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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Sep 28. 2018

스쳐간 인연들에게 묻고 싶다.

얼마 전 공들여 준비했던 PT가 끝났다.


정말 오랜만에 해 보는 PT라 수없이 반복해서 연습했다. 발표 스크립트를 써서 불편한 용어를 거둬내고, 동영상을 찍어 불필요한 제스처를 없애고, 이해를 방해하는 습관적인 의성어를 찾아내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연습했다.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막상 단상에 올라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니 심장이 몸에서 떨어졌다 튕겨 오른 듯 뛰기 시작했다. 잠시, 심호흡을 가다듬고 어린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을 하자 마음이 안정됐다. 


약속된 시간에 맞춰 발표가 끝나고 날카로운 질의응답의 시간이 이어졌다. 예상보다 많은 질문을 받아 놀라긴 했지만 족집게 과외 덕분에 준비된 대답을 할 수 있었다.

 

큰일을 치르고 나면 잠시 허전한 기분에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듯 내게 PT가 그런 종류의 큰일이었나 보다.


비싸고 고급스러운 곰탕을 얻어먹고 배는 부른데 허전한 기분PT 끝난 여운을 함께 나누지 못한 체 다들 바쁘게 헤어진 후 혼자 남겨진 기분, 그런 묘한 허탈감을 느끼며 돌아왔다. 결국 맛은 있었지만 PT의 여운을 달래지 못한 체 먹은 곰탕이 소화되지 않아 약의 도움을 받고서야 편해졌다. 


다음날,

탄수화물 다이어트를 하는 중임에도 빵을 한가득 먹고 저녁을 많이 먹지 않는데 식사로 불고기까지 먹고 나서야 허전함이 사라졌다. 



PT가 끝나고 느낀 허전함.


그 감정은 소중하다 생각했던 사람과 이런저런 이유로 멀어져 보통의 '아는 사람'이 되고 말았을 때 느껴지는 감정과 비슷했다. 


빵을 먹으며 허전함을 달래고 있을 때 아주 친하고 소중했던 옛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곧 얼굴을 보자는 형식적인 대화를 주고받다 전화를 끊었다. 


나이가 들어도 인간관계는 늘 어렵고 복잡하다. 내 마음이 가장 중요함을 알면서도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며 비난하고, 상대가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한다며 서운함을 표출한다. 그러다 결국 소중했던 인연이 '아는 사람'으로 밀려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PT를 준비하듯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참아내고서로의 단점을 지적하지 않고, 상대가 불편하다 느끼는 말을 조절하며 관계를 유지해왔을 텐데 그것이 무너진 이유는 아주 작은 일로부터 시작된 것일 테지? 


그 친구의 전화를 받고, 지나간 소중했던 인연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스쳐간 이들에게 소리쳐 묻고 싶다.


오겡끼데스까??
- 영화 '러브레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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