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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Sep 29. 2018

땅에서 평온함을 느끼는 사람들.

결국,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인가?

동네 친구가 귀농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도시로 전학 간 그 친구는 뽀얀 얼굴로 제법 공부를 잘했던 아이로 기억한다. 공무원 아버지 덕분에 도시로 유학을 갈 수 있었고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자주 시골집에 왔을 테고 친구 집은 우리 집 담벼락을 끼고 걸어가야 했으니 어쩌면 한 번쯤, 아니 몇 번쯤 마주칠 법도 한데 긴긴 세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친구의 소식은 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 부모님을 통해, 다시 엄마를 통해 들었다.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지만 농사와 전혀 매칭이 안 되는 그 친구가 귀농을 했다니 의외였다. 


전학 갈 때는 전형적인 도시 남자로 자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도 어쩔 수 없이 땅 냄새를 맡고 자란 시골아이였나 보다.  


나 역시 언젠가 땅을 밟으며 인생을 마무리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하고 싶다


직장생활을 하던 도시 사람이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리고 당연히 땅을 밟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20년 후, 땅을 밟으며 살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땅을 원한다. 


몇 년 전 텃밭을 가꿨다. 우리 아파트와 가까운 곳에 대형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대기업에서 구매한 땅이 몇 년째 공터로 놀고 있어 그곳이 무료 주말농장이 되어있었다. 그 한편에 우리 밭을 일궜었다. 상추, 시금치, 고추 등을 심고 동네 할머니들과 친해져 오이, 호박, 깻잎, 고구마 등을 얻어먹기도 했다. 

- 고추밭 -

이사 나오면서 동네 할머니께 내 땅(?)을 넘기며 못내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 땅 찰지게 가꿔놨는데 두고 오며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모른다. 


이전 동네는 주말 농장도 멀고, 마땅한 곳이 없어 베란다에서 고추와 상추를 가꾸다 개미가 집을 짓는 통에 모두 버리고 나서는 두 번 다시 집에서 화분 농사를 짓지 않는다. 


이 동네로 이사오니 아주 가까운 곳에 주말 농장이 있다. 엄청 크게 조성되어있어 한 꼭지 임대를 해 볼까 하고 갔다. 연간 얼마의 돈을 내면 적당한 땅을 가질 수 있어 그곳으로 마음을 정하고 내년부터 가꿔보리라 생각했는데 얼마 전 우연히 놀고 있는 땅을 발견했다. 우리도 지분을 가지고 있는 땅. (물론 따지자면 지분은 한 뼘 정도 이리라.)


시골에서 거름, 비료, 씨앗을 얻어왔다. 엄마 창고에 있는 호미도 하나 들고 와 연휴 마지막 날, 텃밭을 가꿨다.  

- 우리 텃밭 -

작은 텃밭이 주는 포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풀이 무성한 땅을 일궈 씨앗을 심고 그곳에서 채소가 자라날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이 안될 만큼 뿌듯하다. 내년, 주말 농장까지 하면 꽤 큰(?) 땅을 가꿀 수 있을 테니 앞으로 채소는 안 사도 되겠지?


나이가 들수록 자꾸만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 시절이 얼마나 행복했고 따스했고 아름다웠는지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회귀하나 보다.

바쁘고 젊었던 시절에는 몰랐던 어린 시절의 환경이 나이가 들면서 그리워지고 그리워지는 만큼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친구가 귀농을 결심했듯, 나 역시 언젠가 '반드시' 그곳으로 돌아가기라 맘먹지 않았던가. 


평온함, 편안함, 친근함이 느껴지는 곳, 그곳은 아스팔트나 시멘트길이 아닌 '땅'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자꾸만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리라. 


조금씩, 텃밭을 가꾸며 땅과 친해지다 언젠가 그곳으로 돌아가겠지. 나는 그런 기억을 가진 사람이니까. 그리고 그곳에서 평온함을 느끼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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