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 프란츠 카프카-
첫아이가 태어난 이후, 세상과 단절되었다.
베란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은 계속 흘렀지만, 그 흐름에서 멀어진 채, 아이와 둘만의 시간 안에 갇혀 있었다.
아이는 4월에 태어났고, 산후조리라는 이유로 100일 동안 외부와 차단된 채 지냈다.
어느 날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다.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문을 열고 그들이 떠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짧은 만남이 끝나고 돌아간 뒤, 정적과 고요가 밀려왔다.
그 안에 깃든 외로움과 슬픔은 천천히 마음을 잠식했다.
자주 웃던 얼굴은 어느새 무표정해졌고, 아이를 돌보는 일상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지치게 했다.
퇴근한 남편은 말없이 하루를 마무리했다.
공감과 위로를 바랄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먼 이야기 같았다.
멀리서 바라보니, 시댁과의 갈등이 감정적으로, 경제적으로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결혼은 한 사람과의 결합이 아니라 가족과 가족의 연결이라는 말이 비로소 와닿았다.
“참자, 내가 참으면 되지.”
그렇게 눌러둔 감정은 결국 화병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났다.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무렵,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한 엄마를 만났다.
“도서관에서 인문학 모임이 있는데 같이 가볼래요?”
인문학이 뭔지도 모르고 덜컥 따라나섰다.
그날의 선택이, 삶을 다시 잇는 다리가 될 줄은 몰랐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단지 정보를 얻는 일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단절되어 있던 마음과 세상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었다.
닫힌 창문이 조금씩 열리듯, 책은 얼어붙은 내면을 두드렸다.
세상을 향한 출구가 열렸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좁은 우물 안에 있었는지를.
책 속에는 만날 수 없을 것 같던 작가들도 있었고,
막막했던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도 있었다.
크게만 느껴졌던 일들이 글 한 줄에 위로를 입고, 작아지기도 했다.
책은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했고, 오래된 사상가들과 대화를 나누는 기적을 경험하게 했다.
어느 날, 마음에 남은 문장을 발견했다.
잊고 있던 감정을 되살리는 한 줄이었다.
마치 어릴 적 보물찾기에서 진짜 보물을 발견한 듯 설레고 기뻤다.
누군가에게도 이 문장을 전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두렵고 서툴렀지만, 책이 열어준 문 앞에서 멈추지 않기로 했다.
책은 도끼처럼 마음의 얼음을 깨뜨렸고,
그 틈으로 따뜻한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