님! 작은 부탁이 있습니다. 마리가 젖먹이 때부터 7년 동안이나 먹이고 재우며,저도 꽤나 많은 돈이 들었습니다. 할머니가 애를 부탁하며 남긴 얼마 안 되는 재산도 벌써 다 마리를 먹이고 입히는데 다 써버렸습죠.마리를 잡아두고 청소를 시키시든 말든 선생님께서 알아서 하시고, 배고픈 저희 가족을 위해 조금만 아량을 베풀어 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돈을 주면 술집으로 갈게 뻔했지만 썩은 구취를 풍기며 굽신거리는 남자를 빨리 내보내야 했기에,핀센 박사는 서둘러 지갑에서 몇 장의 지폐를 꺼내 던져주었다.
"이거 가져가시고 다시는 저 아이 앞에 나타나지 마시오!"
기세 등등 하던 계부의 모습은, 대여섯 장의 지폐를 보자 굽신거리는 알코올중독자의 본모습으로 바뀌어버렸다.
소녀가 병원에 들어오고 7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
소녀는 몰라보게 밝고 총명한 소녀로 성장했다. 소녀는 그동안 병원의 허드레 일을 열심히 거들며 핀센 박사의 권유에 따라 열심히 간호사가 될꿈을 키우면서 병원 일을 보조했다.
소녀가 총명하고 성실하다는 것을 알아본 핀센 박사는 이웃독일의 간호사 교육기관인 프로테스탄트 봉사원으로 보내주었다.
"마리! 열심히 공부하렴. 4년 뒤 백의의 천사가 되어 만나자꾸나."
소녀는 핀센 박사를 돕는 간호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핀센 박사가 보태주는 돈으로는외국에서 넉넉지 않은유학생활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아르바이트로보모일과 파출부일을 해가며 결국,간호사 교육 과정을 완전히 끝마치고코펜하겐으로 다시 돌아왔다.
"선생님! 저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이 증명서를 보세요. 저도 이제 간호사가 되었답니다."
"오! 마리. 어서 오렴. 이젠 어엿한 간호사가 되었구나.당장 결혼을 해도 될 만큼 몰라보게 성장했구나.넉넉히 돕지 못했는데 그동안 정말 수고했다."
"무슨 수고를요. 이게 다 선생님 덕분이죠. 이제 선생님을 도와 열심히 환자들을 돌볼 테니 힘든 일은 모두 제게 맡겨주세요. 당장부터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제가 도울게요."
"하하, 그래 환자들도 나 같은 아저씨를 매일 보는 것 보다야 예쁜 간호사님의 손길에 훨씬 더 힘이 날게다. 그래도 오늘은 잠시 쉬며 정리를 하도록 하렴."
소녀가 간호사로 온 뒤부터 병원이 훨씬 밝아지고, 생기가 돌았다. 소녀의 등장은 마치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한 개비 성냥불을 밝히는 것 같았다. 여전히 소녀는 성냥팔이 소녀를 자처했다.소녀는 이제 더 이상 성냥을 팔 필요는 없었지만, 입원한 환자들의 마음속에 치유의 불빛을 밝히는 것을 마다 하지 않았던것이다.
소녀의 정성스러운 간호에 환자들은 예정보다 일찍 퇴원을 하고, 그들은 또 다른 환자를 핀센 박사의 병원에 소개해주었다. 병원의 수익성이 좋아지는 게 당연했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 대신 치유의 불빛을 팔아 그 옛날 신세 진 병원비를 갚으려는 것 같았다.
"마리! 마리!"
원장실에서 환자들의 차트를 살펴보던 핀센 박사가 다급한 목소리로소녀를 불렀다. 영문을 모른 채 나타난 소녀에게 박사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물었다.
"이 환자, 이 환자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한 거니? 분명 이 환자들은 어제까지만 해도 결핵이 심해서 어려워 보였는데, 오늘 X선 사진을 보니 놀랍도록 호전이 되었구나?혹시 네가 환자들에게 성냥을 켜며 그들과얘기하던 것과 연관이 있을까?"
"그걸 보셨었군요. 저는 선생님이 저를 구해 주시던 날 성냥을 켤 때마다 따뜻한 난로와 성대하게 차려진 식사, 그리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따뜻한 품을 보았던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저는 매 번 힘들어하는 환자들에게 성냥을 켜주며그때 얘기를 들려주었어요. 어둠 속에 자신을 두지 말고, 빛 속에서 좋은 일을 생각하면어떤 일이든 희망이 생긴다는 얘기를 해주었어요. 혹시라도 제가 괜한 일을 해서 선생님 일을 망친 건가요?"
"하하! 아니다. 마리. 넌 엄청난 일을 해냈다. 넌 환자들에게 단순한 성냥 불빛이 아니라 그야말로 치유의 불빛을 보여 준 것이란다. 성냥팔이 소녀가 치유의 빛을 주는 천사가 되었구나. 가만,'치유의 빛'이라...... 이런 내가 놓친 게 있었을 수도 있겠네."
핀센 박사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피부병 환자들이 입원한 병실로 달려갔다.
그는 독일에서 이제 막 개발된 자외선(UV) 치료를 연구하고 있었다. 소녀에게 성냥 불빛 치료에 관한 얘기를 듣다가, 불현듯 태양광에서 나오는 강한 자외선을 상처에 쪼이면 염증의 원인인 병원균을 죽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그 결과는놀랍게도 핀센 박사의 예상과 적중했다. 자외선을 1시간 정도 상처에 쪼이자 피부가 이전보다 더욱 붉어지긴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피부 염증이 사라지면서 예전의 건강했던 피부로 돌아오는 것을 확인했다.
"마리! 내가 4년이나 매달려도 해결하지 못했던 것을 네가 단번에 해결했구나. 맙소사, 넌 내게 새로운 세상을 밝혀 준 불빛이야, 어쩜 내가 널 구한 게 아니라 네가 날 구하고, 세상을 구한 거다.오! 하느님. 마리를 제게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때 접수를 하고 있던 간호사가 핀센 박사를 찾아왔다.
"선생님! 응급환자입니다. 경찰이 데려왔는데 마차에 치었다고 합니다."
핀센 박사와 소녀가 서둘러 응급실로 뛰어갔더니, 머리에 피를 흘리며 진흙범벅이 된 노인이 누워 있었다. 남루한 옷차림과 찌든 술 냄새, 헝클어진 장발머리가 그의 생활수준을 짐작케 했다.
노인은 이미 죽은 듯 축 늘어져 숨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다만 미세한 그르렁거림과 입술 주위로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피거품 만이 그가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핀센박사가 치료 준비를 하는 사이,마리는 노인의 얼굴과 머리에 묻은 피와 진흙들을 닦아 내기 시작했다.그러다가 마리는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흠칫 놀라 손을 멈추었다. 깊게 주름이 파이고 이빨들이 빠져 얼굴 윤곽이 약간 바뀌긴 했지만 어린 시절 자기를 학대하던 의붓아버지였다.
"박사님! 이 사람은 제 아버지......"
당황하는 마리를 본 핀센 박사도, 처음 마리를 구했던 날 병원에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던 남자를 떠올렸다.
"마리! 지금 나를 돕는 게 힘들면 다른 간호사를 부르마. 하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촉박하다. 1분 1초가 급한 상황이야. 어떻게 나를 도울 수 있겠니"
"선생님! 제가 하겠습니다."
핀센 박사가 피가 흐르는 가슴에 지혈을 하고 상처를 꿰매고 여기저기 살펴보았지만, 노인은 좀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경찰들이 노인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던 것이다. 더구나 영양결핍인 듯 피골이 상접한 노인이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피를 흘린 것 같다.
"마리! 너한테 이런 말 하는 게 미안하지만 살아나긴 어려울 것 같다. 약간의 모르핀을 주사해 보마. 그래도 한 때는 너의 가족이었으니 작별인사라도 하도록 해라."
소녀는 학대받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이미 병약한 노인이 되어버린 사내에게 복수나 원망 같은 건 무의미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학대받던 어린 시절이 사무치며 새삼 소름이 돋아 났다. 특별히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그저 지금필요한 건 학대받던 스스로의 아픔과 작별을 고하는 시간뿐이다.
핀센 박사가 모르핀을 주사하자 노인이 눈을 뜨고 소녀를 바라보았다. 입을 우물거리며 뭔가 말을 하려는 듯했지만,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피가래가 끓는 거품만 더 커질 뿐이었다.
소녀는 노인의 눈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 말없이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 들었다. 성냥을 든 소녀의 가녀린 손이, 오래전 춥고 배고팠던 그날 밤처럼 벽을 긁자 시큼한 화약 냄새와 함께 성냥에 불꽃이 일었다. 성냥 끝에 한 방울 묻어 있는 '적린'은 순식간에 까맣게 변했고 가느다란 나무를 태우기 시작했다.
소녀의 손가락을 태울 듯 위태롭게 일렁이는 불꽃은 마치 사그라져가는 노인의 남은 생명의 시간 같았다. 노인에게는 따뜻한 난로나 잘 차려진 음식, 그리고 할머니가 나타나지 않았다. 기적은 합당한 자에게만 일어나는 행운이다. 남자가 바란 본 성냥불빛에는 단지 인생을 허비한 한 남자의 몰락이 비칠 뿐이었다. 잠시 후 불꽃이 꺼짐과 동시에 노인의 동공이 한껏 커졌다. 그렇게 성냥의 불꽃이 사그라지면서 한 남자의 인생도 끝이 났다.
"마리! 괜찮은 거니? 지금 견딜 수 있겠니?"
"네. 선생님! 저 아무렇지도 않아요. 제게는 선생님이 진짜 아버지신걸요. 다만 다른 간호사를 여기로 보낼 테니경찰에 연락하고시신을 수습해 주세요. 차마 그것 까지는 제 손으로 하기에는 힘이 드네요. 저는 병실에 가서 다른 환자들을 좀 살펴보고 있을게요."
소녀가 다른입원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내 여기저기 환자들이 몸을 일으키고 아는 체를 하며 반긴다.
"오! 치유의 빛께서 오셨네."
"어서 와요. 치유의 요정께서 오늘은 어떤 즐거운 얘기를 해주실 건가요?"
한 명, 한 명 환자들과 눈인사를 하던 소녀는 병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속에서 방긋 웃고 서 계신 할머니를 보았다.소녀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 들고 말했다.
오늘은 성냥팔이 소녀와 할머니의 얘기를 들려드릴게요.
내 소년 시절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던 성냥팔이 소녀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가가 촉촉해진다.
어떻게든 그 아이를 살리고 싶었다.
어른들은 너무 잔인했다.
그깟 성냥 하나를 안 팔아 주다니......
드디어 내 손끝으로 소녀를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어른이 된 지금, 나는누구에게도잔인하지 않은 어른이면 좋겠다.
*작가 註: 닐스 뤼베르 핀센 박사는 "광선치료 시술"의 효능을 발견한 탁월함을 인정받아 1903년 노벨 생리 화학상을 수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