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반도체 엔지니어를 알아? (15)

서... 설마 너도??


“형 저 사실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사랑 고백이라면 사양하겠어.”

“웃긴 이야기는 아니고 조금 진지한 이야기인데...... 다음 주에 저 퇴사합니다.”

“퇴사 좋지, 부럽지...... 응????”




3년 정도 다른 곳에 파견을 다녀온 사이에 부서는 정말 많이 바뀌어 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 한 트럭 있고 전반적인 부서 분위기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정말 위에 분 덕분에 같이 고생을 많이 하던 후배 한 명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위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 사실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그때 그렇게 힘들게 고생을 했는데 왜 이제 와서 퇴사를 할까? 지금 부서의 분위기에도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일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깊숙하게 사무실에서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다음 날 점심 약속을 하고 같이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해 보았다.


“나 돌아온 지 얼마 안돼서 잘 모르겠는데 부서가 이상해서 퇴사하는 거야?”

“뭐 부서 사람들하고도 힘든 것은 있었지만 꼭 그거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그럼 어떤 문제가 있어서 퇴사하는 거야?”

“형, 너무 문제라고만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전 제 꿈을 찾아 떠나는 겁니다.”

“로또라도 되었니? 아니면 주식으로 대박이 났나?”

“형, 전 그런 거 못해요.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서 생각을 했는데 항상 스트레스받던 제 모습을 보고 저희 와이프가 농사를 한 번 지어보자고 의견을 제시했는데 실제로 가서 딸기 농사를 지어보니까 정말 할 만하더라고요? 그래서 가서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그전에도 제 적성에 맞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번 기회에 한 번 질러보려고요.”

“아!”




과거에도 퇴사를 하는 사람은 많이 보았다. 그런데 대부분 나이가 차서 퇴사를 하시는 분이거나 아니면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적성에 맞지 않다고, 혹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기 위해서 퇴사를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런데 이제 회사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상황에서의 퇴사는 조금 새로웠다. 나도 적성에 너무 잘 맞고 회사가 행복해서 다니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내 후배는 그런 용기가 있구나. 나는 결국 그런 용기가 없어서 시도를 해 보지 못했지만.


“형, 근데 재미있는 거 알아요? 퇴사를 위해서 그룹장님 하고 면담을 하고 팀장님하고 면담을 했는데 모두 제가 부럽데요.”

“아니, 돈을 그렇게 많이 받으시는 분들이 왜 그러실까?”

“올라간 만큼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요?”




대부분의 한국 회사들이 다 비슷한 형태겠지만 여기도 젊을 때는 기계와 사투를 벌이고 헉헉 거리면서 집에 가면 다시 체력이 보충되고 회사로 돌아와 다시 싸움에 임하게 된다. 그렇게 필드에서 싸움을 하다가 보면 어느새 후배들이 조금씩 늘어나게 되고 선배보다 후배가 늘어나는 시점이 되면 내가 그 후배들을 관리하게 되는 직책으로 바뀌게 된다. 요즘에는 직급이 순서대로 올라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를 하고 ‘월급루팡’의 형태로 바뀌는 분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경쟁 속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게 된다. 흔히 스트레스 비용이 바로 내 월급의 값어치라고 하는데 그 마약과도 같은 비용을 과연 나는 얼마나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있을까? 퇴사하는 후배를 보고 부럽다고 하는 그룹장님이나 팀장님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진하게 남는다.




“딸기 농사에 내 자리는 없니?”

“어우, 형 오시면 할 거 많죠. 형 그거 알아요? 딸기 농사가 형보다 많이 벌어요.”

“뭐? 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근데 몸이 더 힘들어요. 형은...... 살 좀 빼고 오셔야 할 거 같은데.”


깨알 같은 공격에 당황한다. 그래! 나 살찐 건 맞는데 그래도 농사 잘 지을 수 있다 뭐! 그러면서 물끄러미 내 배를 보니 정말 다이어트를 해야 할 것 같기는 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 배 때문에 딸기를 보지 못하고 밟을 수도 있는 노릇이 아닌가?(그런데 실제로는 딸기 농사를 지으면 가슴 높이에서 딴다고 한다.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부서 내 사람들 이야기와 부서 이야기를 오손도손 하고 식사를 마무리하면서 내 미래에 대한 생각과 지금의 스트레스 등에 대해서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지금 옳은 길로 가고 있는 것일까?


“형, 저는 먼저 갑니다. 겨울에 딸기 한 번 보내드릴게요!”

“그래, 나도 거기 한 번 체험하러 가 볼게!”

“나중에 오시면 소처럼 부려먹어 드릴게요.”




아이고, 너무 고맙네 진짜. 소처럼 일하라고 이렇게 덕담도 해주고. 항상 유쾌하고 매사에 열심히 하던 친구인데 지금은 그저 아쉬움만 남는다. 나는 나중에 퇴사를 하게 되면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해 줄까? 후배가 돌아간 그 자리는 다른 사람이 채워져서 일을 하고 있지만 가끔 그 자리에서 반갑게 맞아주던 그 후배를 그리워한다. 우리가 항상 기계만 만지고 보고서에만 목숨을 걸지만 그래도 이런 장면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오늘은 왠지 딸기 농사 잘하고 있나 연락이나 한 번 해 봐야겠다. 근데 소 말고 배짱이처럼 일하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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