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내음보다 너를’이라는 노랫말이 귓가에 머물던 어느 봄날 오후.
“아직도 너를, 너를 그리워해…”라는 한 줄 가사에 마음이 걸려 멈추게 되었다.
그리움의 물결이 느닷없이 가슴을 덮쳤다. 숨겨져 있던 감정들이 고개를 들고, 눈시울은 서서히 뜨거워졌다. 오랫동안 말없이 지나친 무언가가 그 순간, 눈물로 되살아났다.
기억은 흐릿했지만, 감정은 분명했다.
네 살 무렵, 가족의 중심이던 한 사람이 예고 없이 세상을 떠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어느 날부터 집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하굣길, 아이는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는 언제 와?”
엄마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대답했다. “미국에 계셔.”
그 말은 대답이라기보다는 회피에 가까웠고, 이어진 침묵 속에서 진실이 어렴풋이 전해졌다.
기다리면 오는 게 아니라, 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사람이라는 사실.
그날 이후, 슬픔은 무언의 감정으로 마음 한구석에 자리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 웃음을 앞세웠고, 눈물은 노래 한 곡에도 겁을 내게 만들었다.
방 안에 홀로 남겨졌을 때의 고요는 너무 낯설고 무서웠다.
가구도, 창밖 풍경도, 모두가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그 두려움은 종종 소리 없는 울음으로 이어졌지만,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한 감정이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노래 한 곡이 오래 묻어둔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움은 더는 눌러 담을 수 없었고, 마침내 눈물이 허락되었다.
울음을 삼켜온 시간만큼 깊은 슬픔이 터져 나왔고, 그 한참 뒤에야 비로소 선명한 감정 하나가 떠올랐다.
사랑했고, 그래서 그리웠던 존재.
그 감정은 슬픔이었지만, 동시에 아주 오래된 진심이었다.
법륜 스님의 백중기도에 참여하던 어느 여름.
기도가 끝난 순간, 마음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편히 쉬세요.”
그 말 한마디에 얹힌 돌덩이처럼 무거웠던 감정이 스르르 풀려나갔다.
상실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삶을 짓누르지는 않았다.
어쩌면 슬픔은 무너뜨리는 감정이 아니라, 마주함으로써 깊이를 더하는 감정인지도 몰랐다.
억눌렀던 감정과 마주했을 때, 사람은 비로소 온전해지는 법이니까.
어느 날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눈물부터 솟구쳤을 그 장면에서, 이번에는 엷은 미소가 먼저 떠올랐다.
흰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따뜻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그 순간, 오래전 슬픔 속에 갇혀 있던 작은 존재 하나가 손을 내밀었다.
지금 이 삶 속에서 여전히 함께 숨 쉬고 있었음을,
그리고 이제는 그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슬픔은 결국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잊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며 살아가는 법.
떠난 사람을 품으며, 남은 하루하루를 더 깊고 따뜻하게 살아가는 법.
그리움의 끝은 이별이 아니라 다짐일지도 모른다.
“괜찮아요. 잘 살아갈게요.”
그 다정한 인사가 마음속에서 잔잔하게 번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