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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Jul 07. 2024

생명의 본질은 환경에 적응하는 것

인간은 엄마 뱃속에서 약 10개월간 있다가 태어난다. 그러나 갓 태어난 아이가 스스로 걷기 위해서는 약 1년이 걸린다. 말이나 사슴은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걷는 놀라운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인간뿐만 아니라, 침팬지나 고릴라 등 영장류의 새끼들은 태어난 후 일정 기간 부모의 보살핌이 있어야만 스스로 걷고 움직일 수 있다. 말이나 사슴은 주로 광활한 평원해서 생활하는 관계로 쉽게 눈에 띄어 사자나 표범 등 포식자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새끼들은 태어나자마자 뛸 수 없다면,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시인간을 포함한 영장류는 동굴이나 깊은 숲 속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새끼들을 키울 여유가 있는 환경에서 거주하였다. 그래서 새끼들이 태어나자마자 당장 뛸 필요가 없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물들이 발달시켜 온 생존을 위한 각자의 방식이 특이하다.

갓 태어난 새끼들의 적응능력에 대한 해답은 태아 뇌의 크기와 어미의 골반 크기에 달려있다고 한다. 말이나 사슴 새끼가 태어나자마자 걷고 뛰기 위해서는 자궁 속에서 이미 이들의 뇌가 충분히 발달해서 커져야 한다. 큰 머리를 가진 새끼 말이나 사슴이 어미의 골반을 지나 안전하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골반도 역시 충분히 크고 강한 지지뼈를 가져야 한다. 암컷 말이나 사슴의 골반은 그렇게 발달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포식자들의 먹이가 되는 서식 환경을 피할 수 있었던 인간과 기타 영장류에게 상대적으로 좁은 어미의 골반을 통과하기 위해서 태아의 뇌가 아직 완전하게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태어나게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역시 광활한 평지에서 생활하는 캥거루나 코알라 새끼는 말이나 사슴 새끼와는 다르게 불완전하게 태어나지만 엄마 배 앞에 달린 주머니 속에 담겨 엄마와 함께 뛸 수 있다는 점이다. 태어나자마자 뛰지 못하면 포식자들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는 이들을 위해 아기 주머니라는 또 다른 해결책이 등장한 점을 보면,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 매우 신비롭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동식물들은 신체적으로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존에 오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문명이 매우 발달한 인간은 인간관계나 주변 환경과의 적응 과정에서 상당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생명체의 본질은 환경에 적응하고 어려움을 극복에 나가는 과정 선상에 놓여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다수 인간은 주변 상황과 환경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고 무기력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본래 생명체의 특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것도 인간 자신이 구축한 문명과 사회구조와 시스템의 부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원래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생명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자극제로서의 역할을 한다. 사슴이 표범을 발견하면, 두려움을 느껴야만 혼신을 다해서 힘차게 멀리 도망갈 수 있다. 그러나 표범의 사냥 구역으로부터 벗어나면, 사슴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평정심을 회복한다.

그러나 원래 신체적인 안전을 위한 자극제였던 두려움이란 감정이 이제는 모든 주변 상황에 끝없이 투사되어 인간의 신체와 마음을 갉아먹는 괴물로 변신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숲 속 동굴에서 살지 않는 인간들은 두려움이란 단일 감정을 다양한 문화적 환경에 맞도록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이제는 두려움이 걱정, 염려, 불안, 소심, 분노, 화 등으로 세분화되었고, 인간의 마음속에 마치 복잡한 오일장터가 열린 것처럼 소란하다. 굳이 자연으로 돌아가지는 않더라도, 원래 생명체와 환경과의 적응 원리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의 심장과 폐는 사람이 아무리 정신적으로 걱정을 하고 불안해해도 24시간 쉬지 않고 생존을 지속시켜 준다. 이제 우리의 정신이 몸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정신도 24시간 깨어있고 생명체답게 살아야 한다. 다만 눈앞에 급박한 위협이 있을 때만 잠시 두려워하고 걱정하면 된다. 지금 당장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우리는 살고 있고 또한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 있다. 우리가 느끼는 지엽적인 감정들을 너무 과장되게 느낄 필요가 없다.

어렸을 때 우연히 방에 있는 기타를 보고 기타 줄을 퉁겨본 적이 있었다. 갑자기 팽팽한 기타 줄이 바르르 떨면서 소리를 냈다. 그러다가 잠시 시간이 지나자 떨리던 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소리도 잠잠해졌다. 이후 성장하면서 경험한 감정의 폭발과 차분한 마음으로의 복귀가 마치 기타 줄의 떨림과 울림에 이은 원상복귀처럼 느껴졌다. 어른이 되면, 보통 화가 나거나 분노가 치미는 상황이 많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감정이 북받치는 자극요인과 환경이 어떤 패턴을 보인다. 감정에 따라 지속되는 시간이나 몸에 표현되는 떨림 현상이 일정한 루틴을 보인다. 아무리 화가 나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는지 모르게 마음이 변한다. 마치 해변에 파도가 밀려왔다 다시 먼바다로 밀려가는 이미지가 연상된다. 파도도 감정이 최고점에 이르는 것처럼 부서지기 직전에 파고가 최고점에 이른다.

감정의 폭발과 밀물과 썰물의 교대에는 차이점이 있다. 파도는 최고점에 이른 다음에는 다시 파고가 낮아지며 사라지지만,  인간의 감정은 최고점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어떤 감정은 최고점은 아니더라도 수시간, 수일, 수개월, 심지어 수십 년간 마음속에서 맴돌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 지속되거나 반복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건강을 해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일반적인 감정은 생겼다가 사라지기까지 약 90초가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사소한 일로 화가 나면, 화를 북돋지 말고, 화제를 돌리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 90초를 견디면 큰 화를 면할 수 있다. 만약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 수분이상 지속된다면, 이는 단순한 감정은 아니다. 그런 상태는 가슴에 응어리진 오래된 기억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화가 나면 이 화를 일으키는 감정이 일반적인 이유인지, 아니면 마음속 상처와 연관되어 있는지를 재빨리 구분해야 한다. 상대의 말이나 지적이 나의 깊은 상처를 자극하면, 원래 말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성적 판단이 사라지고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악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차가 새치기를 하거나, 행인이 내 발을 밟은 경우처럼 단순한 화가 밀려오면, 마음속 감정의 생성, 최고점 도달, 소멸 과정을 미리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광경을 약간 떨어져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본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화를 내면, 감정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거나 힙쓸려 갈지도 모른다. 또한 두려움과 흥분감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다. 어떤 두려움 속에서도 흥분감의 쌍둥이를 발견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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