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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비우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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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Feb 22. 2019

비우고 나서 더 여유로워지는 경험을 했다.

여행을 떠나면 언제나 큰 화물용 가방이 필요했다. 집에 있는 짐을 잔뜩 담고도 모자라 여행지에서 쇼핑할 생각에 큰 가방은 언제나 여행의 필수품으로 여겼다. 불필요한 물건을 소유하지 않고, 구매하지 않겠다는 원칙이 세워지자 여행 가방에 대한 시선이 바뀌었다.


2박 3일의 짧은 여행가방을 쌌다. 많은 물건을 챙겨갔던 예전과 달리 목록을 만들고 보니 의외로 필요한 것이 많지 않았다.


옷부터 챙겨보았다. 겨울 옷은 두꺼워 한 두 개만 챙겨도 부피가 만만치 않은데 생각의 전환을 했다. 어두운 색 바지를 입고 갈아입을 옷은 챙기지 않았다. 상의는 얇은 옷을 겹겹이, 더러워지면 겉옷을 벗어낼 수 있도록 입었다. 3일 동안 같은 옷이라니?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속옷은 따로 챙겼다. 잠옷, 양말, 화장품, 충전기, 상비약, 마스크, 핫팩, 선글라스, 셀카봉.

더는 없다.

배낭 가방 하나에 두 사람 짐이 모두 들어갔다. 예전  짐을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났다. 심지어 백팩이 노트북 가방이라 공간이 크지 않음에도 여유로웠다.

<2박 3일 여행 짐>

여행 떠나기 며칠 전부터 큰 가방을 열어두고 이것저것 던져 넣던 습관을 버렸다. 챙겨갔다 입지 않은 옷이 그대로 돌아온 적도 있고 면세점에서, 현지에서 산 물건들로 가득 채워진 적도 있었다. 정말 필요한 물건이었나 반문하면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다.


이번 여행을 통해 비우고 나서 더 여유로워짐을 경험했다. 생각나는 대로, 나만의 여행 짐 비우는 방법을 정리해보았다.


1. 패션쇼를 할게 아니라면 옷은 최소화

남자는 이틀이고 사흘이고 같은 옷을 입을 수 있지만 여자는 쉽지 않다. 비를 맞을 경우, 땀을 많이 흘릴 경우, 기분이 우울할 경우, 화려한 옷이 입고 싶을 경우 등등. 상황과 감정에 대비한 패션 철학이 나에게도 있었다. 여행 일보다 많은 양의 옷을 챙기는 것은 여자로서의 미덕인 양 갖가지 옷들을 챙겨 넣곤 했다. 평소에 입지 않는 여행용 옷, 나에게도 존재했다. 매일 옷을 갈아입고 심지어 저녁 외출용 옷도 따로 챙긴 적이 있다.


처음으로 사흘 동안 같은 옷 입기에 도전했다. 놀랍게도 염려했던 것과 달리 아무렇지 않았다. 비에 젖지 않았고 눈은 맞았지만 외투가 잘 막아주었다 생각한다. 음식을 흘리지 않았고 다른 이유로 눈에 띄게 더러워지지 않았다. 사진 속 주인공은 매번 같은 옷을 입고 있지만 뭐 어떠랴. 배경은 달랐고 행복하게 웃고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옷 한 벌 챙겨가는 정도의 수고로움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이틀이나 사흘이나 같다고 생각하니 대수롭지 않았다.


적당히 지저분한 것도 여행의 묘미라 생각하니 지낼만했다. 내려놓으니 많은 것이 가능함을, 집착은 자신을 괴롭히는 일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매일 갈아입는 옷, 여행에서만큼은 며칠씩 입어 보는 것도 경험이 아닐까.



2. 액세서리 비워내기

귀걸이, 모자, 신발 등의 액세서리를 비워냈다. 귀걸이를 좋아하는 나는 여행 갈 때도 빠짐없이 챙기는 물건이었다. 알레르기가 있어 대부분 금침이어야 하는 나로서는 잃어버릴까 염려되어 신경을 곤두세웠다. 가져가지 않으면 해결될 일. 최근에서야 해결했다.


모자는 원래 좋아하지 않는다. 휴양지의 뜨거운 햇살은 챙이 넓은 모자가 유용하다는데 나는 어째 그 모자가 잘 맞지 않다. 휴양지로 떠난다는 건 뜨거운 햇살을 피하러 간다기보다 즐기러 가는 여행이니 선글라스로 충분하다. 겨울 모자도 하루는 좋았지만 역시 맞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 불필요했던 것 중 하나가 선글라스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 짐만 되어 다음 여행에서는 좀 더 신중히 챙길 생각이다. 꼭 챙겨야 한다면 두꺼운 케이스가 아닌 휴대용 케이스에 넣을 것.

신발도 몇 개씩 챙기던 예전과 달리 옷과 함께 심플해졌다. 여행에서는 운동화가 최고다. 매일 신는 운동화 냄새가 부담스럽다면 운동화를 더 챙기는 것보다 신문지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열흘 여행을 떠나며 운동화를 두 켤레 챙긴 적이 있다. 비에 흠뻑 젖어 다른 운동화를 신어 보려 했지만 젖은 운동화를 말리는 수고를 들여서라도 편한 운동화를 신어야 했다. 여행에서는 내 발에 맞는 편한 운동화 하나면 충분하다.

지난 여행에서 옷에 맞춰 샌들을 챙겨갔다. 기왕 큰 가방을 챙겼으니 넣어보자 했던 샌들은 여행하기에는 부적합했다. 역시 운동화가 최고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이다.

액세서리 비워내기의 시작은 역시 옷차림이다. 옷이 가벼워지니 몸에 걸치는 액세서리도 가벼워졌다. 없어도 되는 것,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것은 잠시 내려놓아 두는 것. 비우는 삶에서 잊지 않아야 할 마음이다.



3. 메이크업은 앱으로!

평소 메이크업을 많이 하지 않는다. 한데 여행을 가면 눈이 커 보이는 아이라이너를 그려내고 진한 컬러로 눈의 깊이감을 만들기 위한 쉐도우도 필요했다. 메이크업을 제대로 하려면 이외에도 참 다양한 제품이 필요하다. 사진을 위함이었다.


이제는 나의 메이크업 실력보다 더 훌륭한 도구를 찾았다. 다양한 기능을 탑재한 앱들은 내가 한 메이크업 이상을 표현해주니 손의 노동을 줄일 수 있다. 현실을 적당히 부정하고 싶다면 유용한 앱을 사용하면 된다. 방법을 바꾸면 화장품 가방은 가벼워진다. 기초 화장품만 꼼꼼히 잘 챙겨 가면 된다. 작은 휴대용기에 덜어 담아 필요한 만큼만 가져간다. 이번 여행에서는 퍼펙트.



4. 욕실용품은 호텔 어메니티 사용하기

까다롭게 굴던 시절에는 호텔 에머니티가 아무리 좋다 한들 사용하던 욕실 용품을 챙겨갔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1회용 칫솔은 양치가 잘 안된다며 챙겼다.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만약을 대비한 세면도구도 챙겼다. 샴푸 린스가 다르면 얼마나 다르다고, 사용하는 바디크림이 얼마나 고급이라고. 호텔 어메니티 제품이 더 좋아서 가져간 것이 짐이 된 적도 있었다. 며칠 다른 제품을 사용한다 해서 머릿결이 푸석해지지 않는다. 피부가 망가지지 않는다. 푸석해진 것은 여행이 주는 피로감 때문이고 피부 트러블이 생기는 것은 물갈이나 음식 때문일 테지. 양치는 1회용 칫솔을 조심히 다루면 깨끗하게 양치할 수 있다. 지난 세월 동안 큰 불편함 없이 사용해 봤으니 검증된 상태일 터, 더 이상 호텔을 불신하지 않기로 했다.

<호텔 어메니티>

욕실용품은 호텔에서 주는 서비스가 아니다. 어차피 지불한 방값에 포함된 물건들이니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화장품, 욕실용품은 의외로 무겁다. 내려놓으면 그동안 짊어졌던 무게를 실감할 수 있을 만큼 가벼워진 가방을 확인할 수 있다.



5. 노트북, 패드 등 휴대기기 두고 떠나기

노트북, 패드를 챙길 때가 있었다. 여행은 가벼워야 한다. 챙겨가도 결국 휴대폰으로 정보를 찾고 저녁에는 피곤해서 잠자기에 바쁘다. 한때 패드는 늘 들고 다녔다. 긴 시간 휴대폰 화면만 보는 것이 답답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비행기에서는 제공되는 영화나 가져간 책을 봤고 여행 정보는 휴대폰이었다. 결국 노트북과 패드는 떨어뜨릴까 염려되고 잃어버릴까 염려되는 고가의 물건일 뿐이다.


요즘 들고 다니는 것은 접이식 키보드다. 메모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유능한 일꾼이 되어준다. 노트북, 패드를 대체할 능력을 보유했으니 굳이 무겁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물건을 챙겨갈 이유가 없다.  

<접이식 키보드>

이런 방법은 비단 여행가방만 비워낸 것이 아니다. 여행을 떠나면 늘 사진 찍느라 제대로 된 풍경을 보지 못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현실로 돌아와 찍어둔 사진을 보는 것은 1~2주 정도. 이번 여행에서는 사진 찍기보다 풍경을 봤다. 짐가방을 챙기며 바닥을 보던 에너지를 여행지 둘러보는 데 썼다. 집중해서 본 풍경이 필름처럼 머릿속에 담겨 사진보다 더 가치 있는 추억이 됐다.  
자유와 여유로움.

여행을 떠나는 것은 현실을 떠나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다. 짐가방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니 이보다 더 여유로울 수가 없다. 공항에서 짐을 보내고 찾을 필요 없고,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 가벼웠다. 가방을 끌며 울퉁불퉁한 길에 걸릴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지하철 계단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됐다. 공항 리무진이 아닌 지하철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교통비가 줄었다.


완벽하게 챙겨도 늘 부족한 것이 평소 사용하던 물건들이다. 집 떠나 부족한 것이 있어야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된다. 잠시 불편하지만 다시 채워지면 그보다 소중할 수가 없다.


비우는 여행을 통해 여유로운 삶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가볍게, 또 가볍게. 왜 비우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또 다른 이유를 찾아 행복한 여행이었다.




비우는 삶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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