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간의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금이대로 쩡 Oct 04. 2018

저기요, 제 시간이거든요???

상대는 급하게 미팅을 요청했지만 당장은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최대한 빠른 날짜에 미팅 약속을 잡고 메모를 해뒀다. 


일주일 후 한 시간 반 거리임에도 급하다는 요청에 미룬 것이 미안해서 오전 시간으로 미팅을 잡았다. '00역 근처'라는 것만 약속했을 뿐 정확한 미팅 장소를 정하지 않아 출발 전 문자를 남겼다. 

안녕하세요. 김희정입니다. 오늘 미팅 잊지 않으셨죠? 지금 출발하면 10시 전 도착 예정입니다. 미팅 장소 문자로 남겨주세요.

답은 없었지만 출근 중이거나 나중에 보내오겠지 싶어 출발했다. 출근시간이라 사람이 많아 꽤 복잡한 지하철을 두 번 환승해서 가고 있었다. 도착 10분 전임에도 상대는 여전히 답이 없다. 설마???


도착 후 불안한 마음을 안고 전화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

호흡을 가다듬고 시간을 벌어보자 싶어 화장실도 다녀오고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도 사 마셨다. 그리고 10분 후 다시 전화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
저... 저기요???


이른 아침 준비하고 멀리까지 온 보람도 없이 허탈한 기분. 급하다 다그쳤던 미팅을 잊은 것인가? 친구를 통해 소개받은 사람인데 이렇게 무례할 수 있는 것인가? 소개한 친구에게 전화해서 이건 무슨 경우인지 알 수 없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친구는 너무 미안하다며 커피 쿠폰을 보내왔다. 


허허벌판, 이른 아침, 그날따라 날씨는 왜 그리도 글루미 한 것인가? 황당해서 웃음만 나왔다. 역시 출발부터 불안했던 마음은 틀리지 않았다. 


미팅 후 근처에서 점심 약속을 잡아둔 터라 꼼짝없이 한 시간 반을 또다시 기다려야 했다. 


카페를 찾아 커피를 주문하고 혼자 덩그러니 앉고 보니 상황이 더 웃겼다. 그렇게 급하다며 빨리 만나자 이야기하던 사람이 어떻게 약속을 잊을 수 있을까? 휴대폰을 집에 두고 출근했나? 어젯밤 술에 취해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나? 혼자 다양한 추측을 해봤지만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다행히 내게는 책이 있고, 패드가 있고, 키보드마저 있었다. 


15분~20분이 지났을까? 전화가 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휴대폰을 두고 회의를 들어가서... 어디세요?

'만나줘? 말아?' 순간 고민하다 친구 입장을 생각해서 만나기로 했다. 설마 지금 어디로 오라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싶어 카페를 알려줬다. 카페로 오겠다고 했다. 


5분 후 부랴부랴 카페를 들어와 전화하는 사람을 발견, 엉덩이를 약 10도 정도만 들고 인사를 했다. 명함도 건네지 않고, 커피 주문도 하지 않고, 사과도 얼렁뚱땅 하더니 바로 노트를 꺼내 업무 이야기를 시작했다. 


"급하시네요. 숨좀 돌리고 뭐라도 주문하고 이야기하시죠."

"아. 아닙니다. 이야기 나누고 마시죠 뭐."

(나는 카페에서 주문 없이 자리 차지하고 있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카페 사장은 아니지만 우리에겐 '상도'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는 본격적으로 내게 부탁할 업무가 무엇인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애초에 그 사람의 업무를 봐줄 생각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시간관리가 되지 않는 사람, 상대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 심지어 사과도 얼렁뚱땅하고 넘어가려는 사람과는 일 할 생각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야기를 듣고 정중히 거절했다. 프리랜서인 나보다는 정직원을 뽑는 게 답인 것 같다는 진단을 하고 마무리하려 했다. '이제 그만 가줄래?'라는 신호를 못 알아들은 것인가? 그는 두 번이나 똑같은 설명을 하며 업무 맡아줄 분이 필요하다는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나는 역시 '정직원 필요' 카드를 내 보이며 거절했다. 실제 그 업무는 정직원이 해야만 원활하게 처리될 일이었다.  


그는 마음을 접었는지, "업무이야기는 이쯤 하고 사담이지만..."이라며 자기 회사 상무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아! 이 사람 어쩌면 좋은가? 기다려주고(그 사람을 위해 기다린 것은 아니었지만), 만나줬더니 나의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려 했다. 마음은 이렇게 말했다.

저기요. 제 시간이거든요???


상무 험담이 한참 이어지는 바람에 들어주며 맞장구를 쳐줘야 했다. 친구 지인이 이래서 무서운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겨우 숨 쉬는 타이밍을 보다 말을 던졌다. 

아. 저는 약속이 있어서...

다시 엉덩이를 10도 들어 인사를 했고 그는 끝내 커피 한잔 주문하지 않고 카페를 떠났다.


그가 원래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인지, 단 한 번의 실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군인이 아닌 이상, 몸에서 수분이 모두 빠져나갈 만큼의 긴급한 생리적인 현상이 일어나지 않은 이상, 약속 시간 30분이 지나서야 전화기를 봤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업무는 분명 정직원이 해야 할 일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상대의 시간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른다는 것은 자신의 시간도 헛되이 보내거나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 나의 이론이다. 내 시간이 소중하다면 분명 상대의 시간 역시 소중해야 한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나의 시간보다 상대의 시간을 더 귀하게 여겨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상대의 시간을 빼앗고 싶다면 약속 시간에 늦으면 된다고.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니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없음을 안다. 그리고 내가 반드시 정답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시간'에 대한 소중함은 내 것도, 상대의 것도 같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친구의 지인인 만큼 더욱더 아쉬운 만남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5분 먼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