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을 정말 계속해야 하나?”
지긋지긋하다는 마음에, 사무직으로 전환하고 싶었다.
서류를 넣었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경력이 없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였을까.
어떤 곳에서도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생활비는 매달 나가고, 빈자리는 빚으로 메워야 했다.
그래서 결국, 다시 상담사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밝음보다 어둠이 많은 기억이 남아 있는 일이었다.
스무 살, 졸업 후 첫 직장에선 적응이 어려웠다.
무료했던 사무실 시간을 흘려보내고, 친구 말만 믿고 여의도에 면접을 보러 갔다.
처음엔 카드 발급 전화상담이었다. 버벅대던 말투는 시간이 지나 자연스러워졌다.
이후엔 채권업무도 하게 됐다.
통화를 시작하자마자 비명을 지르던 고객,
조폭 일을 한다며 협박하던 고객,
연체 사실을 알리자 차가운 목소리로 찾아오겠다고 했던 기억들.
그때는 무서운 줄도 몰랐고, 팀장님께 꾸중을 듣고 억울하게 고개 숙이며 사과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지만 그 모든 순간이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리고, 더 힘들었던 건 마음이었다.
고객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그 속엔 슬픔과 두려움, 분노와 상실이 묻어 있었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눌러가며 일해야 했다.
어느 날은 통화했던 고객이 다음 날 고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버스 안에서 말을 잃고, 집에서는 그저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다른 일을 찾아봤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 아침에 책과 강연에서 이정훈대표님 이야기 듣고나서 달라졌다.
“기존 일을 전환하고 싶어 하시지만, 오히려 그 일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내가 해온 상담 일도 누군가에겐 의미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다시 상담사 자리에 원서를 냈고,
합격문자에 묘하게 안도했다.
누군가 나를 불러주는 자리가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7개월의 계약직.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컴퓨터활용능력 시험과 직업상담사 실기 시험 준비도 병행할 계획이다.
감사한 일이다. 다시 준비할 수 있는 시간,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
누군가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나는 움츠러들었다.
작은 목소리로 “상담사요…” 하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이젠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다.
AI 상담사도 잘하지만, 사람이 주는 감정의 울림은 다르다.
그리고 내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7개월 후,
상담사라는 직업에 남겨져 있던 어두운 기억들이
조금은 따뜻하게 바뀌어 있기를,
그 모든 순간을 품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