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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May 23. 2019

나의 배려심은 어디에 있는가

- 난 지웠어요.

함께 일했던 사람의 연락처를 지워버렸다 보내온 메시지에서 지인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나도 그날 바로 지웠죠.

우리는 한 사람을 지웠다. 누구나 완벽할 수 없으니 나는 사람을 쉬이 판단하지 않는다. 한 번은 실수일 수 있으니 참는다. 두 번은 갸우뚱하며 참는다. 세 번은 깊은숨을 들이쉬고 참는다. 똑같은 행동을 네 번 반복하면 포기, 아니 버린다. 그것은 보통 사회에서 만난 인간관계의 기준이 된다. 일을 위해 만났으면 일을 잘하던지, 일의 퀄리티가 떨어지면 태도(Attitude)가 좋던지, 둘 다 아니라면 나의 인간관계에서는 빼 버린다.


지인은 어떤 사람에게도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던 사람이다. 아무리 화가 나 열변을 토해도 절대 나의 편을 들지 않아 서운할 때가 있었는데 그를 알고 처음으로 기울어지는 저울을 보았다. 사람에 대해 유연하던 시선이 무너진 것을 보면 참으로 무능력하며 무책임한 사람을 만나기는 했나 보다.


배려

우리가 한 사람을 지운 가장 큰 이유는 배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력이 모자라면 더 많은 누군가가 채워주면 된다. 고급인력의 모자란 실력은 죄라면 죄라 할 수 있지만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다는 기준으로 보면 이해할 수도 있다. 분명 '의리'가 돈보다 중요하다 말하며 자신이 선택한 일에서 모자란 실력이 들통나자 '돈'이 더 중요하다며 민낯을 드러냈다. 배려심 없는 말투, 배려심 없는 업무 방식, 배려심 없는 시간 관리, 가장 중요한 것은 모자란 실력과 한참 더 모자란 태도. 혹시 의리라는 단어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했다.


배려는 내 것을 모두 포기해야만 줄 수 있는 마음이 아니다. 당장은 내 것이 사라지는 것 같지만 몇 배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 배려하는 마음이다. 천성적으로 퍼주지 못해 안달인 성격상 애초부터 더 많은 것을 주려 했으나 애써 주던 마음마저 거두게 했다. 관계란 일방적이지 않음을 알기에 우리도 배려심이 부족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열 중 여섯이 맛집이라 인정하면 그 집은 맛집으로 소문나듯 사람에 대한 시선 또한 같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친구와 아는 사람도 같은 이유로 나눠진다.


나의 시간과 노력이 소중하다면 상대의 것도 같다는 것을 아는 마음이 배려다. 내 것과 같은 질량으로 볼 수 없다면 상대의 질량 또한 소중함을 알아주는 마음, 그게 안 되는 어른이라면 혼자 살아야 하지 않을까? 배려 없는 이들은 언젠가 고립되어 행동반경이 줄어든다. 자신만 모를 뿐 둘러싼 모든 이들은 안다.


의리로 시작한 일이 더 큰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그가 아는 날이 올까. 어른은 하고 싶은 말도 마음대로 할 수 없냐 소리치며 일곱 살 어린애처럼 굴던 그의 목소리가 여전히 내 귓가에 맴돈다. 어른은 하고 싶은 말과 할 수 있는 말을 구분하는 것이라는 나의 조언에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사과하던 그가 언젠가 어른의 말을 구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역지사지(易地思之).

나의 배려심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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