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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Nov 27. 2022

인생이라는 시한부 연극

이성은 박사, 감정은 유아원생


유명한 뮤지컬을 보거나 멋진 연극을 보고 나면 진한 감동이 남는다. 출연한 배우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눈에 띄고 심지어 숨을 쉬는 숨결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가 사는 세상을 커다란 연극의 무대라고 하고, 우리네 각자들의 삶을 연극배우들의 스토리 전개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삶 자체가 연극보다 더 진짜 드라마틱하기도 하다. 유명한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런 말들을 종합해 보면, 인생이라는 것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약 80년이란 기간 동안 공연되는 연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빅토르 프랭클의 말처럼, 무대에서 전개되는 스토리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셰익스피어도 " 인생에 좋고 나쁜 것은 없고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라고 인생 관점론을 견지한다.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러나 어떤 사실이나 상황을 문제라고 규정하는 것은 우리의 뇌가 내리는 결정 사항이다. 만약에 뇌가 문제 상황을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면 문제는 없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주변 상황을 문제라고 여기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문제라고 여겨졌던 상황들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런 문제가 아닐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결국 문제가 아닌 것이 그 당시에는 문제처럼 여겨졌을 뿐이다. 남편이 매일 밤 잔뜩 술에 취해서 늦게 들어올 때, 대부분의 아내들은 그런 상황이 문제라고 여기고 화를 낸다. 그러나 반대로 술 취한 남편을 측은지심으로 대하고 불쌍히 여길 수 있다면, 남편의 귀가가 문제가 아니라 보호의 순간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런 예상 밖의 대접을 받은 남편은 이후에 일찍 귀가할 것이다. 술마실 돈으로 아내의 선물을 사들고. 어떤 사람이 지금 나를 지적하는 행동이 나에게 문제가 될 수 있고 화가 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십수 년이 지난 후에 자신이 인생에서 성공한 이유가 그 사람의 지적을 극복해보려고 애쓴 사실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때쯤 되면 그 사람의 지적이 고마울 수도 있다. 암이나 심각한 질병에 대한 진단도 지금부터 나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측면에서는 문제가 아니고 축복일 수도 있다. 지금처럼 계속 살다가는 일찍 죽을 수도 있지만, 병의 진단 때문에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 인생은 알 수 없고 오묘한 것이다. 끝나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다.


지금 내가 처한 시간과 공간 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문제라고 여기는 습관을 바꾸는 것이 좋다. 이 우주에 영원히 고정된 문제라는 것은 없다. 과거에 우리나라가 너무나 가난하고 못 먹고 살았기 때문에 잘 살아보자는 욕구가 있었고, 지금 소위 말하는 단군이래 제일 잘 먹고사는 나라로 변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우리보다 못한 나라들을 도와주고 있다. 인생이 단기적으로는 희극일 수도 있고 비극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 끝나게 되는 우리 삶의 종점에서 바라본다면, 과거 나에게 일어난 모든 아픈 순간들 마저도 꿈결처럼 느껴질 것이다. 결국 어떤 상황이 좋다 나쁘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렇게 바라보는 내적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늘 카멜레온처럼 변화하는 세상을 고정된 내적 기준으로 재단하기 때문에 행복과 불행이 발생한다. 지금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이 옛날 사람들의 옷보다 더 멋지다고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편견이다. 지금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옛날 사람들이 타고 다녔던 마차보다 더 발전한 것이라고 느낀다면, 그것 또한 착각이다. 왜냐하면 옷이라는 것은 결국 몸을 가리고 추위를 피하는 수단일 뿐이고, 자동차나 마차는 사람의 이동을 도와주는 장치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람의 수명은 정해져 있는데 어디든 빨리 가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빠른 자동차나 비행기를 자랑하면서 왜 다시 조용한 곳을 찾을까?


아무리 과학과 문명이 발전한다고 해도 인간은 하루 세끼 밥을 먹어야 하며 170 cm 정도 크기의 몸을 이동하며 살아야 한다. 게다가 슬픔 기쁨 행복 불행을 느끼는 시스템이 수천 년간 영 바뀌지 않는다. 인생이 희극이다 또는 비극이다라고 판단하는 것도 이성의 작용이라기보다는 감정의 작품이다. 만약 감정이 중립을 지킬 수 있다면, 우리가 인생에서 느끼는 수많은 문제들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감정이 판단하는 기준은 상당 부분 현실과 맞지 않는 면이 있다. 어떤 사람은 감정을 사탄의 변호사라고까지 심하게 표현한다. 감정은 인간에게 끝없이 무언가를 판단하라고 제안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제는 알 것 같다. 감정이 제안하는 대로 결정을 내리거나 행동을 했을 때는 실수할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기쁜 순간은 그냥 기쁘게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닥친 상황에 대해서 나쁘다 또는 불행하다는 판단이 들면, 그런 판단을 쉽게 믿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가 철통같이 믿고 있는 감정이라는 것은 사실 굉장히 제한적인 경험에서 형성된 것이다. 개인적인 감정의 능력으로는 늘 변화무쌍한 세상의 무게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부정적인 판단이 들 때마다 구분할 수 있어야 된다. 지금 나의 판단이 감정적인 판단인지 아니면 완전히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이 세상에 장기적으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그리고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인생을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산다는 의미는 모든 외부의 상황에 대해 즉각 흥분하지 않고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감정 훈련을 하자는 것이다. 연극 배우는 무대에서 감정 표현을 하지만, 연극이 끝나고 나면 무대에서의 감정은 연출된 것이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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