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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May 01. 2022

'둘'의 사랑

동료와 우연히 대화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40대 초반의 두 아이를 둔 가장이 고단한 삶을 쏟아냈다. 나는 막내 남동생과 동갑내기인 그의 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날 아침은 여유가 있어 초등학교 딸아이를 등교시켜 주기로 했다.

 딸은 엄마가 늘 내려주는 곳을 일러주었다.

 등교하기 편한 곳이긴 하지만 차를 돌려 나가기에 적당치가 않아 다른 곳에 내리라 했더니

“엄마는 안 그러는데!” 혀를 끌끌 차며 딸이 내린다.

 욱하는 마음이 생겨 얼른 창문을 열고 “다시 타라!” 했단다.    

  

 아침을 허둥지둥 달려오며 딴생각에 빠진 그는 출근길도 잊은 채

 엉뚱한 도로에 몸을 맡겼고 평소보다도 훨씬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두 사람이 번다지만 한 사람의 월급은 두 아이의 양육비에 고스란히 받쳐졌고

 시세 차익을 노리고 무리하게 옮긴 아파트의 담보 대출과

 생활비 등을 지출하고 나면 아무것도 없다.

 펀드도, 적금도 모두 깨고 모아 놓은 돈 없는 노후가 걱정된다.     


 영어 유치원, 논술 학원, 음악, 미술 학원을 보내는 것이 못마땅하지만

 예의와 인성을 잘 갖춘 아이가 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지만

 점점 까칠하게 말하고 이기적으로 변하는 아이를 걱정하지만

 남들 다 시키는 것 빠지지 않고 보내야 한다는 아내의 교육열을

 설득시킬 방법이 없다.   

  

 직장에서 지친 아내는 돌아오면 아이들 공부 챙기기에 바빠 집안일을 돌보기엔 역부족.

 남편은 청소, 식사 준비, 설거지, 분리수거 등을 하기 위해 다시 집으로 출근한다.

 집안일을 공동으로 해야 양성평등이라고 부인에게 교육을 받으면서  

 남녀 차이도 있음을 알려주고 싶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참는다.


 부인이 너무 힘들어 짜증이 보일 때 얼른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간다.

 출장이 있어 며칠간 집을 비우고 돌아간 주말에는 어김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

 친구를 만나거나 골프 약속을 잡을 여유가 없다.

 누구랑 만나고, 언제 들어오고, 어디서 만나는지 꼼꼼하게 보고를 해야

 한 달에 한두 번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는 그 자유시간마저도 사치였다.


한참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후 이야기를 듣고 있던 두 총각에게 ‘결혼은 하지 말라!, 연애만 해라!’며 진심 어린 청천벽력 같은 말을 쏟아냈다. 나는 어린 남매를 키우는 부부들은 다 그러고 산다며 위로를 했다. ‘워킹 맘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남편이 모르는 아내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다독이며 살아야지’ 뻔한 말을 했다.


 “제가요 어제 확 돌 뻔했어요. 위스키에 얼음 넣어 먹는 게 하루 고단함을 쫙 잊게 해 주거든요. 다 잠든 시간에 몰래 주방에 나와 얼음하고 위스키 들고 베란다에 갔어요. 소리 안 나게 하려고요. 그런데 얼음을 유리컵에 넣으니까 소리가 나잖아요. 동시에 ‘카톡!’ 메시지가 온 거예요. 부인이 ‘죽을래?’라고 보낸 걸 보니까 소름이 돋고 진짜 정이 뚝뚝 떨어져서 말도 하기 싫어요.”     


 그의 SNS 프로필은 온통 가족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부인이 화면을 꽉 채우고 있는 사진 속 숨겨진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내내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우연한 만남에서 이루어진 관계가 사랑으로 변하고, 서로에게 충실할 것을 맹세하며 결혼을 한다.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도 함께 겪으며 나가리라 다짐하지만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일상의 갈등들이 관계에 균열을 가져오며 서로를 미워하고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동료가 나에게 던진 한 마디!

 “ 사부님도 저랑 비슷하게 생활하죠? 어디 가서 사부님도 저처럼 다른 사람 붙잡고 하소연할 거예요! 잘 생각해보세요!”     

주말 동안 그의 말을 떠올리며 <사랑예찬>이란 책을 꺼내 들었다. 남편과의 관계에 물음이 생길 때마다 나는 이 책을 본다.

 알랭 바디우는 남녀 간의 사랑을, 진리를 생산하는 절차라고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사랑은 ‘차이’를 통해 ‘같음’으로 가기 위한 진리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차이’, ‘분리’된 두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알랭 바디우는 갈등도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려는 '안전한 사랑'은  더 위험하다고 본다. 그래서 조건에 맞는 데이트 앱이나 결혼정보회사의 만남에서 말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이다.

 둘의 관점에서 하나의 생활과 삶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부인에게 혹은 남편에게 전적으로 모든 것을 맡긴다거나 포기한다거나 맞춰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낭만적인 부분이 있다. 그것이 아름답고 강렬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되돌아보건대 함께 살면서 대소사에 지지고 볶고 좌충우돌하며 서로 인간으로서 성장을 독려하며 서로를 이해하며 배려해야 한다는 점을 더 깨닫게 된다.


“여보! 어디 가서 내 이야기해?”     

상갓집에서 밤새고 온 남편을 보며 물었다. 그는 놀란 눈을 하고 손사래를 친다.     

“아니! 나는 당신 이야기 절대 안 해! 의심하지 마!”     

그의 강한 부정을 보며 밤새 내 험담을 하고 왔다는 확신이 드는 건 왜일까?

다시 <사랑예찬>을 꺼내어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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