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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Aug 02. 2021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고등학교 도서반에 들어가려면 3차까지 시험을 봤었다.

1차는 독후감을 써냈고, 2차는 토론을 했고, 3차는 면접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17살 그 시절에 이미 나는 지금 시대에 했을 법한 입시를 미리 경험한 듯싶다. 2학년 선배들이 둘러앉아 토론을 일일이 지켜보고 3차 때는 그것을 바탕으로 질문하는 엄격한(?) 통과의례가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5명 모집에 40명의 아이들이 지원했으니 나름 경쟁률이 높았고, 선발의 명분이 있어야 했다.   

내가 1차 때 써내었던 독후감 책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가 중 2였다. 고전은 참 어려웠다. 지금도 그때 산 책들을 가지고 있는데 인생의 연륜과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중2가, 이상한 번역들로 이루어진 글들을 읽기엔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가 사준 책들은 읽기가 어려워 눈치만 보고 있을 찰나, 우리 반 반장이 빌려준 책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첫 문장 자체부터 소녀 감성을 흔들었다.

  이쁘지는 않지만 남심을 흔드는 매력적인 여성의 등장!

스칼렛 오하라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어서였는지 예쁘고 매력적인 그녀가 너무 부러워 거울을 보면서 여드름이 뽀롯이 올라온 이마를 두드리며, 조그만 눈꼬리를 치켜올리며 온갖 멋을 부려보기도 했지만 까맣고 촌스러운 얼굴은 거울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나에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연애 소설로 보였던 것 같다. 

그때의 욕구와 욕망이 아마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였는지 레트 버틀러의 등장과 스칼렛 오하라의 밀당을 보면서, 주체할 수 없는 달콤한 감정에 참 많이도 졸였고, 결말 부분이 너무 허망하여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이것이 왜 고전의 반열에 올랐는지 분노했었다. 그 감정을 고스란히 1차 독후감 때 “왜 이 소설이 명작이고 고전인지 잘 모르겠다!”라고 썼던 것 같다. 단순히 연애 소설을 왜 명작이라 평가하는지 너무 높여주는 것 아니냐고 써내려 갔다.    

어린 소녀이며, 이기적이기까지 했던 스칼렛 그녀가 원숙한 여성과 가장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거듭나는 모습을 다시 살펴본다. 레트 버틀러의 마음을 놓치고, 타라 농장을 지키며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내공 갖춘 인간으로, 아버지의 땀이 베인 타라 농장의 흙을 부여잡고 오열했던 장면을 되새겨 보게 된다. 

사랑에 의탁하여 여자로서, 사랑받는 아내의 삶을 살기 원했던 그녀가 스스로의 삶과 책임감에 눈을 뜨는 과정을 돌이켜 생각해 본다. 

레트 버틀러가 떠나고 난 후에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스칼렛. 

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잃고서야 알게 되는 비극.

그의 빈자리에서 알게 된 사랑의 쓸쓸함과 그리움.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던 그녀의 사랑도 그렇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생기 충만한 스칼렛이 사랑을 되찾아 오기를 열망했던 15세의 소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진 사랑에 쓸쓸해하는 스칼렛을 위로하는 4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맺어지지 않은 인연의 아름다움과 아련함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것보다 더 여운이 남는다는 것. 

 완벽할 수 없고 부족하고  아쉬움이 남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을 알았기에 그는 바람과 함께 홀연히 사라질 수 있었겠지?

그래서 레트 버틀러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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